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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과잉 포화 속 치열한 中 전기차 시장 "129개 브랜드 중 15개만 생존" 예상 가격 경쟁 과도, 수익 못 내는 곳 태반

향후 5년 내 중국 전기차 제조사 대다수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최근 위기론이 확산하고 있는 중국 전기차업계가 시장에서 대거 정리돼 2030년까지 현재의 8분의 1 수준인 15개 업체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구조 조정을 ‘옥석 가리기’의 본격화로 봐야 할지, ‘제2의 헝다 사태’를 초래할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현재 129개, 치열한 경쟁으로 산업 재편
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글로벌 컨설팅업체 알릭스파트너스(Alix Partners)는 중국 전기차 시장이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산업이 재편됨에 따라 현재 전기차나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차량을 판매하는 129개 업체 중 2030년에 살아남는 브랜드는 15개에 불과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들 15개 업체는 2030년까지 중국 전기차 및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시장의 약 75%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생존 업체의 연간 자동차 생산량은 평균 102만 대로 전망했다. 다만 살아남는 기업이 어디일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스티븐 다이어 알릭스파트너스 아시아 자동차 부문 책임자는 중국에서 업체 간 통합은 다른 국가보다 느리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지역 경제와 고용, 공급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지방 정부가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신에너지 차량 시장 중 하나로, 가격 전쟁과 빠른 혁신, 그리고 신생 업체들이 지속적으로 기준을 높이고 있다”며 “이런 환경은 기술과 비용 효율성 측면에서 놀라운 진전을 끌어냈지만, 많은 기업이 지속 가능한 수익성을 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신규 진입 업체보다 망한 업체가 더 많아
실제 중국 자동차 산업은 현재 가격 경쟁과 공급 과잉이라는 이중 부담에 직면해 있다. 대표적인 중국 자동차 기업인 비야디(BYD)와 리오토를 제외하면 연간 기준으로 수익을 내는 기업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중국에서는 옥석가리기가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알릭스파트너스에 따르면, 중국 전기차 업체 수는 2018년 34곳에서 2023년 80곳으로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지난해 77곳으로 줄며 처음으로 성장세가 꺾였다. 지난해 16곳이 문을 닫은 여파다.
중국 내 할인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JP모건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평균 할인율은 8.3% 수준이었지만, 올 4월엔 16.8%가 돼 2배 안팎으로 늘었다. 올해 들어선 가격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달 BYD가 22차종 가격을 최대 34%까지 깎아주는 파격 할인 행사를 발표하자, 체리·상하이자동차 등 10곳 안팎이 최대 47%까지 가격을 낮추며 할인 ‘치킨 게임’에 뛰어들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 하락이 일견 유리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가격 변동성이 신뢰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차를 사자마자 가격이 더 떨어지면 어쩌냐”는 불만이 늘고 있다. 제조사들이 생존을 위해 비용을 줄이는 과정에서 품질, 안전, 사후 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BYD는 공격적인 가격 정책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으나, 업계 전반에 걸친 수익성 저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 BYD는 5월 말 주가 정점을 찍은 이후 2,150억 위안(40조6,050억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제2의 헝다 사태 우려도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으론 중국의 과잉 생산능력이 꼽힌다. 2020년 전후 정부 지원 아래 전기차 스타트업이 급증하고, 기존 자동차 업체들도 속속 전기차 생산 시설을 늘린 영향이다. 중국 시장조사 업체 가스구에 따르면, 작년 중국 자동차 공장의 평균 가동률은 49.5%였다. 공장의 절반 가까이는 멈춰 있다는 뜻이다.
전기차 내수도 생산량 증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작년 중국에선 재작년 대비 34% 안팎 늘어난 1,289만 대의 전기차가 생산됐는데, 이 기간 내수 전기차 판매량(1,158만 대)은 22% 증가에 머물렀다. 물론 중국 전기차 시장은 미국과 유럽 등 곳곳에서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계속되는 상황과 달리 성장하고 있지만, 생산량 증가 폭이 이를 상회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중국 내에선 판매 실적을 올리기 위해 신차를 출고 처리한 뒤 실제 운행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고차로 판매하는 수법도 횡행하고 있다. 최근 모건스탠리는 중국 중고차 시장에 3개월 이내에 출시된 주행 거리 50㎞ 이하 중고차가 전체 중고차의 13% 안팎에 달하는 1,960만 대라고 추산했다.
이에 중국 업계 내부에서도 쓴소리가 나온다. 창청(長城)자동차의 웨이젠쥔 회장은 지난 5월 2중국 매체 신랑재경 인터뷰에서 “중국 자동차 산업엔 ‘헝다’가 이미 존재하지만 아직 터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가격 치킨 게임으로 수익률을 깎아 먹어 가며 판매량 경쟁을 하는 지금의 중국 자동차 업계 세태를, 무분별한 투자·확장을 거듭하다 도산해 중국 경기를 침체에 빠뜨린 부동산 업체 헝다에 비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