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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상반기 직원 15% 감원 파운드리 수요 확보 실패로 추가 감원 가능성 신공장 설립도 취소, 연말까지 22% 감원 목표

인텔이 지난해 1만5,000명을 감원한 데 이어 올해도 대규모 구조조정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파운드리 부문에서 고객사 유치에 실패하며 향후 반도체 제조사업이 중단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미국 정부와 소프트뱅크가 지분 인수를 통해 대규모 투자에 나선 가운데, 업계에서는 단순한 자금 지원이 아닌 기술력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텔로서는 첨단 공정인 18A를 적용한 팬서레이크의 성공 여부가 반등의 가능성을 가늠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감원 여파로 리눅스 관리자들도 사라져
19일(현지 시각) 정보통신(IT)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계속된 인텔의 대규모 감원이 오픈소스 운영체제인 리눅스 지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리눅스 전문 매체 포로닉스는 "인텔 프로세서 온도 모니터링 드라이버인 코어템프(CoreTemp)를 개발하던 인력이 퇴사하면서 현재 해당 드라이버는 돌볼 사람이 없는 '고아 상태(orphaned)'가 됐다"며 "서버용 제온(Xeon) 프로세서를 위한 일부 드라이버도 같은 상태"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관리자가 사라진 리눅스 드라이버는 버그가 발생해도 수정될 가능성이 낮고, 새로운 하드웨어나 리눅스 커널의 새 버전과의 호환성 문제가 생겨도 해결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인텔은 지난해 1만5,000명을 감원한 데 이어, 올해 3월 립부 탄 최고경영자(CEO)이 취임한 이후 비핵심 사업 매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에서는 "파운드리 수요 확보가 어려워지면 반도체 생산을 중단할 수 있다"며 "올해 상반기 이미 직원의 15%를 감원했으며, 상황에 따라 추가 감원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인텔은 올해 연말까지 전년 대비 22% 줄인 7만5,000명 수준으로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인텔이 파운드리 투자와 신공장 설립 계획을 잇달아 취소하거나 축소함에 따라 갈 곳을 잃은 인력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美 정부, 인텔 지분 인수해 이사회 개입 가능성
이런 가운데 인텔의 지분을 인수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 정부는 직접 자금을 투입해 인텔 지분 10%를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계획은 지난 1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탄 CEO의 백악관 면담에서 처음 논의됐다. 국내 제조업을 확장해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기를 원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경영난에 빠진 인텔의 지분을 직접 지분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아직 구체적인 규모와 조건은 조율 중이며, 반도체과학법(CHIPS) 자금을 이용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기술 대기업 소프트뱅크 그룹도 인텔이 발행하는 신주 20억 달러(약 2조7,790억 원)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2%의 지분을 취득하며 대규모 자금 지원에 나선 것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이번 투자로 미국 내 첨단 반도체 제조와 공급망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며 "인텔이 그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투자 계획은 트럼프 행정부의 지분 매입 보도가 나온 시점과 맞물렸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손 회장을 비롯해 오픈AI, 오라클 등이 참여하는 5,000억 달러 규모의 AI 투자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를 발표한 바 있다.
AI 협력을 약속한 트럼프 행정부와 소프트뱅크가 30%에 이르는 지분을 확보할 경우, 인텔의 반도체 제조사업 중단과 관련한 이사회 결정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 인텔 파운드리는 미국 기업들이 삼성전자와 TSMC에 첨단 반도체 공급망을 의존하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필수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사업"이라며 "현재 수익 악화로 반도체 부문의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이사회에 대응해 사업을 지속할 명분을 제공하고 나아가 실제 의사결정에도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투자 유치보다 18A 낮은 수율 극복이 선행돼야
그러나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기 전까지 인텔은 자력으로 버티며 사업 기반을 유지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기술력이다. 인텔은 최근 도입한 18A 공정이 낮은 수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8A는 반도체의 회로선폭을 1.8㎚(나노미터)로 제조하는 첨단 기술이다. 인텔은 지난 1월 18A 공정을 적용한 첨단 노트북용 중앙처리장치(CPU) '팬서레이크(Panther Lake)'를 연내 대규모로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텔은 팬서레이크를 통해 첨단 제조역량을 입증하면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수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공장 신설과 기존 공장의 설비 업그레이드를 포함한 18A 공정 개발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 하지만 테스트 결과 18A 공정 칩 중 소수의 비율만이 고객사에 판매할 수 있을 만큼 양호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인텔의 자체 사양 기준을 충족한 칩 비율은 약 5%에 그쳤고, 이 수율은 올여름 10% 수준으로 상승하는 데 그쳤다.
로이터통신은 인텔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팬서레이크의 출시 예정 시점인 올해 4분기까지 수율을 급격히 높이는 일은 어려운 과제"라며 "수율 안정화에 실패할 경우 일부 제품은 손해를 보며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다만 데이비드 진스너 인텔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구체적인 수치는 밝히지 않은 채 "수율이 그보다 더 높다"며 부인했다. 탄 CEO는 "인텔이 보유한 공급망 네트워크를 적극 동원해 수율 개선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