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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황 부진에 사업 재편 속도 LG그룹, 알짜여도 비주력이면 매각 선제적 사업 재편 및 현금 확보 목적

LG화학이 RO멤브레인(역삼투막) 필터를 생산하는 워터솔루션 사업 부문을 매각한다. 일본 도레이케미컬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라 있는 사업으로 매각가가 1조원을 넘는다. 석유화학업계 불황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미·중 관세전쟁으로 온갖 불확실성이 커지자 현금 확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글랜우드PE 우협으로
2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워터솔루션 부문 매각을 위해 사모펀드(PEF)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PE)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세부 조건을 조율하고 있다. 글랜우드PE가 신설회사를 설립한 뒤 LG화학 사업 부문의 인력과 자산, 특허 등을 이전받는 사업 양수·양도 방식이 예상된다. 매각 주관사와 인수 주관사는 각각 삼정KPMG, 뱅크오브아메리카로 확인됐다.
지난해 LG화학은 워터솔루션 사업 부문에서 매출 2,500억원,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650억원을 거뒀다. 이 사업 부문의 핵심 제품은 바닷물을 산업용수로 사용할 수 있게 정화하는 RO멤브레인이다. LG화학은 2014년 미국 나노H2O를 인수해 특허와 기술력, 인력을 확보한 뒤 청주공장에 양산 시설을 구축해 글로벌 2위 사업 부문으로 키웠다.
글랜우드PE는 인수 직후 약 2,000억원을 추가 투자해 공장을 증설하고, 회사를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글랜우드PE는 대기업 내 사업 부문을 분할해 인수하는 ‘카브아웃’ 거래에 특화한 토종 PEF로, 지난해 LG그룹 수처리 자회사가 전신인 테크로스를 인수했고, LG화학 진단 사업 부문을 인수해 인연을 쌓았다. LG그룹은 글랜우드PE가 인수한 회사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고 임직원 고용을 안정적으로 유지한 점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LG그룹 리밸런싱 속도
LG화학이 세계 2위 담수처리 사업 부문을 매각하기로 한 것은 올해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강조한 ‘선택과 집중’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알짜 사업을 잇달아 매각해 선제적으로 ‘현금 방파제’를 쌓겠다는 것이다. 구 회장은 지난달 열린 올해 첫 사장단 회의에서 “모든 사업을 다 잘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러기에 더더욱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며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 진입장벽 구축에 사업의 우선순위를 두고, 자본의 투입과 실행의 우선순위를 일치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 2023년 LG화학은 약 1,200억원을 투입해 청주 3공장 증설에 나서는 등 이 분야를 미래 먹거리로 삼고 본격적인 확장에 나섰다. 하지만 본업인 석유화학 분야 부진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G화학은 지난해 9,168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이는 전년(2조5,292억원) 대비 63.8% 감소한 수준으로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다.
특히 석유화학 시장은 경기 변동에 민감한데, 최근 경기 침체와 글로벌 수요 둔화로 인해 시장 상황이 악화됐다. 2년 가까이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인 데다 최근에는 중동 국가들도 석유화학 제품 공급을 늘리는 등 글로벌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LG화학은 선제적으로 재무구조를 튼튼히 하는 데 역량을 최우선으로 집중하기로 했다. 수년째 진행 중인 석유화학(NCC) 사업 지분 매각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롯데·효성도 지분 팔아 현금 확보
이런 가운데 재계에서는 중국발 공급과잉 속 위기에 놓인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조정에도 관심이 쏠린다. LG화학은 워터솔루션 사업 외에도 몸값이 5,000억원대로 평가되는 에스테틱 사업부 매각과 여천 NCC 공장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담수사업까지 매각 리스트에 올리면서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이외에 분리막 사업 투자 유치 등 추가적인 그룹 차원의 사업 재편을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영업손실을 낸 롯데케미칼도 자산 유동화를 추진 중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달 28일 레조낙 지분 4.9%를 2,750억원에 매각했다. 지난 2020년 매입한 레조낙 지분 전량으로, 롯데케미칼은 이번 매각과 그간 확보한 배당금을 합쳐 약 800억원의 차익을 실현했다.
효성화학도 업황 부진 탈피를 위해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효성화학은 최근 베트남 법인인 효성비나케미칼의 지분 49%를 3,964억원에 매각하는 동시에 3,153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회사 측은 재무구조 개선과 채무상환 자금 마련을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효성화학의 추가 구조조정 가능성도 열려 있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