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까지 18일이면 간다” 中 첫 북극항로 개통, 부산도 新 해상회랑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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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 마지막 남은 바닷길 '북극항로' 기존 항로 대비 절반 이상 시간 단축 지정학적 안전성 등도 장점

탐험의 영역이던 북극 길이 선진국이 탐내는 ‘얼음 실크로드’로 변하고 있다. 중국과 유럽을 잇는 초고속 북극항로가 세계 최초로 열리면서다. 북극항로의 최고 장점은 종전 항로에 비해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운항 거리가 크게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는 운임·연료비 절감과 공급망 민첩성 제고를 동시에 견인해 기존 환적 허브의 경제 논리를 뒤흔든다. 중국의 얼음 실크로드 개통으로 북극항로가 상업 네트워크로 본격 편입된 가운데, 북극으로 가는 최단거리 길목에 있는 부산이 출발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中 닝보에서 유럽 주요 항구 운송, 18일로 단축 가능
24일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22일 중국 동부 저장성의 닝보-저우산항에서 영국 최대 컨테이너 항구인 펠릭스토우 항구로 컨테이너선 ‘씨레전드호’가 출항해 공식적인 중국-유럽 간 북극 고속항로의 시작을 알렸다. 도착까지 걸리는 기간은 18일에 불과하다. 이는 수에즈 운하를 통한 운송 시간 40일,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도는 50일, 유라시아 철도를 이용한 육로 운송에 걸리는 25일보다 빠르다.
씨레전드호는 닝보, 상하이, 칭다오, 다롄 등 중국 항구에서 출발해 북극해를 가로지른 영국의 펠릭스토우,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독일의 함부르크, 폴란드의 그단스크 등 유럽의 주요 항구에 도착하게 된다. 닝보세관 자회사인 다세세관의 저우샤오핑 부국장은 “선적된 화물은 생필품, 의류, 부품은 물론 에너지 저장 캐비닛, 전력 배터리와 같은 첨단 제품까지 다양한 범주를 포괄한다”며 “이 루트를 이용하면 기존 수에즈 운하 경로보다 수송 기간을 약 30%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닝보세관에 따르면 닝보항의 최대 대상은 유럽연합(EU)이다. 올해 1~8월 닝보항과 EU 간 수출입 총액은 3,307억4,000만 위안(약 64조8,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 증가했다. 이는 닝보항 전체 대외 무역의 약 18%를 차지한다. 해운업체 씨레전드의 최고운영책임자(COO) 리샤오빈은 중국-유럽 북극항로 노선이 기존 노선보다 거리가 짧고 효율성이 높아 적시성을 크게 향상시키고 비용을 절감하며 물류 공급망의 속도를 향상시킨다고 전했다.
비교적 안전한 지정학적 환경도 장점이다. 리 COO는 “이 항로가 통과하는 지역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어 해적 행위, 혼잡, 갈등 확산 등의 위험이 줄어든다”면서 “해운선단의 안전성이 향상되고, 빙상실크로드가 열리며, 중국-유럽 공급망의 세 번째 회랑이 확보된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재편되는 아시아–유럽 공급망
북극항로는 인간의 욕망이 만든 길로 평가된다. 온난화로 온도가 상승하면서 배가 다닐 수 있는 길이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북극 해빙 면적은 계절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미국 국립빙설데이터센터(NSIDC)에 따르면 지난 16일 북극의 해빙 면적은 471만㎢로 평년값(1981년~2010년) 645만㎢보다 174만㎢나 줄었다. 알래스카 면적(172만㎢)에 버금가는 해빙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해빙이 비운 자리만큼 뱃길은 넓어졌고, 때마침 2023년 예멘 후티 반군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대 항로인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선박을 공격한 사건으로 주 해상 루트의 안전성이 크게 훼손됐다. 2021년에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Ever Given)호'가 수에즈 운하에서 좌초해 일주일간 양방향 운항이 전부 멈춘 일도 있었다. 각국이 북극항로 등 대체 루트로 눈길을 돌리게 된 계기였다.
이후 북극항로의 물동량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 교통국에 따르면 지난해 북극항로의 총물동량은 3,790만t(톤)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환적 화물은 308만 톤으로 2016년(20만 톤)보다 15배가량 증가했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종전 경로(2023년 15억7,000만 톤)와는 여전히 규모 차가 크지만 성장 추세가 뚜렷하다.
항로가 짧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연료비도 줄어들었다. 선박 통행량도 적어 정체 없이 운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추가 연료 소모가 상대적으로 적기도 하다. 스웨덴 샬메르스공대 리지위안 교수팀은 관련 연구에서 1회 항해 연료비를 추정했는데, 이전 경로는 약 34만 달러(약 4억7,000만원)가 드는 반면 북극항로는 23만~25만 달러(약 3억2,000만~3억5,000만원)로 연료비만 25~35%가량 절감됐다. 이 같은 시간과 비용 단축은 단순한 물류 비용 절감 이상의 효과를 가진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사실상 아시아와 유럽 간 공급망 구조가 재편되는 것으로, 그간 동남아·인도·중동 항만 등이 누려온 중간 기착지 수익 모델은 급속히 붕괴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부산항, 출발지로 자리잡을까
중국이 북극 해상 운송로 개발을 본격화한 건 지난 2018년으로, 당시 중국 당국은 ‘중국의 북극 정책’이라는 백서를 발표했다. 중국은 북극해 연안국은 아니지만 ‘근(近) 북극 국가’로 자국을 규정하고 북극 문제의 중요한 당사자로 북극에 개입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2013년에는 한국 일본과 함께 북극 이사회 옵서버로도 가입했다. 상하이 푸단대 국제문제연구소 중국-유럽 관계센터 제쥔보 소장은 “북극해를 통한 해상 운송은 유럽의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인한 불편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항로가 중국이 국제 사회에 기여하는 중요한 공공재가 될 수 있다”며 “한국과 일본 같은 국가도 중국과 협력해 항로 개발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북극항로가 열리면 대한민국에 기회의 문이 열릴 수 있다. 이에 우리나라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2030년 전후로 연중 북극해 항해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북극항로 개척을 국정과제에 담았다. 특히 부산과 네덜란드 로테르담을 기준으로 수에즈 루트(2만400㎞)를 따르면 통상 30일~34일 정도가 걸리지만 북극항로(NEP, 1만3,000㎞)를 이용하면 20~24일이 소요된다. 거리만 놓고 보면 경제성이 있는 셈이다. 이에 정부는 우선 내년 북극항로 시범 운항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물동량 증가에 대비해 진해 신항 건설 속도도 끌어올린다. 쇄빙선 역시 연간 1척씩 5년간 5척을 건조한다는 목표로 총 5,5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해양수산부 통계를 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수출입 화물 16억7,000만 톤 중 99.7%인 16억6,500만 톤이 해상운송으로 처리됐다. 기존 바다 물류의 ‘병목 구간’을 피할 수 있는 북극항로는 수출입 물류를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대체 루트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게다가 러시아의 전체 석유∙가스 매장량의 약 60%는 북극 지역에 집중돼 있다. 장기적으로 에너지 수입처를 다변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더불어 원양어업을 확대하고, 수산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린다.
다만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여름철에도 기상변화에 따른 결빙으로 운항에 차질이 생기거나 고립될 수 있으며, 겨울철엔 쇄빙선 이용료와 보험료가 오르고, 운항 기간이 길어져 장점인 경제성이 희석될 수 있다. 일부 구간의 경우 최저 수심이 7m에 못 미칠 정도로 얕아 대형 컨테이너선이 다니기 어려운 환경인 것도 단점이다.
더욱이 북극항로 운항 규칙은 러시아 국내 법령에 의해 정한다.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해야 하고, 운항 중에도 수시 보고가 필수다. 위반하면 운항 중지, 억류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다. 당장은 한국과 서구 국가의 러시아 경제 제재 해제 시점이 관건이다. 배규성 배재대 한국·시베리아센터 연구교수는 “제재가 풀리더라도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적 밀착, 미국의 대중 견제, 북극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 등은 반복적으로 한국을 고민하게 할 것”이라며 “이런 지정학적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북항로 개발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