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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 전량 소각해 매물 경량화 총력 '인수 가격 1조원 하회' 전망도 네이버·GS·한화 등 인수 후보 거론

기업 회생 절차를 진행중인 홈플러스가 파산을 막기 위해 인가 전 M&A(인수·합병)에 나서기로 했다. 2015년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가 7조2,000억원에 인수했으나, 지금에 이르러선 1조원이 채 안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짙다. MBK는 출자금 2조5,000억원도 포기하고 M&A에 적극 힘쓴다는 계획이지만, 유통 업황 부진에 대형마트 규제 심화까지 겹친 상황이라 새 주인 찾기에 적잖은 난항이 예상된다.
몸값 1조 아래 추정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MBK와 홈플러스는 지난 13일 회생법원에 인가 전 M&A 승인을 요청했다. 이르면 다음주쯤 결과를 통보받을 전망이다. 홈플러스는 국내 2위 대형마트 운영사로 임직원이 1만9,000여 명에 달해 폐업 시 경제적 파장이 크고 대한통운과 팬오션 등 인가 전 M&A로 회생한 선례가 많은 만큼, 법원의 승인이 확실시된다는 것이 업계 다수의 관측이다.
인가전 M&A는 홈플러스가 신주를 발행해 새로 투자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MBK는 자사가 보유한 홈플러스 보통주 2조5,000억원어치를 전량 무상으로 소각하기로 했다. MBK가 홈플러스 지분을 포기하면 새 인수자와 협상에 따라 매각가가 1조원 밑으로 내려갈 여지가 생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신주 발행으로 마련한 자금은 기존 채권자들과의 채무 상환이나 회사의 미래를 위한 투자금 등으로 활용할 전망이다.
금투업계 한 관계자는 "MBK로서는 2조5,000억원을 전액 손실 처리하는 것이라 펀드 출자자(LP)들을 설득하기가 매우 까다로웠을 것"이라며 "홈플러스가 올해 3월 회생절차를 시작할 때 MBK가 추가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촉구가 많았는데 이보다 더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업황 부진 지속
홈플러스에 관심을 가질 잠재적 인수 후보자로는 네이버, GS그룹, 한화그룹 등이 주로 거론된다. 홈플러스는 대형마트 126곳, 기업형슈퍼마켓(SSM) 308곳에 달하는 전국적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온·오프라인 유통 경쟁력 강화에 요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기 전부터 인수 후보군으로 자주 거론된 곳이다. 이커머스의 강자로 통하는 쿠팡 또는 중국의 알리익스프레스가 눈독을 들일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다만 유통업계 상황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이들 후보 기업들이 선뜻 인수에 나서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오프라인 유통업계 부진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지속되고 있다. 소비 트렌드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었고, 1·2인 가구가 늘고 초고령사회가 가속화되면서 대형마트를 가던 소비자들의 발길이 줄어들고 있다.
앞서 MBK가 홈플러스 매각에 지속적으로 실패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형마트 매출은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8년부터 2024년까지 16년째 하락세다. 대형마트 3사(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의 매장 수도 감소세를 겪고 있다. 롯데마트의 점포 수는 2019년 6월 125개에서 현재 111개로 14개가 감소했다. 동기간 이마트의 점포 수도 142개에서 133개로 9개가 줄었다. 홈플러스는 회생절차 개시 전에 동대문점 등 9개 점포 폐점을 매듭짓고 27개 점포에 계약 해지를 통보한 상태다.

‘공휴일 의무휴업’ 추진도 부정적 요인
더군다나 홈플러스는 기업회생절차를 밟으며 입은 브랜드 이미지 타격이 크다. 특히 납품 중단사태가 발생하면서 ‘필요한 걸 팔지 않는’ 대형마트라는 이미지가 각인됐다. 지역 축산업계들이 납품대금을 받지 못할까 봐 납품을 중단하면서 지방 점포에서는 축산 매대 등 일부 매대가 비어있는 사태도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것이란 전망도 우려되는 요인 중 하나다. 최근 민주당에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개정안 발의 등 규제를 강화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현행 제도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월 2회 의무휴업일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일요일이나 특정 공휴일에 강제로 문을 닫아야 한다.
공휴일 고정 휴업은 대형마트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전체 매출의 절반 가까이가 주말과 공휴일에 집중되는 만큼,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이에 유통업계에서는 수년 전부터 규제 완화에 대한 요구를 지속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소비 패턴이 온라인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했음에도 규제는 오프라인 중심인 대형마트에만 집중돼 있어서다. 안 그래도 힘든 대형마트업계에 규제까지 심화되는 점은 가뜩이나 힘겨운 홈플러스 매각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실제 이커머스 플랫폼이 별도의 규제 없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대형마트들은 의무 휴업, 영업시간 제한 등으로 경쟁력을 잃어갔다. 이는 대형마트 3사의 지난 6년(2019~2024년)간 영업이익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 기업의 영업이익은 대체로 하락세를 이어갔다. 업계 1위인 이마트의 경우 2019년만 해도 영업이익이 2,780억원에 달했으나 지난해에는 영업손실 199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