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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인텔, 경영 위기 벗어나려면 파운드리 분할해야" 올해 초에는 분할 넘어 매각설까지 제기돼 인텔 측 인사들은 사업 분할보다 기술력 제고에 초점

미국 반도체 업체 인텔의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기업 분할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부 분사를 통해 경쟁사인 칩 설계 기업들을 고객사로 끌어들이고, 근본적인 서비스 질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다만 인텔의 현·구 경영진들은 한목소리로 파운드리 사업부 분할은 잘못된 선택이며, 기술 혁신을 통해 파운드리 업계 내 경쟁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텔 파운드리 사업부 분할설
15일(이하 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텔이 몇 년간 이어진 경영 및 기술 위기에서 벗어나 대만 TSMC 등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회사를 분할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인텔은 지난 2021년 오는 2030년까지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2위로 올라서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파운드리 사업에 재진출했으나, 반도체 제조 기술 방면에서 TSMC와 삼성전자에 뒤처지며 시장 입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인텔 파운드리 사업부가 올 1분기에 기록한 영업손실은 23억2,000만 달러(약 3조1,654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발생한 영업손실은 134억 달러(약 18조2,829억원) 수준이다.
WSJ은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할하면 이 같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인텔 파운드리의 잠재적 고객 중 상당수가 엔비디아, AMD 등 칩 설계 분야 경쟁사인 만큼, 칩 설계 사업과 파운드리 사업을 분리하면 고객사 유치가 한층 원활해질 것이라는 시각이다. 아울러 WSJ은 사업부 분할을 통해 인텔 파운드리의 '한계'로 꼽히던 기업 문화 문제도 개선할 수 있다고 봤다. 그간 인텔 파운드리 사업부는 외부 고객 수주보다는 자사 반도체 생산에 중점을 둬 왔으며, 이로 인해 고객 중심 서비스 체제를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외신이 인텔 파운드리 사업부의 분할을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해 8월 블룸버그는 인텔이 제품 설계와 파운드리 사업 분할, 제조 시설 확장 프로젝트 폐기 등의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블룸버그가 인용한 익명의 소식통들은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인수합병(M&A) 가능성에 대해 인텔에 조언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인텔 인수 검토하는 TSMC·브로드컴
지난 2월에는 TSMC가 인텔의 미국 내 공장 지분을 인수해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2기 행정부 관계자들이 최근 TSMC 측에 인텔과의 협업 방안을 제시했고, TSMC가 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어 “아직 협의가 초기 단계이며 구체적인 협력 구조가 정해지지 않았다”며 “다만 TSMC가 미국 내 인텔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TSMC는 이미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때에 한 차례 인텔과의 협업을 제안받은 바 있다. 당시 TSMC는 미국 정부의 제안을 거절했다. 엔비디아와 애플 등 빅테크 고객사를 등에 업고 압도적인 시장 입지를 갖춘 TSMC 입장에서는 기술 유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인텔과 협업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 같은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해당 거래를 적극적으로 성사시키려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TSMC가 인텔의 파운드리 부문을 인수한 뒤 남은 칩 설계 부문을 미국 브로드컴이 인수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같은 달 WSJ은 브로드컴이 인텔의 설계 및 마케팅 사업 부분 인수를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파운드리 부문을 인수할 '파트너'가 등장하면 브로드컴이 언제든 인텔에 칩 설계 부문 인수를 제안할 수 있다는 전언이다. 다만 WSJ은 브로드컴이 TSMC와 협력해 인텔 사업부 인수를 논의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기술력이 최우선" 현·구 경영진 한목소리
인텔 파운드리 분할설이 시장에서 힘을 얻기 시작한 가운데, 인텔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인사들은 파운드리 사업부 분할·매각에 대한 회의적 의견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3월 크레이그 바렛 인텔 전 최고경영자(CEO)는 포춘(Fortune)지에 실은 기고문에서 “인텔은 다시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회사를 조각조각 쪼개 리더십 확보를 지연시키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밝혔다.
바렛 전 CEO는 “반도체 산업에서는 최고의 기술이 승리한다”며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 실패가 구조적 문제보다는 기술적 열세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재 모든 독립적 설계 업체가 TSMC를 사용하는 이유는 TSMC가 최고의 기술을 보유했기 때문"이라며 "만약 인텔이 TSMC의 수준에 도달하거나 능가할 수 있다면, 기업은 인텔을 선택할 것”이라고 짚었다. 인텔 파운드리 사업부의 부활을 위해서는 기업 분할이 아닌 뛰어난 기술력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지난 3월 인텔의 CEO 자리에 오른 립부 탄 역시 파운드리 사업을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그는 취임 이후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쉽지 않겠지만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인텔에 합류했다"며 "인텔은 미국과 전 세계 기술 생태계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함께라면 사업을 반전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경쟁 업체보다 뒤처진 분야에서는 위험을 감수해 혁신하고 도약해야 한다"며 "세계적인 회사로 인텔의 위상을 회복하고, 세계적인 수준의 파운드리 입지를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