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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메모리, HBM2 생산기지 구축 돌입
저사양 HBM부터 줄줄이 추격 가시권
‘딥시크 쇼크’로 드러난 中 기술 자립
![](/sites/default/files/styles/large/public/image/2025/01/CN_chips_TE_20250102.jpg.webp?itok=PCrDx9Hh)
중국 반도체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자국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D램 생산량을 크게 늘린 데 이어 기술 난도가 높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강도 높은 제재를 딛고 기술 고도화에 성공한 CXMT가 첨단 제품인 HBM 양산에 속도를 낼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주축으로 한 우리 반도체 산업에도 큰 타격을 입힐 전망이다.
2020년 이후 급성장 CXMT
11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CXMT는 2세대 HBM 제품인 HBM2 생산을 위해 중국 상하이에 대규모 설비 구축을 진행 중이다. HBM2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이미 지난 2016년 양산을 시작한 제품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CXMT의 HBM2 생산은 10년가량 뒤처진 셈이지만, 이미 제품 규격이 표준화한 만큼 개발 속도는 매우 빠를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실제로 CXMT의 개발 속도는 2020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상승했다. 중국 컨설팅업체 첸잔의 조사에 의하면 지난 2020년 1% 미만에 그쳤던 세계 D램 시장 내 CXMT 점유율은 지난해 5% 수준까지 확대됐다. 이를 두고 FT는 “CXMT가 한국 기업들이 차지한 점유율을 위협하고 있다”며 “성장세에 본격 탄력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최근에는 DDR4와 같은 구형 D램은 물론 DDR5 개발에서도 진전을 보이며 대규모 양산에 한 발짝 다가섰다. 시장조사기관 테크인사이트의 연구에서 중국 DDR5 D램의 선폭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비교해 크게 뒤지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미 CXMT 반도체 생산 능력이 전 세계에서 15% 안팎의 점유율을 차지할 정도의 수준에 올라섰다는 게 테크인사이트의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전해진 CXMT의 HBM2 생산 소식은 엔비디아의 품질 인증과 관련해 고전을 거듭 중인 삼성전자에는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CXMT가 D램 시장에서 단기간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기술력을 추격한 전례가 있는 만큼, 한국 기업들로선 향후 전개를 긴밀하게 살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FT는 “삼성전자에 커다란 압박이 전해진 가운데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도 저사양 HBM 시장에서 추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제재 보란 듯 기술 개발 가속
전 세계 인공지능(AI) 업계에 충격을 안긴 딥시크의 출현 또한 중국의 HBM 생산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딥시크가 발표한 최신 추론 AI 모델 ‘R1’ 개발에는 약 2천 개의 엔비디아 AI 가속기 ‘H800’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H800에는 최신 제품인 5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HBM3E가 아닌 HBM2E(3세대) 또는 HBM3(4세대)가 탑재되고, 이는 대부분 중국 내에서 공급된 것으로 전해진다.
딥시크가 해당 모델을 개발하는 데 투입한 금액은 557만6,000달러(약 80억원)로 오픈AI, 앤스로픽 등 경쟁사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미국 정부가 엔비디아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을 H20의 저사양 칩까지 확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앞서 엔비디아는 미 정부로부터 2022년 당시 가장 강력한 AI 칩인 H100의 중국 판매 제한을 받았고, 이어 2023년에는 H800 수출도 제한됐다. 이에 엔비디아는 지난해 H20을 출시했다.
이와 같은 미국의 추가 제재는 중국 업체들의 자립도를 높여 차세대 HBM 개발을 부추길 공산이 크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초기인 만큼 저사양 제품에 대한 대중국 제재도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며 “CXMT가 현재 HBM2E까지 만들고 있는데,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자립화를 부추기면 향후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에 CXMT 제품이 쓰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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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주도권 빼앗긴 일본 역사 되풀이하나
일각에선 기술 유출과 함께 일본에서 한국으로 기술 패권이 이동한 1990년대의 역사가 되풀이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일본 반도체 산업 몰락의 시발점이 된 사건은 1986년 ‘미·일 반도체 갈등’이다. 당시 일본은 미국의 ‘외국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20% 이상’ 요구를 받아들였고, 일본 기업이 한국산 반도체를 대신 판매하는 기형적인 시장이 10년 이상 지속됐다. 이 과정에서 기술과 인재의 교류 또한 빈번했고, 삼성전자를 비롯한 우리 기업들의 기술 개발을 앞당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를 두고 일본 인터넷 매체 데일리신초는 “한국이 우수 인력을 대거 흡수하면서 일본 반도체 산업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데일리신초는 “1990년까지 세계 반도체 산업 상위 10개 기업 목록에는 일본 기업 6~7개가 포진해 있었고, 시장 점유율 또한 절반을 넘었다”며 “지금은 도시바 메모리의 후신인 키옥시아 정도만 간신히 업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고 탄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