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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주요 주주에 카카오엔터 경영권 매각 의사 전달 "몸값 5조원이면 사는 사람 있을 것" 비관적 여론 확산 계속되는 경영 효율화, 문어발 사업 확장 '거품' 빠지나

카카오가 콘텐츠 사업을 영위하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카카오엔터) 매각을 추진한다. 기업공개(IPO) 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상장을 포기하고 매각을 통해 현금 자원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카카오엔터가 최근 수년간 이렇다 할 성장 가능성을 입증하지 못한 만큼, 만족스러울 만한 몸값을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카카오엔터 시장 매물로
1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최근 앵커에쿼티파트너스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싱가포르투자청(GIC) 등 카카오엔터 주요 주주에 서한을 보내 경영권 매각 의사를 전달했다. 카카오엔터는 뮤직(음악·연예기획), 스토리(웹툰·웹소설), 미디어(제작사) 등 크게 3가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카카오웹툰과 카카오페이지, 멜론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당초 카카오는 2019년 카카오엔터가 카카오페이지였던 시절부터 주관사를 선정하며 IPO를 추진해 왔으나, 쪼개기 상장 논란이 불거지면서 상장 작업을 중단했다. 이후에도 카카오는 카카오엔터의 상장 시점을 저울질 해왔지만, 증시 상황이 꾸준히 악화하며 기업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경영권 매각이 상장보다 효율적인 선택지로 떠오른 것이다.
카카오엔터는 2021년부터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키워 왔다. 타파스엔터테인먼트, 래디쉬 등 콘텐츠 기업들에 수천억원대 투자를 감행한 것이다. 이에 따라 카카오엔터 산하 자회사는 2020년 14개에서 2022년 53개로 급증했다. 지난 2023년 카카오와 함께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을 확보했을 때는 카카오엔터의 몸값이 2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여론이 확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법 리스크가 불거졌고, 계열사가 무더기로 늘며 ‘문어발식 확장’이란 비판도 커졌다.

기업가치 11조원은 어불성설?
시장 여론이 악화하며 카카오엔터의 몸값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는 추세다. 앞서 카카오엔터는 2023년 PIF와 GIC로부터 1조2,00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11조원 수준의 몸값을 인정받은 바 있다. 투자 직전 해인 2022년 카카오엔터의 연결 기준 매출은 1조8,648억원, 영업손실은 138억원, 순손실은 6,298억원이었다. 명실상부 '적자 기업'이었음에도 불구, 웹툰·웹소설·음악·영상 등 우수한 지식재산권(IP)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인정한 투자자들이 높은 기업가치를 책정한 것이다.
하지만 카카오엔터는 투자 유치 이후로 이렇다 할 성장 가능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카카오엔터의 지난해 매출은 1조8,128억원, 순손실은 2,590억원이었다. 이와 관련해 한 IB 업계 관계자는 "11조원이라는 기업가치는 실적이 좋아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반영된 수치"라며 "투자자들의 기대와 달리 여전히 실적이 저조한 상황인 만큼, 11조원에 달하는 몸값은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기업가치를 '반값' 수준까지 끌어내려야 인수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현금 흐름이 괜찮아서 지식 재산권(IP)에 관심 있고 자금력이 있는 회사들이 인수할 만하지만, 기업가치가 5조원 미만일 때나 수요가 있을 것 같다”고 짚었다. 이어 “크래프톤의 경우 작년 한 해에만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유동자산이 5조원 이상인데 단일 IP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아쉬움이 있지 않나”라며 “이런 기업들은 카카오엔터 인수전에 도전해 볼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카카오의 '슬림화'
불리한 여론에도 불구, 카카오가 과감히 카카오엔터 매각을 검토하는 것은 '사업 효율성'을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카카오는 최근 수년간 100개가 넘는 자회사를 정리하는 등 비핵심 사업 부문의 매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카카오헤어샵을 서비스하는 자회사 ‘와이어트’의 지분 전량을 매각하며 미용실 사업에서 손을 뗐다. 지난달에는 사업보고서를 통해 스크린골프 사업체인 카카오VX 매각 계획을 공개했고, 같은 달 인터넷 포털 다음을 운영하는 사내독립기업(CIC)을 분사한다고 발표했다.
자회사를 대폭 줄인 카카오는 인공지능(AI) 사업 육성으로 눈을 돌렸다. 문어발식으로 확장했던 사업들을 과감히 쳐내고, 미래 먹거리 투자를 확대하는 이른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채택한 셈이다. 현재 카카오는 검색, 추천, 챗봇 등 핵심 서비스에 생성형 AI를 접목하고 있으며, 카카오브레인을 중심으로 AI 모델 개발과 글로벌 확장에 힘을 쏟고 있다.
이에 시장에서는 카카오의 '거품'이 서서히 빠지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한 시장 관계자는 "엔터 매각이 실현될진 알 수 없지만, 카카오가 핵심 사업에 집중하려는 기조 아래 AI에 전사적 역량을 쏟아붓고 있는 건 확실하다"며 "지난 수년간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거품이 부풀어 올랐던 카카오가 하나씩 사업을 정리하면서 쪼그라들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