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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철강 빌릿 수출 꼼수 급증, 글로벌 산업 질서 흔드는 감산의 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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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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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세상에서 회색지대를 찾고 있습니다. 산업 현장을 취재한 경험을 통해 IT 기업들의 현재와 그 속에 담길 한국의 미래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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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세 국가 '새로운 통로'
中 철강 빌릿 수출 폭증
중국산 철강 유입 장벽 약화

중국 철강업체들이 인도네시아와 튀르키예 같은 국가들의 관세를 우회해 반제품인 철강 빌릿(steel billet) 수출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값싼 중국산 금속의 글로벌 유입에 대한 장벽을 약화시키는 전략으로, 동시에 저부가가치 수출의 급증에 대한 중국 정부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반제품 철강 수출 3배↑

17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인 중국의 기록적인 철강 수출은 지난해 1월 이후 각국에서 38건의 반덤핑 조사가 이뤄지는 등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최대 무역 상대국인 베트남과 한국은 국내 제조업체들이 값싼 중국산 철강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이에 대응해 수출업체들은 일반적으로 관세가 적게 부과되는 철강 반제품 블록인 철강 빌릿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철강 빌릿 수출량은 전년 동기 대비 3배 증가한 472만 톤을 기록했으며,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철강 수출량의 약 10%에 해당한다.

세관 데이터를 살펴보면 철강 빌릿의 상위 5개 수출 대상국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사우디아라비아, 이탈리아, 튀르키예다. 이 중 인도네시아, 튀르키예, 사우디는 일부 철강 완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있지만, 철강 빌릿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한국이나 베트남을 포함한 다른 주요 철강 수출 대상국도 마찬가지로 완제품으로 가공된 후 건설 및 제조에 사용되는 빌릿에 대해서는 관세가 없다. 중국 철강정보 제공업체 마이스틸(Mysteel)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메모에서 철강 빌릿과 완제품에 대한 무역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것이 수출의 급속한 성장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짚은 바 있다.

이러한 수요의 일부는 '환적(transhipment)'에서 비롯됐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산 빌릿을 수입해 가공한 다음 유럽과 미국으로 재수출하는 방식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철강 수입에 대한 50% 관세는 국가들이 미국으로 선적하는 물량의 수익성을 크게 떨어뜨려 환적 무역의 일부를 교란시켰다.

중국 ‘철강 감산’ 수치는 왜곡된 통계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중국 철강업체들이 감산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공급 과잉을 해외로 전가하는 방식으로 시장 왜곡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 정부는 올해 3월 철강산업의 탄소배출 저감을 표면적 명분으로 삼고 감산 기조를 천명했다. 앞서 중국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3월 초 양회에서 “철강 생산량을 감축하겠다”고 밝혔는데, 국가발전개혁위 계획에 ‘철강 감산’이 포함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후 실제 중국의 조강 생산량은 통계상 일부 감소세를 보였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5월 중국의 조강 생산량은 8,655만 톤으로 지난해 같은 달 대비 6.9% 감소했다. 5월은 1년 중 조강 생산량이 가장 많은 달인 탓에 전월보다는 0.6% 소폭 늘었다. 지난달 생산량을 5월 기준으로 비교해 보면 2018년(8,113만 톤) 이후 7년 만에 가장 적은 규모다. 4월 조강 생산량은 8,602만 톤으로 전년 대비 0.1% 증가했지만, 전월에 견줘서는 7.3% 줄었다. 이에 업계는 중국발 철강 공급과잉이 완화될 조짐으로 해석하며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번 빌릿 수출 확대를 통해 왜곡된 통계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포스코 스테인리스 냉연 코일/사진=포스코

OECD "2027년 철강 과잉공급 7억 톤 초과"

중국의 철강 감산이 중요한 이유는 전 세계 철강업계에 큰 영향을 끼쳐서다. 중국은 세계 1위 철강 생산국이다. 2020년 이후 매해 10억 톤이 넘는 철강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내수 침체로 자국 철강 판매량이 계속 줄어들자 남아도는 물량을 국외로 값싸게 밀어내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철강 과잉생산능력은 6억3,000만 톤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진행 중이거나 계획 중인 프로젝트들을 감안하면 2027년에는 과잉 규모가 7억 톤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과 세금 감면, 저리 대출, 저가 에너지 제공 등을 통해 시장 가격을 왜곡하고 글로벌 공급과잉을 유발한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산 빌릿의 대규모 수출은 단순한 수출 확대가 아닌, 철강 산업 전체의 가격구조와 산업 피라미드를 뒤흔드는 파괴적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빌릿은 압연이나 성형 공정 이전의 1차 반제품으로, 부가가치가 극히 낮지만 중국 기업들은 고도화된 설비 없이 대량생산이 가능한 빌릿을 통해 생산 능력은 유지하되 규제 회피와 재고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저부가 수출의 홍수로 인해 세계 시장의 철강 단가가 비정상적으로 하향 안정화되고 있으며, 자국 내 고부가 생산 체계를 구축해 온 선진 철강기업들이 도산 위기에 몰리고 있다. 실제 한국, 일본, 유럽 등은 철강재 고급화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해 왔으나, 중국발 과잉 공급으로 인해 전방 수요 산업에서도 가격 재조정 압력이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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