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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간 연결 방식 바꾸는 CXL
칩셋·소프트웨어 등 호환 생태계 부족
SK하이닉스도 CXL 전환 출사표

메모리 업계가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전환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여러 장치가 가진 메모리를 한데 연결하는 CXL은 중앙처리장치(CPU)만으로도 메모리를 자유롭게 확장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이는 많은 비용이 수반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나 고대역폭메모리(HBM) 없이도 대규모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핵심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시스템 구조 바꾸는 ‘플랫폼 전환’ 본격화
2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 CXL은 DDR D램을 기반으로 한 서버 환경에서 매우 중요한 기술로 부상받고 있다. CXL은 CPU와 GPU, 저장장치 등을 빠르게 연결하는 기술로, CXL 시스템으로 구축한 서버는 1대당 메모리 용량을 8~10배가량 늘릴 수 있다. 서버당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급증하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적합한 기술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특히 최근에는 단순히 메모리를 빠르게 연결하는 기술을 넘어 속도 향상과 전력 효율, 데이터 안정성까지 모두 챙기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CXL 시스템 개발 전까지 메모리 확장을 위해서는 슬롯이 필요했다. D램은 ‘DIMM 슬롯’에, GPU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는 ‘PCIe 슬롯’에만 연결되는 식이다. 이 가운데 D램은 DIMM 슬롯 수가 최대 16개로 제한돼 있어 대용량 메모리의 추가 장착이 어렵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데이터가 몰릴 때 병목현상이 발생하는 주 원인으로 지목됐다. 반면 CXL은 PCIe 슬롯에 D램 기반 메모리 모듈을 추가 장착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수십 테라바이트(TB)에서 수백 TB까지 메모리 용량을 유연하게 늘리는 게 가능해졌다.
레노버와 HP엔터프라이즈(HPE), 델테크놀로지스 등 세계 주요 서버 제조기업이 CXL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CXL을 활용하면 고비용의 HBM이나 GPU 없이 CPU 기반 시스템만으로 메모리 자원을 대폭 확장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도체 업계는 2019년 CXL 컨소시엄을 처음 발족했으며, 최근에는 CPU를 개발사 인텔과 AMD 역시 서버용 CPU에서 CXL을 지원할 수 있도록 아키텍처 수준에서 통합을 서두르고 있다.
이러한 전환기에서 삼성전자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1년 5월 세계 최초로 CXL 기반 D램 기술을 개발하고 데이터센터, 서버, 칩셋 업체들과 평가를 해왔으며, 이듬해에는 기존 대비 메모리 용량을 4배 향상시킨 512GB CXL D램을 개발했다. 또한 ASIC(주문형 반도체) 기반의 컨트롤러를 탑재해 데이터 지연 시간을 기존 제품 대비 5분의 1 수준으로 단축했다.
삼성전자의 전략은 장기적인 기술 리더십 확보에 방점을 두고 있다. 매출 등 단기 성과보다는 플랫폼 전환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 등 경쟁사에 밀린 승부를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무대로 삼고 있다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이 같은 삼성전자의 행보는 AI·클라우드 중심의 서버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매우 주효한 전략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술 사양 있지만, 상용화는 여전히 먼 길
다만 그 한계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진단이 나온다. 많은 기업이 기대를 거는 ‘CXL 2.0’과 차세대 사양인 ‘CXL 3.0’은 기술적으로는 정의가 완료됐지만, 이를 뒷받침할 생태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CXL은 메모리 모듈 하나만으로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해 이를 인식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CPU, 메인보드, 운영체제, 소프트웨어 등 전방위적 호환성 확보가 함께 따라야 한다.
나아가 기술 표준화도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은 상태다. 특히 CXL 3.0의 경우, 발표는 됐지만 아직 상용화에 돌입한 제품은 없다. 플랫폼 간 호환성 검증이 남아 있는 가운데, 성능의 안정성을 두고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기업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시장의 방향을 CXL 중심으로 바꾸려는 삼성전자의 기술 선점이 곧바로 시장 지배력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배경이다.
업계에서도 CXL에 ‘차세대 기술’이라는 상징성을 부여하면서도 실제 수익으로 전환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가장 유력한 CXL의 상용화 시기로는 2026년 이후가 거론된다. CXL 3.1 등 데이터 공유를 기반으로 한 장치와 소프트웨어가 본격화되고, 이에 걸맞는 CXL 스위치칩이 양산되는 시기여서다. 특히 서버용 CPU 시장의 선두주자인 인텔이 올 하반기 CXL 3.0을 지원하는 신제품 출시를 계획하고 있어 이를 기점으로 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관측이다.

양산·생산·응용 사례 후발주자 SK하이닉스
삼성이 CXL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면서 SK하이닉스도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SK하이닉스는 CXL 2.0 기반 D램 솔루션인 ‘메모리 모듈(CMM)-DDR5’ 96GB 제품의 인증을 완료했다고 23일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서버 시스템에 적용했을 때 기존 DDR5 모듈 대비 용량이 50% 늘어난 것을 확인했으며, 제품 자체의 대역폭도 30% 확장돼 초당 36GB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며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고객이 투입하는 총소유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SK하이닉스는 96GB 제품 인증에 이어 128GB 제품도 별도의 고객 인증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강욱성 SK하이닉스 부사장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확장에 한계가 있는 기존 시스템을 극복하는 옵티멀 이노베이션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 솔루션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며 “고객들의 다양한 응용 요구에 부합하면서도 메모리의 확장성과 유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고객에게 최적화 된 가치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