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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총식 파업에 몸살 앓는 판교, 이달만 세 곳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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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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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첫 파업' IT 기업들 잇따라
게임업체 네오플 파업 장기화
카모·한컴도 임금 놓고 노사 갈등
21일 경기 성남 카카오 판교 아지트 앞에서 화섬식품노조 카카오지회가 크루유니언 공동집회를 열고 있다/사진=화섬식품노조 카카오지회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던 판교 노동조합이 180도 바뀌었다. 이달에만 세 곳이 파업을 예고하는 등 강경 투쟁 기조가 확산하고 있다. 치열한 플랫폼 경쟁 속 기업 간 이해관계는 각기 다르지만 IT 노조들은 근로 환경·처우의 유사성 등을 바탕으로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분위기다. 유연성으로 대표되던 IT 기업 문화가 전환기에 접어들고 과반 노조가 확대하는 가운데, 조직력과 협상력 제고를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IT업계 노무 리스크 확대

22일 IT업계에 따르면 한글과컴퓨터(한컴), 네오플, 카카오모빌리티 노조는 창립 이후 최초로 파업을 단행했다. 세 회사의 공통점은 모두 지난해 높은 실적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비대면 특수로 ‘연봉 800만원 일괄 인상’ 등을 경험하며 눈높이가 높아진 직원들은 불경기 속 최대 실적을 냈음에도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 한컴은 지난해 14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려 흑자전환했다. 올해 임금 교섭에서 회사는 처음엔 임금 2% 인상안을 내놨다가 최종 5.8%를 제시했다. 한컴 노조 측은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냈지만 이에 부합하는 임금 인상률을 제시하지 않고 성과 중심 인센티브 보상체계도 일방적으로 도입했다"고 했다.

네오플은 지난해 7,91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6배 수준이다. 네오플 노조는 던전앤파이터(CMDF) 모바일 중국 출시 지연을 이유로 직원의 인센티브(GI)가 줄어들었다며 정당한 보상을 위해 이익분배금 4% 지급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CMDF GI는 해당 프로젝트 개발팀에만 한정된 성과급이다. 그럼에도 노조는 이를 30%로 올려달라며 전사 차원의 총파업을 이끌어낸 바 있다. 그런데 돌연 이 요구를 접고 전 직원 대상 PS 제도만 고집하면서, 파업의 핵심 명분을 스스로 뒤집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카카오모빌리티 역시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68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1,100억원 증가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노조 측과 임금·단체협약(임단협) 협상 결렬이 이뤄졌었다. 지난 6월 10일 크루유니언은 "카카오모빌리티는 높은 실적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이고 낮은 수준의 보상안을 제시해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와 성과를 외면했다"고 말했다.

네이버의 손자회사 6개 법인도 올해 임단협이 결렬돼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공동성명)는 지난 11일 공식 쟁의 활동에 나섰다. 네이버 또한 올해 2분기 역대 최대 매출을 찍었다. 오세윤 화섬식품노조 공동성명 지회장은 "네이버는 올해 2분기 단 3개월 동안 5,216억원의 이익을 얻었지만 이익의 5%도 되지 않는 노조가 요구한 금액은 거부하고 있다"며 “사측은 6,000억원 규모의 스페인 중고거래 플랫폼 ‘왈라팝’ 인수는 투자하면서도 정작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아 박탈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21일 경기 성남 카카오 판교 아지트 앞에서 화섬식품노조 카카오지회가 크루유니언 공동집회를 열고 있다/사진=화섬식품노조 카카오지회

성장기 잠재됐던 갈등 수면 위로

지난 2019년 4월 네이버 노조가 판교 최초의 파업을 벌였을 때만 해도 쟁의 행위가 이처럼 강경하지는 않았다. 당시 네이버 노조원들은 오후 3시께 인근 영화관으로 가서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단체 관람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23일 한컴 노조가 부분 파업에 돌입하면서 판교 한컴타워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자 주요 IT 기업 노조가 대거 지원 사격에 나섰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카카오지회, ASML지회, 넥슨지회는 투쟁 기금을 전달했다.

전문가들은 임단협 갈등은 어느 업계, 어느 시기나 흔히 발생하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보상에 대한 불만’만으로 최근의 급격한 변화를 설명하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노조 내부에선 “IT 업계 노조가 태동기를 지나 조직력과 협상력을 높이는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말도 나온다. 네이버(1999년), 카카오(2006년) 등 한국에 큰 IT 기업이 등장한지 20여년이 지났을 뿐이고, 노조가 처음 탄생한 것도 2018년 4월(네이버 지회)이 처음일 정도로 역사가 길지 않다. 노조 역시 그동안은 이른바 적응기를 거쳤을 뿐이고, 이젠 협상력을 높이는 법까지 터득했다는 것이다.

강성 노조의 출현이 직원 고령화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리보전 욕구가 강해지면서 노조도 함께 조직력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판교 특유의 소수 경영진 중심 의사결정 구조가 노조 강경화의 원인 중 하나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분사나 경영진 영입 등의 중요 의사 결정 때마다 초기 스타트업 시절처럼 일부 경영진끼리만 모든 결정을 내리고, 직원들의 목소리는 무시한다는 시각이 노조 내부에서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세윤 네이버 노조 지회장은 “판교에 노조가 생긴 지 꽤 오래됐지만 회사의 불통은 변함이 없다”며 “조합원 사이에선 ‘우리가 그간 너무 소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한 것 아닌가’하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산업 경쟁력 저하 우려"

회사 경영진을 비롯한 일각에선 노사 갈등의 격화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진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한 IT회사 관계자는 “그동안 경영 상황이 나쁘다고 직원 임금을 깎았던 적은 없다. 반짝 실적을 이유로 임금을 대폭 올리거나 보상 체계를 단번에 바꿀 수 없다는 걸 노조도 잘 알면서도 파업을 하겠다며 강경한 입장만 고수하는 측면이 있다”며 “어떤 영향 때문인지 IT업계 노조가 급격히 강경해지고, 이에 따라 잘 유지해온 노사 간 신뢰 역시 깨지는 것 아닐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친노조 성향 정부가 들어서면서 IT업계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민주당은 최근 IT·게임업계 노조들과 잇따라 만나 포괄임금제(근로시간을 정확히 산정하기 어려운 근로 형태에서 야근 등 각종 수당을 미리 감안해 일정액을 지급하는 임금 방식) 폐지, 노동 환경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 고용노동부 장관에 지명되면서 노조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기울기가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IT 기업 임원은 “혁신과 도전의 상징이었던 판교가 어쩌다 민주노총식 파업에 휘둘리게 됐는지 모르겠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들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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