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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선순환 위해 고연차 직원 대상으로 희망퇴직 中 저가 공세에 글로벌 TV 시장 2위 자리도 '흔들' 프리미엄 TV에선 하이센스 등에 밀려 점유율 하락

LG전자가 TV사업본부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다. 지난 2023년 이후 2년 만에 단행하는 인력 구조조정으로,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에 글로벌 TV 시장에서 점유율이 하락하고 지난 2분기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LG전자는 고연차 직원의 희망퇴직을 통해 인력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중국 가전기업과 협업해 중저가 가전제품을 출시하는 등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30~40대 감소로 고령화, 50대 이상 희망퇴직
19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최근 MS(미디어엔터테인먼트솔루션)사업본부 소속 직원 중 50세 이상이거나 최근 3년간 성과가 저조한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희망퇴직은 다음 달 중 진행될 예정이며 신청자에게는 근속기간 및 정년까지 남은 기간에 따라 최대 3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위로금과 자녀 학자금 등이 지급된다. 회사 측은 인력 선순환 차원에서 고연차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해 인력 운용의 효율성과 유연성을 높이고, 인사 적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LG전자는 최근 2년간 30~40대 직원이 줄어들고 50세 이상 직원은 늘어나 인력 고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LG전자의 50세 이상 직원은 1만1,993명으로 전체의 16.3%를 차지한다. 2022년과 비교해 50세 이상 직원은 23.7% 늘었으나, 같은 기간 기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30~49세 직원 수는 2.5% 감소해 인력 조정 필요성이 제기됐다. LG전자는 앞서 지난 2022년과 2023년에도 인력 효율화를 위해 희망퇴직을 실시했으며 당시 5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최대 3년 치 연봉을 위로금으로 지급했다.
구조조정 압박은 LG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말 LG디스플레이 역시 비용 절감과 운영 효율화를 위해 5년 만에 사무직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근속 5년 이상 직원 중 만 40세 이상 또는 책임급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퇴직 지원금으로 기본급 30개월분과 전직 지원금(기본급 6개월분), 학자금을 지급했다. 이어 올해 6월에는 생산직을 대상으로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45세 이상 생산직 직원을 대상으로 기본급 45개월분을 지원했다. 이와 함께 200명 이상의 직원을 계열사 LG이노텍으로 파견하기로 했다.
TV사업 부진에 2분기 영업이익 46.6% 감소
LG전자가 구조조정에 나선 배경에는 최근의 실적 악화도 자리하고 있다. LG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은 6,39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6.6% 감소했다. 특히 TV사업을 담당하는 MS사업본부는 1,91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부진을 이어갔다. LG전자는 글로벌 TV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매출 기준 2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중국 업체의 추격으로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 출하량 기준 점유율은 10.7%에 그치며 TCL, 하이센스 등 중국 가전 기업에 밀려 사실상 글로벌 TV 시장 4위로 내려앉았다.
중국 TV 제조사의 출하량 증가는 내수 확대와 공격적 저가 공세가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중국산 TV는 글로벌 시장에서 20~50%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며 “여기에 중국 정부의 구형 제품 교체 보조금 정책이 더해지면서 중국 기업의 출하량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결국 치열한 단가 경쟁 속에 LG전자도 가격을 낮추며 대응에 나섰다. LG전자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상반기 TV 판매가격은 전년 대비 2.5% 하락했고, 모니터와 사이니지 가격도 같은 기간 각각 1.8%, 3.6% 떨어졌다.
중국 업체의 공세는 국내 기업이 강세를 보여 온 프리미엄 TV 시장으로도 확대됐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1분기 글로벌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출하량 기준 1위 자리를 지켰지만, 점유율이 1년 만에 11%포인트나 하락했다. 1년 전 2위였던 LG전자는 같은 기간 점유율이 23%에서 16%로 줄면서 4위까지 밀려났다. 프리미엄 TV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비롯한 퀀텀닷(QD) 기술을 적용한 제품으로 8K 이상의 액정표시장치(LCD), 마이크로 발광다이오드(LED) TV 등이 포함된다.
국내 기업의 점유율을 뺏어간 건 하이센스와 TCL다. 그동안 저가형에 집중했던 두 회사는 내수 매출 확대를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며 전년 대비 세자릿 수의 출하량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들은 최근 대형 및 프리미엄 TV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1년 새 각각 6% 포인트씩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LG전자를 추월했고, 이제는 1위 삼성전자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실제로 1분기 프리미엄 TV 부문 2위에 오른 하이센스의 점유율은 20%로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8% 포인트로 크게 줄였고, TCL도 19%로 3위에 올랐다.

中 기업과의 협업 통해 중저가 가전시장 공략
프리미엄 TV 시장마저 수세에 몰리자, LG전자는 지난해부터 보급형 가전시장에 눈을 돌렸다. 동남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지역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가전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어,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가는 성장성이 큰 시장이 ‘중국판’이 될 것이란 위기감이 작용했다. 그러나 LG전자의 기존 제품으로 승부하기에 한계가 있았다. 기존 생산방식으로 중국의 가격을 맞추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LG전자는 압도적 가성비를 갖춘 중국 기업과 손잡는 전략을 택했다.
LG전자는 올해 초 중국 가전업체 스카이워스와 9㎏짜리 드럼세탁기를, 오쿠마와는 400L급 2도어 냉장고를 공동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스카이워스는 하이센스, TCL, 샤오미에 이어 중국 내 4위 가전기업이며, 오쿠마는 콜드 체인 라인에 강점을 가진 국영 하이테크 기업이다. 이번 협업에는 생산만 위탁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을 넘어 제품 기획·개발부터 함께 진행하는 합작 개발 방식(JDM)이 적용됐다. 현재 양산에 돌입해 이달 중 유럽에 공급될 예정이다.
LG전자는 냉장고와 세탁기 JDM의 사업성이 검증되는 대로 에어컨, 건조기 등 다른 가전제품으로 품목을 확대할 계획이다. 판매 국가도 유럽을 넘어 중국, 동남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넓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프리미엄 제품을 사기엔 소득 수준이 떨어지는 선진국 저소득층과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가성비 가전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며 “LG의 브랜드 파워에 중국의 가성비를 입힌 새로운 사업 모델이 가전시장에 나왔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