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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몸값의 2~3배 높은 조 단위 가격 기대 ODM 통해 생산, 마케팅만으로 단기간 급성장 올리브영 의존도 높아 자체 경쟁력에 의구심

화장품 브랜드 라운드랩으로 알려진 서린컴퍼니의 매각 작업이 표류하고 있다. 서린컴퍼니의 지분 100%를 소유한 칼립스캐피탈과 메리츠증권 측은 조 단위 몸값을 기대했으나, 인수 희망자들이 원하는 가격은 5,000억원대에 머물고 있어 격차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측이 눈높이를 크게 낮추지 않는 이상 거래가 성사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화장품 업계의 수요 감소와 경쟁 심화로 인한 위기 속에서 두 차례 매각 협상이 결렬되면서 힘이 빠진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는 상황이다.
인수 1년 만에 매각 주관사 선정해 매각 착수
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서린컴퍼니의 매각 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PEF) 칼립스캐피탈과 메리츠증권은 2023년 7월 서린컴퍼니의 지분 100%를 2,300억원에 인수했다. 두 회사는 인수 1년 만인 지난해 7월 매각 주관사로 글로벌 IB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fA)를 선정하고 같은 해 9월 잠재적 인수 후보들에게 매각 관련한 티저 레터를 배포하는 등 본격적인 매각 작업을 추진해 왔으나 여전히 인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올해 1월 유럽계 PEF CVC캐피탈이 인수 희망가로 8,000억원을 써내면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돼 가장 먼저 협상 테이블에 앉았으나 가격 등 세부 조건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협상이 결렬됐다. 화장품 브랜드 조선미녀로 유명한 구다이글로벌과 경영권 인수로 영역을 확장 중인 벤처캐피털(VC) 케이파트너스 컨소시엄이 차순위 협상자로 지명됐으나 인수 희망가로 6,000억원 이하를 제시한 탓에 조 단위 몸값을 기대했던 매각 측과 격차가 너무 큰 상황이다.
두 차례 협상 결렬로 매각 작업은 김이 빠진 분위기다. 현재 서린컴퍼니와 비슷한 규모의 인디 화장품 업체가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희망 인수가는 구다이글로벌이 제시한 가격보다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서린컴퍼니의 실적이나 시장 위상에 비해 매각 측의 눈높이가 너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매각 측이 2,300억 원을 투자한 지 2년 만에 3~4배 수준의 차익을 기대하며 높은 가격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평가다.

대표 제품 독도토너 등 올리브영에서 큰 인기
매각 측이 조 단위 몸값을 주장하는 근거는 서린컴퍼니의 실적이 고공행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363억원에 그쳤던 서린컴퍼니의 매출은 2023년 1,156억원으로 세 배 이상 급증했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163억원에서 553억원으로 늘었다. 대표 제품인 독도 토너 등이 올리브영 등에서 큰 인기를 끈 결과다. 다만 이런 실적 호조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해당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충성도가 높지 않고, 인디 화장품 브랜드 특성상 유행을 많이 타 수명이 짧기 때문이다.
회사의 본질 경쟁력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독도 토너, 자작나무 선크림 등 라운드랩 브랜드의 주요 제품은 대부분 코스맥스, 한국콜마 등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가 생산을 맡는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국내 인디 브랜드의 상당수가 제품력은 ODM사를, 유통 채널은 올리브영을 등에 업고 급성장했기 때문에 내재된 연구개발(R&D) 역량이나 생산·유통 역량은 거의 없다"며 "자사의 역량보다는 외부의 자원에 의존하는 데다 마케팅으로만 쌓아 올린 탑이 언제 무너질지 아무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매각 주관사인 BofA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BofA는 지난해 매각 측이 매각 주관사를 선정하기 위해 진행한 경쟁 프레젠테이션(PT)에서 조 단위 목표 매각가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BofA는 경쟁사와 달리 K뷰티에 관심이 있는 외국계 PEF를 인수 후보군으로 유치해 경쟁을 붙이면 충분히 조 단위 몸값을 받을 수 있다고 어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 국내 화장품 업계 우량주로 꼽히는 한국콜마의 시가총액이 1조3,000억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조 단위 몸값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中 매출 하락 등으로 주식시장 조정 국면 돌입
국내 화장품 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도 서린컴퍼니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때 국내 화장품 업계의 성장 엔진으로 평가받던 중국 시장의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국가통계국 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화장품 카테고리의 연간 소매 매출은 4,357억 위안으로 전년 대비 1.1%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재 소매판매가 3.5%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화장품 시장의 부진이 더욱 두드러진다. 공급난과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다수의 브랜드가 가격을 인상한 점까지 고려하면 수요 위축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중국 화장품 시장의 매출 하락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지 언론은 화장품 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주요 원인을 젊은 소비자의 마음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중국의 젊은 소비자층은 청년 실업, 불경기 심화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소비 의지와 자신감 모두 크게 위축된 상황이다. 여기에 실용주의 가치관의 확산으로 화장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어들었다. 실제로 최근 중국의 SNS인 웨이보에서는 '출근 2일 차에는 화장 안 함(第二天上班就不化妆了)' 이라는 토픽이 조회수 3억회를 넘기며 크게 주목받았다.
이 같은 흐름은 주식시장에서도 반영되고 있다. 최근 화장품 업종은 지난해 4분기 실적발표를 앞두고 일제히 주가가 하락했다. K-뷰티의 세계적인 수출 호조에도 주가가 하락한 점은 시장 기대치가 낮아졌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대형주의 실적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저가 브랜드에 대한 전망도 보수적으로 바뀌는 추세다. 수출 비중이 높은 ODM 및 부자재 업체들이 고객사 다변화로 선방 중이지만, 사업 규모 확대에 따른 고정비 증가와 매출 감소로 업종 전반의 실적 모멘텀은 둔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