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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美·中 사이에서 '반사이익' 누린다 "中 우회 수출 통로 아닌가" 美, 동남아 견제 본격화 이집트로 생산 기지 이전하는 中 기업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ASEAN) 소속 국가들이 미·중 무역 분쟁의 수혜국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실용적이고 균형적인 외교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에 양국의 투자 수요가 몰리며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美·中 투자 수요 흡수하는 동남아
16일(현지시각)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의 국가 싱크탱크인 중국사회과학원이 중국 학술지 이코노미스트에 발표한 보고서를 인용, 아세안 4개국을 포함한 8개 개발도상국이 미국과 중국 간의 공급망 경쟁에서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보고서에서 언급된 국가는 말레이시아, 베트남, 멕시코, 튀르키예,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브라질 등이다. 중국사회과학원은 8개국이 중국보다 인건비가 저렴하고 서구 시장과 강력한 무역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중국의 아웃바운드 투자 증가와 미국의 지속적인 수출 수요에 힘입어 글로벌 공급망 변화의 중요한 연결고리로 부상할 수 있다고 짚었다.
시장은 특히 아세안 국가들에 돌아올 혜택에 주목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2017~2021년) 때 벌어졌던 1차 미·중 무역 전쟁 당시에도 대표적 수혜국으로 거론돼 왔기 때문이다. 1차 무역 전쟁이 마무리된 이후로도 중국과 미국의 동남아 투자 규모는 꾸준히 확대돼 왔다. 2012년 183억 달러(약 25조원)에서 수준에 그쳤던 미국의 대(對)아세안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023년 749억 달러(약 104조원)로 늘었다. 이는 일본, 중국, 한국 등 여타 국가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아세안 주요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FDI 유치 규모 역시 2016~2019년 약 61억 달러(약 8조5,000억원)에서 2020~2023년에는 약 129억 달러(약 17조9,800억원)까지 증가했다.
美 압박 본격화하며 혼란 가중
문제는 미·중 무역 갈등이 동남아 국가들에 혜택과 압박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현지시간) 베트남(46%), 캄보디아(49%), 인도네시아(32%), 태국(36%), 라오스(48%), 말레이시아(24%) 등 동남아 주요국에 줄줄이 고율의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의 대미 우회 수출을 막기 위해 무역 장벽을 높인 것이다.
미국의 견제가 가시화하자, 중국 측은 아세안 국가들에 서로 협력해 미국에 대항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4월 아세안 국가 순방 당시 말레이시아에서 “아시아 가족들이 힘을 합쳐 일방주의와 보호주의라는 반동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주의 우방국이지만 미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베트남에서는 중국과 ‘운명 공동체’를 형성해 미국의 일방적 괴롭힘에 대응해야 한다고 발언했으며, 전통적 친중 국가인 캄보디아에서는 “힘을 합쳐 패권주의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국의 압박 속 아세안 국가들은 중립적 노선을 유지하는 데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시 주석의 아시안 순방 당시 텡쿠 자프룰 아지즈 말레이시아 무역장관은 BBC에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할 수 없고, 절대 선택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우리 이익에 반하는 문제가 있으면 우리 자신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트남 역시 같은 시기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미국에 대한 언급 없이 철도 등 중국과 경제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입장만을 전했다.

中 기업들, '플랜 B' 찾아 나서
동남아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중국 기업들은 생산 거점 다변화를 위해 ‘플랜 B’를 모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동남아의 대체 투자처로 주목받는 국가는 이집트"라며 "이집트는 지난 4월 미국의 상호관세율 발표 당시에도 기본 관세율(10%)만을 적용받았으며, 대미 무역수지가 적자 상태이기 때문에 향후 고율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도 낮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남아보다 저렴한 인건비도 무시할 수 없는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이집트 공장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월 100~150달러(약 13만~20만원)로 동남아의 절반 수준이다.
이집트 투자청에 따르면, 현시점 이집트에는 이미 2,800개 이상의 중국 기업이 진출해 있다. OPPO(오포), ZTE, GAC모터 등 대형 브랜드뿐만 아니라 중소 부품·섬유·가전 업체들까지 줄줄이 이집트에 생산 기지를 마련한 결과다. 중국 기업들의 대이집트 누적 투자액은 80억 달러(약 10조8,904억원)를 웃돈다. 지난 3월 이집트의 한 상공 단체는 중국과 총 6,000만 달러(약 816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 계약 10건을 체결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집트 정부 역시 이러한 변화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디아 헬미 이집트·중국 상공회의소 사무총장은 최근 차이나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일부 서방 국가들이 특정 이집트 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반면, 중국은 이집트에 생명줄 같은 존재”라며 “(이를 바탕으로) 이집트는 자동차 제조, 위성 개발, 데이터 센터, 5세대(5G) 통신 분야에서 기술을 국산화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