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젠슨 황 엔비디아 CEO, 美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한 우려 표명 美 기업 빈자리 화웨이 등 현지 기업이 차지할까 화웨이, 자체 생산 기반 다지며 '반도체 독립' 박차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정부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 정책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인공지능(AI) 칩 제조 기업이 규제로 인해 중국 시장에서 이탈할 경우, 화웨이 등 현지 기업의 영향력이 급격히 확대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화웨이는 자체 AI 칩 개발에 열을 올리며 미국의 규제로 인해 발생한 '빈틈'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젠슨 황 "대중국 AI 칩 수출 필요해"
6일(이하 현지시간) 황 CEO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밀컨 콘퍼런스 2025'에서 "경제적인 이득이나 국가 안보를 이유로 기술 접근을 제한하는 논리가 있지만, 이는 상대국 정부가 자국 내 컴퓨팅 역량을 활용하는 데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며 "그들은 이미 가진 컴퓨팅 자원을 확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엔비디아는 글로벌 AI 칩 시장의 약 90%를 점유하고 있지만, 미국의 수출 규제로 인해 중국에 AI 칩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황 CEO는 "우리가 특정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지 않고 완전히 떠난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거머쥘 것"이라며 "예를 들어 화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formidable) 기술 기업 중 하나이고, 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미국 표준(American Standard)을 글로벌 표준으로 만들고, AI가 미국 기술 위에 구축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우리의 대중국 수출이 제한된 사이에 중국 (AI 칩) 시장은 몇 년 후 아마도 약 500억 달러(약 69조원) 규모가 될 것"이라며 "우리가 놓친 시장은 엄청나게 거대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것이 우리가 누릴 수 있었을 비즈니스 기회"라며 "(이 같은 수익을 미국으로 가져올 수 있다면) 달러로 세금을 돌려받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우리의 기술을 훨씬 더 발전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화웨이의 반도체 기술 굴기
황 CEO가 이 같은 우려를 내놓은 것은 최근 화웨이가 중국 현지 AI 칩 시장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일 파이낸셜타임즈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화웨이는 현재 외국 기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중국 선전 반도체 시설 내에서 첨단 칩 생산 라인을 건설 중이다. 해당 생산 라인에서는 화웨이의 자체 개발 AI 칩인 '어센드 AI 프로세서'가 생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어센드 AI 프로세서는 화웨이가 엔비디아, ASML, SK하이닉스, TSMC 등 글로벌 칩 설계 및 메모리 칩 제조 업체의 기술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 중인 고성능 AI 칩셋이다. 화웨이는 지난 2023년에 '어센드 910B', 지난해에 '어센드 910C'를 선보였으며, 현재는 ‘어센드 910D’로 불리는 새 AI 칩의 기술적 실현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일부 기업과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더해 화웨이는 AI 칩 공급망의 '국산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와 관련해 칩 컨설팅 회사 세미애널리시스(SemiAnalysis)의 설립자 딜런 파텔은 "화웨이는 웨이퍼 제조 장비부터 모델 구축에 이르기까지 AI 공급망의 모든 부분을 국내에서 개발하기 위한 전례 없는 노력에 착수했다"며 "이전에는 어떤 기업도 모든 것을 (국산화하려고) 시도한 적이 없다"고 분석했다.
생산용 부품도 '확보 완료'
시장 일각에서는 미국의 수출 규제가 화웨이의 이 같은 '반도체 독립' 행보를 막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시장 관계자는 "미국은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용 저성능 AI 칩인 H20의 수출을 제한하고, 미국산 반도체에 위치 추적 기술을 탑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규제에 열을 올리고 있다"면서도 "화웨이가 이미 탄탄한 자체 생산 기반을 확보한 상황에, 미국의 AI 칩 수출 규제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 전략국제연구소(CSIS)가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화웨이는 2020년 수출 통제 이전부터 첨단 AI 칩 생산용 부품을 축적해 왔다. CSIS는 “화웨이는 미국 제재 이전에 TSMC로부터 200만 개가 넘는 어센드 910B 칩의 로직 다이를 주문해 받았다”고 설명했다. 어센드 910B 칩의 로직 다이 두 개를 붙이면 첨단 AI 칩인 어센드 910C를 제조할 수 있다. 단순 계산하면 현재 화웨이는 100만 장의 어센드 910C를 제조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다만 화웨이의 첨단 패키징 수율이 75%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종 완제품은 75만 장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TSMC산 로직 다이 재고가 떨어지면 중국산 파운드리에서 추가 제조에 착수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 파운드리 기업인 SMIC는 미국의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구형 심자외선(DUV) 노광 장비를 활용해 어센드 910B 칩 로직 다이를 자체 생산 중이다. 다만 수율은 20%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CSIS는 “SMIC는 지난해 말까지 연 5만 장의 7나노급 웨이퍼를 생산하는 목표에 도달했을 것으로 전망하며, 가능성은 낮지만 이 웨이퍼가 모두 어센드 칩을 제조하는 데 쓰인다면 매년 수백만 장의 화웨이 AI 칩을 생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