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터리 굴기’ 강화, 日 전고체 승부수에도 추월 가속
입력
수정
신에너지 시장 연계, 산업 생태계 확장 전고체 배터리로 ‘게임 체인저’ 노려 日 자존심 특허·기술력도 위태로운 상황

중국이 배터리 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격상하며 ‘세계 1위’ 입지 강화에 나섰다. 한화로 약 48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해 신에너지 저장 시스템 확장과 대체 기술 개발을 동시 추진하고, 오는 2027년까지 자국의 에너지 저장 용량을 현재의 두 배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경쟁국인 일본은 전고체 특허와 기술력에서 우위를 지키려 하지만, 중국이 자본력을 앞세운 속도전으로 격차를 빠르게 좁히는 양상이다. 그러는 사이 한국은 투자 여력의 한계에 부딪혔고, 글로벌 배터리 산업 구도 내 세 국가의 입지 또한 재조정되는 모양새다.
글로벌 주도권 확보 의지, 장기 전략 노출
16일(현지시각)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최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와 국가에너지국(NEA)은 공동으로 ‘에너지 저장 기술 분야 리더십 강화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계획은 에너지 저장 기술을 현대 전력 시스템의 핵심 도구로 육성하고, 2027년까지 중국의 에너지 저장 능력을 두 배 가까이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중국 정부는 이를 위해 2,500억 위안(약 350억 달러·48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으며,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를 기반으로 구축된 신에너지 저장 시스템(6월 기준 95GW)을 180GW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 같은 대규모 확충은 중국의 탄소 중립 로드맵과도 맞닿아 있다. 신재생 에너지원의 변동성을 보완하고, 피크 시간대 전력 수급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저장 기술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NEA는 에너지 저장을 “전력 시스템의 유연성과 안전성을 담보하는 핵심 수단”이라고 규정하며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를 감당할 수 있는 기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중장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막지대와 폐석탄 화력 부지를 활용한 대형 프로젝트를 장려하고, 수소 저장·압축공기 저장·나트륨 이온 배터리 등 대체 기술 개발을 병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자신감에는 자국 배터리 산업의 가파른 성장세가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인포링크(InfoLink)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 세계 에너지 저장 배터리 셀 출하량은 240.21GWh로 전년 대비 106.1% 급증했다. 이 가운데 상위 10개 셀 공급업체가 모두 중국 기업으로, 글로벌 출하량의 91.2%를 점유했다. 대표 기업인 CATL과 선그로우(Sungrow)의 주가는 최근 사상 최고치를 찍으며 시장 참여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는 중국 기업이 배터리 시장 내 양적 우위를 넘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도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중국은 에너지 저장 기술을 전략산업으로 격상시키며 산업 생태계 전반을 구조적으로 강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를 두고 후아타이 증권은 “중국은 정부 계획이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하고, 기업은 독립 저장 수익 모델을 마련하면서 산업의 장기적이고 건전한 성장 도모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에 일찌감치 세계 최대 규모의 에너지 저장 시스템을 갖춘 중국이 향후 재생에너지 발전 및 전기차 보급에 힘입어 글로벌 주도권을 공고히 할 것이라는 전망에도 힘이 실린다.

리튬이온 배터리 한계 돌파 야심
중국은 차세대 배터리의 핵심으로 전고체 배터리를 주목했다. 전해질을 액체 대신 고체로 대체한 전고체 배터리는 폭발 위험을 줄이는 동시에 충전 용량과 주행거리를 두 배 이상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지난해 중국 정부는 60억 위안(약 8억4,000만 달러·1조3,000억원)을 투입해 CATL, BYD 등 주요 배터리·자동차 기업 6곳에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하며 기술 상용화를 선언했다. 정부와 산업계, 학계의 협력체계를 기반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겠다는 구상에서다.
이 같은 정부 주도형 지원은 중국의 배터리 산업 전반을 자극했다. 상하이자동차는 연내 전고체 배터리 생산라인을 가동해 내년부터 양산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초기에는 액체 함량이 10%인 1세대 제품으로 시작해 단계적으로 완전 고체화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2027년에는 ‘즈이’ 신차 시리즈에 완전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하겠다는 목표까지 제시했다. CATL 또한 같은 시기 소규모 양산을 시작한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이 같은 흐름은 전고체 배터리의 대량 상용화 가능성을 중국이 가장 먼저 실증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기술 발전에도 가속이 붙었다. 중국 안와신에너지테크놀로지는 지난 7월 고체 배터리 샘플을 공개하며 향후 2년 내 3세대 고밀도 제품을 양산하겠다고 예고했다. 샘플로 공개된 제품은 파운드(0.45kg)당 약 227Wh의 에너지 밀도를 구현해 전기차 주행거리를 크게 늘릴 수 있으며, 건식 제조 공정 도입으로 생산 비용을 기존 대비 30% 절감한 것도 특징이다. 여기에 이미 체리자동차의 신형 전기차 ‘Exeed Exlantix ET’에 탑재가 예정돼 있어 실질적 상용화 단계로의 진입 또한 임박한 상태다.
이 같은 추세는 전고체 배터리가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중국 정부와 업계의 확신을 보여준다. 경쟁국인 일본과 한국이 특허 출원과 시제품 개발에 매진 중이지만, 중국은 막대한 내수시장과 정책적 자원을 무기로 가장 빠른 양산 로드맵을 현실화하고 있다. 이는 곧 전고체 배터리의 상용화가 리튬이온 배터리의 한계를 돌파하는 기술적 도약을 넘어 중국이 글로벌 배터리 산업에서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는 결정타가 될 것이란 관측을 낳는다.
속도전으로 경쟁국과 격차 축소
이에 대응해 일본 역시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전고체 배터리를 국가적 전략산업으로 육성 중이다. 일본은 한때 세계 배터리 시장을 압도했지만, 지금은 중국과 한국에 주도권을 내주며 점유율이 5% 이하로 추락한 상태다.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세계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6조 엔(약 410억 달러·55조원) 이상 규모의 민관 투자를 약속했다. 토요타, 파나소닉 등 핵심 기업들 역시 파일럿 라인과 양산 체계 구축을 서두르며 전고체 배터리를 전기차 시장의 승부수로 여기는 양상이다.
일본은 전고체 배터리 기술 경쟁에서 특허와 연구개발 성과를 앞세워 우위를 지킨다는 구상이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3년까지 전 세계에서 출원된 전고체 배터리 특허 가운데 일본 기업의 특허 건수는 7,046건으로,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중국은 4,625건으로 2위에 올랐고, 한국은 3,225건으로 한·중·일 3국 중 가장 뒤처졌다. 학술 논문 편수에서는 중국이 899편으로 1위를 차지했고, 미국이 587편, 일본이 295편을 기록했으며, 한국은 176편으로 6위에 머물렀다.
이 같은 격차는 정부 지원 규모에서도 확인된다. 일본 정부는 2020년 2조 엔(약 136억 달러·18조원) 규모의 ‘그린 이노베이션 기금’을 조성했고, 이 가운데 1,500억 엔(약 10억 달러·1조4,000억원)을 향후 10년간 전고체 배터리 연구개발과 파일럿 양산에 투입하기로 했다. 지난해에는 민관 합산 총 5조7,000억 엔(약 387억 달러·54조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으며, 별도로 3,200억 엔(약 22억 달러·3조원) 규모 보조금을 배정해 전고체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한국은 다소 뒤처지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주도 산학연 연계를 통한 연구개발(R&D) 예산 투입, 고분자·산화물·황화물계 등 다양한 기술 트랙 동시 지원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사업화 인허가를 비롯해 대규모 실증 인프라, 장기 자금 지원 등 대다수 측면에서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결과적으로 글로벌 배터리 시장 구도는 일본이 기술력과 특허로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사이 중국이 막대한 내수 시장과 정책 자원을 무기로 격차를 좁히고, 한국은 제한된 투자 여력에 발목이 잡혀 경쟁에서 점점 밀려나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