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EU, 코닝 계약 조건 반독점 여부 조사
코닝은 양보안 제시, 독점 조항 폐지
완전경쟁 시장까지는 여전히 요원

유럽연합(EU)이 스마트폰 유리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 온 소재 전문 기업 코닝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실시한 가운데, 코닝이 단독 공급 계약 조항을 폐기하겠다는 양보안을 제출했다. 이에 따라 중소 업체들의 시장 진입 가능성이 열렸지만, 기술력 격차와 글로벌 제조사들과의 협력 구조를 감안하면 단기간에 경쟁 구도로 전환되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애플과 삼성 등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당분간 코닝과의 공급망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면서 코닝의 실질적인 시장 지배력 역시 그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단독 계약 해소, 시장 전환 신호탄
19일(현지시각) IT전문 매체 WCCF테크에 따르면 최근 EU 집행위원회는 코닝의 부품 독점 공급 계약과 최소 구매를 강제하는 조항을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막는 핵심 불공정 행위라고 최종 판단했다. 코닝은 EU의 판단에 따라 기존의 독점 공급과 최소 구매 조항을 없애기로 했다. 하지만 주요 고객사인 애플은 이번 조치에서 제외돼 기존 계약 관계를 그대로 유지한다.
EU 집행위는 코닝이 스마트폰, 태블릿, 웨어러블 기기에 쓰는 알칼리-알루미노실리케이트 유리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 계약을 강요해 경쟁을 해친다고 보고 지난해 말부터 조사를 벌여 왔다. 조사에서는 독점 소싱 의무, 독점권 리베이트, 휴대폰 제조업체가 경쟁 제안에 대해 코닝에 알리고 코닝이 가격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에만 이러한 제안을 수락하도록 하는 조항에 초점이 맞춰졌다.
또한 독점 구매 의무와 도전 조항이 없는 원시 유리를 처리하는 기업과의 거래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이와 관련해 코닝은 “사업을 하는 모든 관련 규정과 법규를 준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그 일환으로 지역 규제 당국과 협력해 열린 토론과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EU의 조치를 두고 애플의 면책을 주목하는 모양새다. EU 집행위는 “코닝이 애플에 공급하는 유리 부품은 애플의 자체 공법으로 개발한 ‘특수 조성 맞춤형 유리’라는 점에서 이번 조사 범위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아이폰과 애플워치 등에 사용되는 세라믹 실드(Ceramic Shield) 등 특수 부품 공급 계약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며, 애플은 코닝과의 핵심 협력 관계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자발적 시정 조치로 사업 불확실성 낮춰
코닝은 알칼리-알루미노실리케이트(AS) 소재 유리로 제조한 스마트폰 커버유리 ‘고릴라 글래스’를 삼성전자, 애플 등 스마트폰 제조사에 공급하는 회사다. 이번 조사에서 코닝은 스마트폰 제조사와 완성 업체에 커버유리 전부 또는 거의 전부를 코닝으로부터 조달해야 한다는 조항을 계약에 담아온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해당 조항을 준수하면 가격을 우대하는 리베이트도 제공했다. EU는 이 같은 계약으로 경쟁 유리 생산업체가 배제됐을 수 있다며 고객사의 선택권이 줄어들고, 가격이 인상됐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EU는 코닝이 반독점 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전 세계 매출의 10%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코닝은 과징금을 피하고자 스스로 시정 조치에 합의했다. 기존에 OEM(완성제품 제조사) 및 가공업체와 맺었던 계약에서 독점 조항과 최소 구매 의무를 없애고, 대량 구매와 묶은 할인 혜택 등을 없애겠단 설명이다. 또 특허 분쟁이 발생하면 계약 위반을 근거로 소송하지 않고 오직 특허 침해 여부로만 다투기로 했다. 이 합의는 앞으로 9년 동안 유효하며, 독립 감시인이 이행 여부를 감독한다.
이에 따라 EU는 과징금 부과 없이 시장 경쟁을 촉진한다는 정책 목표를 이뤘다. 반면 코닝은 막대한 벌금을 피하며 사업 불확실성을 덜었고, 애플은 안정된 부품 공급망을 지켰다. 아울러 삼성전자, 소니, 구글, HP, 델, 노키아 등 여타 스마트폰 제조사들 또한 공급사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가격 협상력과 제품 다변화 가능성을 확보했다. EU는 “이번 조치를 통해 소비자 선택권, 가격 경쟁력, 품질 혁신 전반이 확대될 것”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대형 제조사와 협력 지속, 고수익 포트폴리오 ‘굳건’
다만 관련 시장이 완전경쟁 구도까지 이어지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코닝이 쌓아온 기술적 신뢰와 안정적인 생산 체계를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탓이다. 유리의 두께와 투명도, 강도 등은 스마트폰의 성능 및 사용자 경험과 직결되는 만큼 제조사들로선 검증되지 않은 공급업체와의 협력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결국 이번 변화는 중장기적으로 시장 경쟁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순 있어도, 당장 유통 지형을 흔들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다.
코닝의 시장 내 지위 또한 한동안 공고히 유지될 전망이다. 코닝은 스마트폰용 커버유리뿐 아니라 반도체용 유리기판을 비롯한 고수익 사업을 다수 보유한 복합소재 전문 기업으로, 특정 부문에서 다소 변동이 생기더라도 기업 전체의 수익 기반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국내 기업과의 연결고리 역시 코닝의 단기 충격을 제한하는 요인이다. 코닝은 현재 LG디스플레이, 삼성디스플레이 등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삼성과는 ‘삼성코닝어드밴스드글라스’라는 합작법인 형태로 사업을 운영 중이다. 이 같은 협력 구조는 단순한 공급 관계를 넘어 공동 개발 및 생산 파트너십으로 이어지고, 여타 업체가 단기간 내 이 자리를 대체하긴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코닝이 한국 시장 사업 전략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코닝은 지난 2023년 한국에 세계 최초로 차세대 초박막 벤더블(휘어지는) 글라스 제조 공급망을 구축하고, 2028년까지 총 15억 달러(약 2조원)를 투자해 한국을 글로벌 허브로 키운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반 홀 코닝 한국 총괄사장은 “코닝 테크놀로지 센터 코리아는 우리가 보유한 최대 규모 연구개발(R&D) 센터 중 하나”라며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한다는 점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지난 50년 만큼 앞으로 다가올 50년도 한국에서 새로운 기술과 기회를 창출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