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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R에 전 세계 공공·민간 자금 150억 달러 투입 초기 비용 높고 가성비 낮아 상업화에 한계 노출 2030년 이후에나 상업화 가능성 검증 가능할 듯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원전 강국들이 소형모듈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SMR) 경쟁력 확보에 나서면서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투자가 이어지고 있지만, 경제성과 안전성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높은 초기 개발·건설 비용에 더해 기존 원전과 유사한 안전성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민 수용성 역시 사회적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다양한 초기 단계 기술이 난립하고 상업화 성공 사례는 부족해 정부와 금융권, 투자자,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계 많은 SMR, 60년 전 폐기된 개념 부활
27일(현지시각)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SMR에 150억 달러(약 21조원) 규모의 공공 및 민간 자금이 투입됐지만, 경제성 문제가 여전히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글로벌 싱크탱크 에너지경제·재정분석연구소(IEEFA)의 데이비드 슐리셀 이사는 "SMR 지지자들은 이 기술이 경제성을 갖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미 건설됐거나 현재 건설 중인 초기 SMR의 사례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건설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 대형 수력 발전이나 해상 풍력 프로젝트 같은 다른 청정 대안과 겨룰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프랑스 기후행동네트워크 공동 창립자인 앙투완 봉듀엘도 지난해 'SMR, 핵산업의 새로운 신기루'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110쪽 분량의 보고서에서 "SMR은 핵산업 부흥을 내세우며 이미 60년 전에 폐기된 개념을 부활시키고 있다"며 "SMR이 많은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이에 대한 소문은 현실이나 잠재력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원전 강국인 미국, 프랑스, 중국, 영국, 러시아 등이 SMR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결국 기존 원전의 한계를 반복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웨스팅하우스·뉴스케일 등 경제성 극복 난항
실제로 지난 40여 년간 미국과 유럽 주요국이 SMR 상용화를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공 사례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높은 초기 개발·구축 비용이다. SMR의 최대 강점은 배관이 없어 방사성 물질 누출 위험이 낮다는 점이다. 주요 기기가 하나의 압력 용기에 통합되고, 원자로 모듈이 냉각수조에 잠기는 설계 구조 덕분에 방사능 확산 가능성이 낮아진다. 또한 설치 부지가 작고, 붕괴열이 낮아 공기만으로도 냉각이 가능해 내륙 설치가 가능하다. 그러나 효율성 측면에서는 한계가 분명하다. 대형 원전에 비해 증기 온도가 낮고 연료당 발전량도 적어, 결과적으로 경제성과 효율성 모두 기존 원전에 비해 떨어진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실제 상업화 시도에서도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대표적으로 2017년 미국 원전 기술 기업 웨스팅하우스의 파산은 SMR 기술에 대한 업계의 기대를 한순간에 꺾어놨다. 당시 웨스팅하우스는 600메가와트 일렉트릭(MWe)급 SMR 상용화를 추진했으나 경제성 확보에 실패하면서 1,000MWe 규모로 용량 확대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잦은 설계 변경과 일정 지연이 이어졌고, 결국 63억 달러(약 8조8,000억원)의 손실을 감당하지 못해 매각에 이르렀다. SMR 상용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받았던 뉴스케일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경제성 확보를 위해 발전 용량을 늘렸지만, 유타주에서 추진하던 실증 프로젝트가 사업비 급증과 수익성 저하로 취소되면서 미국 내 상용화 전망에도 제동이 걸렸다.
안전성에 대한 논란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SMR 역시 폭발 위험, 핵폐기물 처리, 사회적 갈등 등 기존 원전이 안고 있는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한다. 단점으로 지적되는 낮은 가성비를 보완하기 위해 다수의 설비를 병렬로 배치할 경우, 대형 원전과 유사한 폭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데다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는 만큼 일정 수준의 핵폐기물 발생도 불가피하다. 특히 사용후핵연료의 저장 및 처리 방식이 아직 명확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폐기물의 안전한 관리와 최종 처분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이 같은 불확실성 때문에 일부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SMR 건설에 강하게 반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논란에 대응해 SMR의 사업성을 가늠할 수 있으려면 앞으로 최소 6~7년은 더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테라파워의 SMR 프로젝트가 상업 운전에 들어가는 2030년 이후에야 비로소 기술적 안정성과 경제성에 대한 실질적인 검증이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테라파워는 마이크로소프트(MS) 창립자 빌 게이츠가 공동 설립한 SMR 전문 기업으로, 지난해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실증단지 착공에 들어갔다. 기존 석탄발전소 부지를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미국 에너지부(DOE)로부터 20억 달러(약 2조8.000억원)를 지원받았다. 해당 프로젝트에는 345메가와트(MW)급 소듐냉각고속로(SFR) 설계 기반의 나트리움(Natrium) 모델이 적용돼 최대 4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것으로 추정한다.
초기 단계 기술 난립에 제도적 지원 체계 미흡
일각에서는 상업화 가능성이 검증되기도 전에 막대한 자금이 선투입되고 있음에도, 제도적 지원·관리 체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다 보니 현장의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기 단계 기술이 난립하는 가운데 투자자의 혼란이 심화하고, 정책과 규제도 일관성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OECD/NEA(경제협력개발기구 산하 원자력기구) 다이앤 카메론 본부장은 “SMR업계에서 여러 현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금융권과 규제 당국, 정책 입안자들이 우선순위를 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로 인해 제도적 지원과 규제 체계 전반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구조적 불확실성은 SMR에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하는 미국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지난 4월 DOE는 AI 인프라 확충을 위해 데이터센터와 발전시설을 동시에 구축할 후보지로 16곳의 연방 부지를 선정하고 2027년 말까지 부지 내 데이터센터를 완공·가동할 계획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 내에서 상업 운전 중인 SMR 발전소는 단 한 곳도 없으며, 대부분이 아직 설계 단계에 머물러 있다. 특히 SMR에 필요한 고농축 저농도 우라늄(HALEU)의 미국 내 생산 기반도 마련되지 않아 2027년 가동 목표에 맞추기 어렵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태양광과 저장장치 조합이 공급 속도와 실증 사례 측면에서 SMR보다 우위를 보인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태양에너지산업협회(SEIA)는 DOE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유틸리티 규모의 태양광은 평균 1.4년, 저장장치는 1.7년이면 구축할 수 있어 원전 대비 3배 이상 빠르다"며 비용·일정·공급 유연성 측면에서 보다 현실적인 대안임을 강조했다. 또한 재생에너지는 분산형 구조를 갖춰 송전 인프라 확충 없이도 설치가 가능한 것도 강점으로 꼽았다. 실제로 메타, 아마존, 구글, 애플 등은 이미 태양광과 저장장치를 조합해 24시간 전력 공급 체계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