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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中 배터리 관세 11%→155.9%, 내년엔 173%로 미국 안보 우려까지 겹쳐, 韓에 유리한 기류 형성 글로벌 ESS 시장 5년 내 두 배 성장 전망

전 세계 재생에너지 확산과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으로 전력망용 에너지 저장 시스템(Energy Storage System·ESS)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ESS 기업이 새로운 기회를 잡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ESS를 사이에 둔 중국과 한국 기업 간 경쟁이 관세 전쟁을 계기로 한국에 유리한 흐름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美의 대중 배터리 관세 173%, 한국 기업에 기회
2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현재 전 세계 ESS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관세가 거듭 인상되면서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반격을 노리는 한국 기업들에 새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우리 기업들은 한때 고에너지 밀도의 '고니켈' 배터리 기술을 앞세워 시장을 주도했으나, 잦은 화재 사고와 중국의 저렴하면서 성능이 향상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부상으로 지난 10년간 주도권을 중국에 내줬다. 현재 중국 최대 배터리 기업 CATL은 ESS 및 전기차 배터리 시장 모두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업계 전체 이익의 90%를 가져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산 배터리는 전 세계 ESS 시장의 약 90%를 차지하며, 미국과 유럽에서도 각각 80%, 75%의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 번스타인리서치의 닐 베버리지 연구원은 "중국과 한국 ESS 기업의 운명은 '두 배터리 시장의 이야기'처럼 갈리고 있다"며 "CATL은 규모, 기술력, 생산 효율성에서 경쟁사들을 압도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맞이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의 대중 배터리 관세는 트럼프 1기를 거치며 155.9%까지 올랐고, 내년에는 173.4%로 추가 인상이 예고돼 있다. 이에 더해 미국 내에서는 중국산 ESS에 대한 안보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미 미군 시설에서는 중국산 배터리 시스템 사용이 금지됐으며, 미국 정부가 향후 전력망 프로젝트에서도 중국 제품을 배제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LG엔솔·삼성SDI ESS 수주 확대
이 같은 흐름은 한국 기업에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말 2건의 ESS 수주를 성사시킨 것에 이어 올해에도 벌써 2건의 ESS 수주를 따냈다. 회사는 지난달 25일 대만 에너지 관리 업체인 델타 일렉트로닉스와 미국 주택용 ESS 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고, 얼마 전에는 폴란드 국영전력공사인 PGE와 ESS 공급 계약을 맺었다.
삼성SDI는 최근 미국 에너지 기업인 넥스트라 에너지와 2억8,000만 달러(약 4,000억원) 규모 ESS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전체 계약 규모는 7억 달러(약 1조원)로 추정된다. SK온은 올해 안에 ESS 사업에서 성과를 낼 계획이다. 이석희 SK온 사장은 최근 SK이노베이션 주주총회에서 "연말까지 ESS에 진입하는 사업 성과를 내고 미국 ESS 진출을 위한 수주 활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中 배터리 경쟁력 여전, 일부 영향력 유지 전망
그간 ESS는 대규모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 가동이 더뎌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주요국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수주가 줄을 잇고 있다. 특히 최근 AI 데이터센터가 우후죽순 들어서며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전력이 끊이지 않고 원활하게 공급되는 것이 중요한데 ESS는 이를 예방하고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실제 구글, 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AI 데이터센터에 ESS와 태양광 발전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북미 시장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미국 ESS 시장 규모는 지난해 1,067억 달러(약 155조원)에서 2032년 2,635억 달러(약 383조원)로 두 배 넘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수요도 폭증할 전망이다. ESS는 2020년 전 세계 배터리 시장의 5%에서 현재 20%까지 비중이 늘었고, 글로벌 저장 용량은 2023~2024년 사이 52% 급증했다. 2030년까지 ESS 저장 용량은 340기가와트시(GWh)에서 760GWh로 두 배 이상 증가할 전망인데, 이는 전기차 760만 대 분량에 해당한다. 이에 업계는 ESS가 현재 성장률이 둔화한 전기차용 배터리의 빈자리를 채워 업체들의 수익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중국산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이 워낙 강해, 150%가 넘는 고율 관세에도 시장 점유율을 일정 부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배터리 컨설팅업체 로모션(Rho Motion)의 이올라 휴스 리서치책임자는 "중국 내에서는 ESS 가격이 킬로와트시(kWh)당 약 80달러로, 주요국(130~140달러)의 절반 수준인 만큼 여전히 가격 여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UBS의 팀 부시 분석가도 "LG, 삼성SDI 등 한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할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대규모 LFP 배터리 생산 역량과 가격 경쟁력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