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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중간선거 앞두고 온라인 담론 45%가 가짜 계정 주도 분노 부추기는 알고리즘과 교육 부재로 허위정보 확산 알고리즘 투명성, MIL 교육, 제도 정비 통한 대응 필요
본 기사는 The Economy의 연구 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5년 5월 중간선거를 앞둔 필리핀에서 불과 6주 만에, 선거의 공정성과 민주주의 기반을 위협할 수준의 조직적인 정보 조작이 드러났다. 포렌식 분석 결과, X(구 트위터)에서 선거 관련 대화의 45%가 가짜 계정에 의해 주도됐고, 이들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집중적으로 퍼뜨리고 있었다. 중간선거 투표율은 역대 최고인 82%를 기록했고, 같은 시기 국민의 85%는 범죄나 물가 상승보다 '온라인 허위 정보'를 더 큰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반(反)두테르테 진영의 조작 시도도 나타났다. 허위 대표 사례는 로널드 '바토' 델라 로사 상원의원 관련 딥페이크 영상이다. 두테르테 정권의 마약 전쟁을 주도했던 인물인 델라 로사가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히는 내용처럼 보이도록 조작된 영상이 확산됐고, 이는 팩트체커들이 대응하기도 전 24시간 만에 200만 회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ICC는 현재 두테르테의 마약 전쟁을 반인도적 범죄로 수사 중인 기관으로, 이 영상은 두테르테 진영의 내분을 유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같은 시기 세계경제포럼(The World Economic Forum, WEF)은 2025년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를 통해 허위 정보를 무력 분쟁이나 극단적 기후보다 앞선 가장 시급한 위협으로 지목했다. 이는 필리핀에서 벌어진 허위 정보 확산이 단발적 사건이 아니라, 플랫폼 설계와 사용자 보상 구조에서 비롯된 구조적 실패임을 보여준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시민 정보 생태계의 재설계가 시급한 이유다.

책임 공방을 넘어서
필리핀의 허위 정보 논의는 흔히 정치인의 조작이냐 유권자의 무지냐를 두고 책임을 따지는 데 그친다. 하지만 핵심은 플랫폼 설계에 있다. 소셜미디어는 사용자 체류 시간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돼 있고, 정치 캠프는 그 시간에 돈을 지불해 콘텐츠를 노출시킨다. 반면 학교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에게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의 시민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호주국립대 로스 탭셀 교수는 이 모순을 '허위 정보의 역설'이라 지적한다. 정치인은 허위 정보 덕에 당선되지만 동시에 그 허위 정보를 비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구조의 문제다. 콘텐츠의 진위보다 반응을 얼마나 끌어내는지가 수익을 좌우하는 환경에서 언론인과 교사조차 생존을 위해 '눈에 띄는 정보'를 만들어야 하는 현실에 내몰리고 있다.
이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허위 정보를 '시장 실패'로 정의해야 한다. 식품처럼 플랫폼에도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를 공개하게 하고, 광고 수익 일부를 세금으로 환수해 미디어 리터러시(Media and Information Literacy, MIL) 교육에 재투자할 수 있다. 또한 은행의 재무건전성 평가처럼 플랫폼에도 정보 리스크를 정기적으로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조치는 필리핀만의 과제가 아니다. 올해 전 세계 유권자 약 30억 명이 투표에 참여하는 대선 사이클 속에서, 젊은 인구와 취약한 제도를 가진 필리핀은 그 최전선에 서 있다.
분노를 수익으로 바꾸는 알고리즘
예일대 연구진은 페이스북 사용자 중 상위 15%가 전체 허위 정보 공유의 37%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특별히 잘 속는 사람들이 아니라, 플랫폼의 '좋아요'나 댓글 보상으로 검증 없는 공유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이었다. 또한 350만 개의 트윗을 분석한 결과, 정치적 성향보다 '믿을 법한 제목'이 확산 속도를 70%까지 높이는 요인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이 실험을 통해 "이 정보가 사실인지 생각해 보세요"라는 문구를 공유 버튼 앞에 3초간 띄우자, 허위 정보 공유율은 35% 줄었고, 사용자 유지율은 변화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런 기능이 실제 플랫폼에 도입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분노와 자극이 체류 시간을 늘리고, 이는 곧 수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플랫폼 디자인은 사용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기술이자, 디지털 시민성을 학습시키는 교육 환경이다. 알고리즘이 분노와 자극을 기준으로 작동하는 한, 아무리 뛰어난 사실 확인도 확산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자동차에 촉매변환기를 의무화했듯, 플랫폼에도 위험과 보상의 균형을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
필리핀의 딥페이크 선거
2025년 4월, 디지털 분석기업 사이브라(Cyabra)의 감사 결과, X에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ICC 소환을 비판하는 콘텐츠의 3분의 1이 가짜 계정에 의해 만들어졌고, 최대 5,400만 회 이상 노출됐다. 이는 같은 주제를 다룬 언론 보도의 6배에 해당한다. 2시간 동안 1,300건 넘는 게시물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졌고, 틱톡과 유튜브에서는 실시간 댓글 공격과 자동 추천 알고리즘이 결합해 여론을 조작했다. 이런 콘텐츠는 두테르테를 '국제사회의 희생양'으로 묘사하며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사이브라는 온라인상의 긍정적 반응이 10%포인트 오를 때마다 부동층의 두테르테 지지율이 2%포인트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근소한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필리핀의 지역구 선거 특성상, 이 수치는 결정적이다. 이제 정치인들조차 이 구조에 얽매였다. 마르코스 진영 후보들도 두테르테 진영의 밈 공세에 맞서기 위해 밈 제작소에 자금을 대고 있다. 허위 정보를 거부하는 건 곧 선거에서의 무장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주: 사례별 선거 이슈(X축), 가짜 계정 또는 조직된 계정이 주도한 선거 관련 게시글 비율(Y축)/2025년 필리핀 중간선거, 2024년 인도네시아 대선, 2024년 우크라이나 전쟁 논쟁, 2024년 EU 의회 선거, 2022~2024년 세계 선거 평균
교실이 전장이 되다
필리핀의 공교육은 디지털 시대의 속도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선택과목 수준에 그치며, 교육부의 공식 지침서는 2013년 이후 개정되지 않았다. 필리핀대학이 시범 운영 중인 관련 수업도 매년 28만 명 중 1만 명 미만만이 수강하고 있다. 반면 유네스코는 2024년 성인 교육자를 위한 자율형 MIL 과정을 도입했고, 현재까지 12만 명 이상의 교사가 이를 수료했다. 8만1,000명을 대상으로 한 49개 실험을 종합한 분석 결과, MIL 교육은 허위 정보 식별 능력을 평균 30% 높이고, 충동적 정보 공유를 절반으로 줄이는 효과를 보였다.

주: 가짜뉴스 식별 비율 및 검증되지 않은 링크 공유율(X축), 정확도 및 공유 빈도(Y축)/통제 집단 평균(진한 파랑), 교육 개입 후 평균(중간 파랑), 상대적 변화율(연한 파랑)
필리핀 전역에 실습형 MIL 교육을 확대할 때 학생 1인당 약 900페소(약 2만2천원)가 소요된다. 이는 1인당 기초 교육예산의 1%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잘못된 정보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생산성 손실을 고려하면 투자 대비 효과는 최대 4배에 이른다.
방화벽을 위한 재정 전략
일각에서는 알고리즘 투명성 요구가 기술 혁신을 위축시키고, MIL 교육이 정치적 편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수치는 이를 반박한다. EU의 샌드박스 실험에 따르면, 알고리즘 감시 비용은 플랫폼 수익의 0.5% 이내다. 필리핀은 광고 수익의 0.1%만 세금으로 부과해도 연간 16억 페소(약 400억원)를 확보할 수 있다. 이 정도면 3년 안에 전국 교사를 대상으로 고급 MIL 과정을 제공할 수 있다. 이미 확보된 예산 내에서도 재정 조정은 가능하다. 필리핀 교육부 인사개발 예산(9억5,700만 페소)의 5%만 전환해도 세금 인상 없이 교사 훈련 시간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2028년까지 허위 정보로 인한 전 세계 피해가 1,000억 달러(약 14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그중 단 1%만 줄여도 필리핀의 MIL 투자는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는다. 또 아세안 지역에서 실시된 무작위 실험에 따르면, 2학기 분량의 MIL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정치 성향에 큰 변화 없이 사실 판단력과 자기 신뢰가 크게 향상됐다. 흔히 제기되는 ‘세뇌 위험’은 통계적으로 근거가 없다.
시민 공간을 되찾자
2025년 중간선거는 필리핀 민주주의가 기술과 조작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허위 정보는 알고리즘을 타고 진실보다 먼저 도달했고, 정치인은 조작을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그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교육은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플랫폼은 분노를 수익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문제의 구조는 이미 드러났다. 알고리즘 설계, 시민교육, 입법 조치가 동시에 작동해야 정보 생태계를 되살릴 수 있다. 플랫폼은 정확성을 보상하도록 설계돼야 하고, 학교는 검증의 기술을 가르쳐야 하며, 국회는 감시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단 한 번의 선거가 아니라, 그 선거를 둘러싼 정보의 질에서 무너진다. 다음 파국은 더 빠르고, 더 정교하게 찾아올 것이다. 지금이 방화벽을 세울 마지막 기회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Re-engineering Truth: Media-Literacy Policy after Duterte’s Deepfake Election | The Economy 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