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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유예 원심 뒤집히며 법정구속
핵심 임직원도 유죄, 경영 마비 목전
에어프레미아 지배력 유지 불투명

김정규 타이어뱅크 회장이 탈세를 둘러싼 8년 간의 공방 끝에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여기에 부회장을 비롯한 실무진까지 동시에 유죄 판결을 받으며 타이어뱅크는 사실상 경영 공백 상태에 접어들었다. 이에 김 회장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에어프레미아 역시 자금 조달과 경영 안정성에 타격을 입으면서 매각 가능성까지 대두되는 상황이다.
징역·벌금 병과, 이례적 형량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박진환)는 지난 23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김정규 타이어뱅크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3년과 벌금 141억원을 선고했다. 김 회장은 “우리의 사업 모델이 워낙 앞서 있고, 많은 사업을 하며 열심히 살아왔는데 재판부를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 것 같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 자리에서 법정 구속됐다.
김 회장을 둘러싼 법정 공방은 2017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 회장은 전국에 365개 위·수탁 매장을 운영하면서 타이어뱅크 직원인 점장들을 사업자로 내세워 현금 매출을 누락하거나 거래 내용을 축소 신고하는 ‘명의 위장’ 수법으로 약 80억원을 탈루한 혐의를 받아 기소됐다. 이어진 원심에서 김 회장은 징역 4년에 벌금 100억원을 선고받았지만, 법정 구속은 면했다.
검찰은 곧바로 항소에 나섰고, 김 회장에 대해 징역 7년과 벌금 700억원을 구형했다. 2심 재판부는 “명의 위장 수법으로 종합소득세를 포탈하고 차명 주식 계좌를 통해 양도소득세도 포탈해 범행의 방법·내용과 피고인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할 때 책임이 무겁다”며 이를 일부 수용했다. 그러면서 “타이어뱅크 회장의 우월적 지위에서 다수 임직원과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그 죄질도 나쁘다”고 판결의 이유를 밝혔다.
최고 의사결정 라인 완전히 붕괴
항소심 재판부는 김 회장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범행에 가담한 이재진 부회장에게도 징역 2년 6개월과 141억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벌금 액수만 놓고 보면, 김 회장과 같은 수준의 처벌 강도다.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직원 4명 역시 징역 2년∼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5년을 선고받았다.
이번 사태로 타이어뱅크는 그룹 의사결정 체계가 사실상 마비되면서 가맹점과 협력사,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대외 신뢰 전반이 심각하게 흔들리게 됐다. 타이어뱅크를 종종 이용해 왔다는 한 소비자는 “누구보다 성실히 세금을 납부해야 할 기업 회장이 편법과 불법을 동원해 탈세를 저질렀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낀다”며 “최소한의 법조차 지키지 않으면서 사회적 책임 운운하는 기업이 과연 신뢰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타이어뱅크 매장을 다시 이용할지 진지하게 고민된다”고 덧붙였다.
타이어뱅크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아직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내부적으로 김 회장의 구속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만큼 대응책 마련에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양새다. 타이어뱅크 관계자는 언론과의 통화에서 “현재 매우 경황이 없는 상황”이라며 “(공식 입장문 등은)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밝혔다. 다만 발표될 입장문과 경영 공백 대응책이 그룹의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게 재계 전반의 평가다.

에어프레미아 ‘자금 확보·브랜드 신뢰 구축’ 난항
김 회장의 법적 리스크가 발목을 잡으면서 오는 9월 말까지 에어프레미아 2대 주주 지분을 인수해야 하는 타이어뱅크는 난감한 상황이다. 김 회장이 에어프레미아의 등기이사직을 상실하거나 에어프레미아가 항공 운송사업 면허를 박탈당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운신의 폭이 좁아짐으로써 자금 조달 및 인수대금 완납 등 일련의 작업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앞서 김 회장은 지난 5월 자회사 AP홀딩스를 통해 에어프레미아 지분 70% 이상을 확보하며 경영권을 장악했다. 이어 2대 주주인 대명소노그룹과 JC파트너스가 보유한 약 22%의 지분까지 9월 중 추가로 매입하기로 하는 등 지배력을 강화해 왔다. 이와 함께 에어프레미아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감자를 통한 누적된 결손금을 차감과 최대 1,000억원의 유상증자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며 이 같은 자본 확충 작업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오너 리스크가 커진 가운데 투자자들이 에어프레미아에 신규 자금을 투입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당장 시급한 자금만 해도 9월 예정된 2대 주주 지분 인수 금액 1,200억원과 항공기 리스, 노선 확대, 운영자금 등을 포함해 2,000억원대에 달한다. 약속한 기한 내 인수 잔금이 납입되지 않으면, 2대 주주는 AP홀딩스 보유 지분과 자신들의 지분을 묶어 제삼자에게 공개 매각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에어프레미아가 경영권 승계와 외부 자금 유치, 브랜드 신뢰 구축 등 산적한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 오너 리스크가 이미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확산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자율적 회생보다는 구조조정이나 매각 등 외부 개입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는 분위기다. 항공업 특성상 거액의 자본이 지속적으로 투입돼야 하는 만큼 에어프레미아가 향후 독자 생존을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업계 전반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