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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위슨, 美 무역제재에 FLNG 시장서 사실상 퇴출 신조 FLNG 건조기업은 韓 조선사 외 대안 없는 상황 美中 무역 갈등 심화에 韓 기업 독식 환경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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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조선업계가 미·중 무역 갈등 심화에 따른 반사이익을 얻을 전망이다. 최근 FLNG(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 설비, Floating Liquefied Natural Gas)를 신규 수주하며 입지를 키워가고 있던 중국 조선소가 미국 제재로 발이 묶이면서다. 해양 플랜트 부문의 유일한 경쟁사가 제거된 가운데 K-조선의 독점적 입지가 더욱 공고해지는 모습이다.
美, 中 유일 FLNG 생산업체 '위슨조선소' 제재
18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최근 중국 해양 플랜트 전문 조선사인 저우산후이성해양공정유한공사(Zhoushan Wison Offshore and Marine Limited·위슨조선소)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러시아 LNG(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에 발전 모듈을 제작해 공급했다는 이유다. 위슨조선소는 러시아 대규모 LNG 개발 사업인 ‘Arctic LNG-2’에 발전 모듈을 공급한 바 있다. 해당 프로젝트는 러시아의 핵심 에너지 개발 사업이었지만, 미국의 제재 등으로 인해 지난해 10월 가동을 중단했다.
이번 제재에 따라 위슨조선소는 더 이상 글로벌 프로젝트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앞으로 위슨조선소 미국인을 비롯해 모든 미국 기업과 거래가 금지된다. 또 제3국 기업이 제재 대상과 거래할 경우에도 같은 제재를 받게 된다. 위슨조선소를 포함해 위슨과 거래하는 기업은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된다는 점도 추가 수주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 대상에 포함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기 어려워진다”며 “대부분 국제 거래가 달러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슨조선소의 저가 수주에도 발주처가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사실상 글로벌 조선업계에서 중국이 퇴출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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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쟁사 퇴출에 K-조선 '환호'
국내 조선업계에선 미국의 대중 제재로 우리나라 해양 플랜트 사업에 반등의 기회가 열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위슨조선소는 그간 삼성중공업 외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FLNG를 건조하던 업체로, 지난해 8월 삼성중공업이 기본설계를 맡았던 미국 델핀(Delfin Midstream) FLNG 1호기의 시공 사업을 따내 눈길을 끌었다. 델핀은 멕시코만에서 진행 중인 LNG 프로젝트에 FLNG 4기를 설치해 연간 1,330만 톤(t)의 LNG를 생산할 계획인데, 이 중 1호기 건조를 중국 업체가 가져간 것이다. 지난해 초에는 나이지리아 FLNG 프로젝트의 사전 기본설계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하지만 위슨조선소가 퇴출됨에 따라 삼성중공업의 델핀 FLNG 2호선과 모잠비크 코랄 술 FLNG 2호기의 독점 수주 가능성이 커졌다. FLNG는 계약금액이 2조~3조원에 달하는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두 프로젝트의 사업 규모는 각각 20억 달러(약 2조8,000억원), 25억 달러(약 3조6,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수주와 매출 인식 사이 시차를 감안하면 삼성중공업이 2016년 이후 9년 만에 매출 10조원 클럽에 다시 가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도 나온다.
최근 해양 플랜트 외연을 확장한 한화오션도 FLNG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화오션은 올해부터 FLNG 수주에 나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앞서 한화오션은 대우조선해양 시절인 2016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FLNG 선박을 건조해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에 인도한 바 있으나, 이후 수주 실적이 없다가 한화그룹 편입 후 해양 플랜트 분야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4월 ㈜한화건설 부문에서 풍력 사업, 글로벌 부문에서 플랜트 사업을 인수했고, 지난해 11월엔 한화오션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싱가포르 해양 설비 전문 제조사 다이나맥(Dyna-Mac Holdings)을 함께 품었다. 다이나맥은 해양 플랜트 상부 구조물 전문 제작사로, FLNG와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FPSO·Floating Production Storage and Offloading) 분야에서 건조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화오션은 다이나맥 인수로 해양 플랜트 생산 거점을 확대하고 원가 경쟁력 측면에서 시너지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中 수주잔량·가격 경쟁력 우위, 제재 실효성 "글쎄"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미국의 중국 조선산업 제재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수개월간의 조사 끝에 중국이 불공정한 정책과 관행으로 조선·해운 산업을 지배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 외국 기업에 대한 장벽 강화, 강제적인 기술 이전과 지식재산권 탈취 등 등을 통해 자국 조선업을 육성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특혜와 보조금에 힘입어 중국의 글로벌 조선 산업 점유율은 2000년 약 5%에서 2023년에는 50%를 넘기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클락슨스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은 전 세계 신조선 주문의 70%를 수주했으며, 한국 17%, 일본 5%가 그 뒤를 이었다. 이에 반해 한때 세계 조선 시장을 장악했던 미국의 점유율은 1% 이하로 추락했다. 1980년대 300여 개에 달했던 미국의 조선소는 이제 20개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미국 정부는 무역법 301조에 따라 관세나 쿼터 등의 제재를 검토하는가 하면, 미국 노동조합은 중국산 선박에 추가 항만사용료 부과를 제안했다. 그러나 업계는 선주들이 중국산 선박을 미국 외 항로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 중국 조선소 임원은 "미국의 제재를 과도하게 우려하지 않는다"며 "특히 컨테이너선 분야에서는 중국을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조선 산업 부활을 공언했으나, 이 역시 실현 가능성은 작다는 평가다. 미 의회조사국은 "미국산 선박 가격이 세계 시장의 4배"라며 "중국이 연간 1,000척 이상을 건조하는 동안 미국은 5척 미만"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