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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사이윈드, 에크노글루타이드 투여 성과 발표 韓 바이오 업계도 비만 치료제 개발·유통 '속도' 비만 치료제 시장에 의문 표하는 글로벌 투자 기관들

중국 기업이 개발한 비만 신약이 미국과 유럽의 선발 주자 약품보다 우위라는 임상 시험 결과가 발표됐다.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후, 세계 각국이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며 시장 경쟁이 눈에 띄게 격화하는 양상이다.
사이윈드, 비만 신약 효능 공개
2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중국 항저우의 바이오 기업인 사이윈드 바이오사이언스(Sciwind Biosciences)는 지난 21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란셋 당뇨병·내분비학(Lancet Diabetes & Endocrinology)‘에 "비만 신약 후보 물질 ‘에크노글루타이드’ 투여를 통해 48주 만에 평균 15% 이상 체중 감소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에크노글루타이드는 위고비와 같은 GLP-1 계열 약물로, 식욕 조절과 혈당 조절을 돕는 호르몬인 GLP-1을 모방해 식사량을 줄이고 포만감을 늘려 체중 감소를 유도한다.
사이윈드는 자사 비만 신약이 위고비와 달리 몸속 에너지를 조절하는 신호 물질인 사이클릭 AMP(cAMP)를 더 정밀하게 자극한다고 밝혔다. 사이클릭 AMP는 당과 지방을 어떻게 쓰고 저장할지 조절하며, 이를 통해 체중 감량 및 혈당 조절 효과를 더욱 끌어올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임상 3상 시험 결과 에크노글루타이드 투약군의 93%는 최소 5% 이상 체중을 감량했다. 이는 위고비(87%), 마운자로(85%) 등이 중국 임상시험에서 보인 결과를 넘어서는 수치다.
현재 사이윈드 외에도 다수의 중국 바이오 기업이 비만 신약을 개발 중이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각)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은 미국 일라이 릴리와 중국 이노벤트 바이오가 공동 개발한 ‘마즈두타이드’를 시판 허가했다. 마즈두타이드는 세계 최초로 GLP-1·GCG를 동시에 모방한 이중 작용제로, 미국 시장에서 위고비, 젭바운드와 본격적인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유나이티드 래버러토리스는 GLP-1·GCG·GIP 세 가지 호르몬을 동시에 모방한 삼중 작용제 후보 물질 ‘UBT251′을 개발 중이다. 이 약물은 체중 감량 외에도 만성 신장 질환, 지방간 질환, 제2형 당뇨병 등을 겨냥해 제작됐으며, 현재 초기 임상 시험 단계에 진입한 상태다.

관련 시장 뛰어드는 韓 제약사들
비만 신약 개발·유통에 힘을 쏟는 나라는 중국뿐만이 아니다. 국내 제약사들 역시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도입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5월 HK이노엔은 사이윈드와 에크노글루타이드의 국내 개발 및 상업화를 위한 라이선스 및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으로 HK이노엔은 사이윈드에 계약금과 단계별 기술료 외에 출시 후 매출에 따른 경상기술료를 지급하고, 에크노글루타이드의 국내 독점 개발 및 상업화 권리를 갖는다. 향후 HK이노엔은 국내에서 에크노글루타이드의 제2형 당뇨 및 비만 3상을 동시에 추진할 계획이다.
같은 달 한독도 인도 소재의 바이오 제약사 바이오콘(Biocon)과 리라글루티드 성분 비만 치료제에 대한 국내 독점 판매 및 유통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바이오콘이 개발한 리라글루티드는 당뇨병 환자의 혈당을 낮추거나 비만 환자의 체중을 줄이기 위해 개발된 GLP-1 유사체로, 합성 펩타이드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동일 성분의 비만 치료제로는 노보노디스크의 ‘삭센다’가 있다. 해당 계약으로 한독은 바이오콘 비만 치료제의 국내 허가 및 판매·유통을 담당하게 된다.
이 밖에도 △한미약품 △광동제약 △대원제약 △동아에스티 △유한양행 △일동제약 △인벤티지랩 △디앤디파마텍 △펩트론 △고바이오랩 등 10여 곳의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들이 GLP-1 유사체 기반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이 중 한미약품의 비만 치료제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르다. 한미약품의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지난 1월 국내 3상 임상 시험을 개시했다. 목표 임상 종료 시점은 오는 2026년 상반기이며, 향후 3년 내 국내에서 상용화될 예정이다.
시장의 회의적 반응
다만 이 같은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개발 열풍이 어디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시장이 비만 치료제의 미래 성장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근 글로벌 투자 기관들은 비만 치료제 시장에 대한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 조정하는 추세다. 지난 5월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비만 치료제 시장의 2030년 규모 전망치를 기존 1,300억 달러(약 178조1,260억원)에서 950억 달러(약 129조2,285억원)로 27% 내려 잡았다. 아사드 하이더 골드만삭스 헬스케어 리서치 총괄은 “비만 치료제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으며 환자당 투약 기간도 감소하고 있다”며 “이전 전망치는 모든 비만 환자에게 동일한 약을 쓰는 구조를 가정했지만 실제 시장은 다양한 수요로 분화되고 있다”고 하향 조정 배경을 설명했다.
같은 달 투자은행 HSBC도 비만 치료제 시장 선두 주자인 일라이 릴리에 대한 투자 의견을 기존 ‘매수’에서 ‘감소’(reduce)로 두 단계 낮췄다. 목표 주가도 1,150달러(약 156만4,340원)에서 700달러(약 95만2,210원)로 하향했다. HSBC 관계자는 “현재 경제 환경에서는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은 종목일수록 조정 압력이 크다”고 지적했다. 일라이 릴리의 현재 미래 주가수익비율(PER)이 약 40배에 달하는 만큼, 높은 성장 기대가 이미 주가에 선반영된 상태라는 설명이다.
캐나다 몬트리올은행의 투자은행 부문인 BMO캐피털마켓도 같은 시기 노보 노디스크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을 내놨다. 투자 의견을 ‘중립’(시장 수익률)으로 유지하되 목표 주가를 64달러(약 8만7,000원)로 낮춰 잡은 것이다. 이는 당시 주가 대비 6달러(약 8,100원)가량 낮은 수준이다. BMO는 “노보 노디스크의 최근 CEO 교체는 전략 전환이라기보다 주주 요구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며 “경쟁 심화와 임상 지연으로 당분간 반등 동력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