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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데이터센터 두고 사회적 갈등 격화 "전자파 나온다" 낭설에 휘둘리는 주민들 빅테크 기업들, 한국 데이터센터 투자 끊겨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들이 서울 한복판 아파트 단지 옆에 자리를 잡으면서다. 데이터센터 건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데이터센터에서 인체에 유해한 전자파가 발생한다는 낭설을 주장하고 있다.
'혐오 시설'로 전락한 데이터센터
31일 IT업계에 따르면 서울시 구로구 개봉동 '센트레빌레우스' 아파트 인근 부지에서는 한 달 전부터 데이터센터 설립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3,354㎡ 면적의 땅에 지하 4층, 지하 8층, 연면적 1만9,225㎡ 규모로 건물이 지어진다. 문제는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데이터센터 건립에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센트레빌레우스 아파트에는 ‘주민 건강 위협하는 데이터센터 신축공사 중단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다.
주민 반대로 인해 데이터센터 건립에 제동이 걸리는 사례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마그나PFV㈜가 추진하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 데이터센터 사업의 경우, 2023년 3월 건축 허가를 받았으나 인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착공이 크게 지연됐다. 고양시 역시 지난해 8월 말 착공 신고서를 최종 반려하며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착공 지연에 따른 비용이 급격히 늘자 시공사인 GS건설은 행정심판을 제기했고, 지난해 10월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가 고양시의 착공신고서 반려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뒤에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주민들의 반대로 인해 아예 데이터센터 건설이 무산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앞서 네이버는 2019년 용인시에 데이터센터 ‘각 용인’을 지으려고 했으나, 해당 계획은 일부 주민과 지역 정치권 반발로 무산됐다. 네이버는 이후 건립지를 변경해 세종시에서 ‘각 세종’을 준공했다.

반대 근거는 전자파?
데이터센터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 소음, 백연 현상 등으로 건강이 악화된다는 ‘괴담’에 휘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 데이터센터 건립 시에는 주민들이 전력·냉각수 과다 사용 등과 관련한 불만을 주로 표출하는데, 국내에서는 유독 특고압 선로로 인해 발생하는 전자파 관련 우려가 많다"며 "아무리 업체 측에서 해명을 해도 여론이 쉽게 바뀌지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관계자는 "전력 시설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극저주파로 인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데, 주민들 사이에서 과도한 공포 심리가 확산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데이터센터는 철저히 밀폐된 방어 시설로 구축돼 있다"며 "설령 주거 단지 등이 매우 인접한 곳에 위치해 있다고 해도, 실제 측정 시에는 전자파가 거의 검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 미래전파공학연구소가 실시한 전자파 인체 노출량에 대한 측정 평가에 따르면,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16개 지점에서 전자파 강도가 가장 높은 특정 지점의 반경 2m 내 전력 설비 전자파(ELF) 노출량은 최대 14mG(밀리가우스)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가 인체 보호 기준으로 삼는 국제비이온화방호선위원회(ICNIRP) 기준인 883mG의 1.5%에 불과한 수치이자, 전기밥솥보다 낮은 수준이다. 전기장(V/m) 측정값 역시 0.35 V/m으로 인체 보호 기준값(4,166 V/m) 대비 매우 미약한 수준이었다.
외면받는 韓 데이터센터 시장
근거 없는 공포에서 기인한 님비(Not In My Backyard; NIMBY) 현상은 글로벌 데이터센터 업계의 '코리아 패싱(한국 배제)'을 촉발했다. 전 세계 각지에서 데이터센터 인프라 투자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한국이 이 같은 투자 열기에서 소외된 것이다. 한 시장 관계자는 “2~3년 전까지만 해도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다수의 빅테크 기업이 한국에서 데이터센터를 확보하겠다는 입장이었는데, 상황이 변했다”며 “데이터센터는 혐오 시설이라는 낙인이 시장 성장을 막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한국 데이터센터 투자 소식은 아마존웹서비스(AWS)가 2023년 10월 인천 서구에 총 7조8,000억원을 투자해 자체 인터넷 데이터센터(IDC)를 짓겠다고 발표한 이후 뚝 끊겼다. 한국에서 등을 돌린 빅테크들의 발길은 동남아시아와 중동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달 구글은 태국에 1조3,000억원을 투자해 클라우드·AI 인프라를 구축하기로 했고, MS도 인도네시아·아랍에미리트에서 IDC 건립 계획을 내놨다. 아마존 역시 싱가포르 클라우드 컴퓨팅 인프라 확장에 12조원을 투자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