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도체 굴기의 자신감, 자국 기업에 엔비디아 칩 사용 금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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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당국, H20에 이어 RTX 프로 6000D 구매 금지 화웨이·알리바바·바이두 등 자체 AI 칩 개발 박차 딥시크 AI 모델 R2 훈련에도 화웨이 어센드 활용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엔비디아의 최신 중국 전용 인공지능(AI) 칩 구매를 금지했다. 표면적으로는 엔비디아 칩이 보안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웠지만, 실제 의도는 미국의 대중국 수출 규제에 대응해 반도체 자립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란 해석이 나온다. 현재 화웨이 등 중국 반도체 기업이 생산한 AI 칩은 성능 면에서 엔비디아가 중국 내 공급해 온 저사양 칩과 유사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 안보 관련한 업무에는 'H20 금지령'
21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지난주 알리바바 등 자국의 빅테크 기업들에게 엔비디아의 신형 저사양 칩 RTX 6000D의 주문과 테스트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RTX 프로 6000D는 미국의 수출 규제에 맞춰 성능을 대폭 낮춘 중국 전용 모델로, 엔비디아는 고성능 HBM(고대역폭메모리)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GDDR7을 탑재했다. 가격 역시 HBM을 사용하는 또 다른 중국 전용 AI 칩 H20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앞서 CAC는 지난 7월 엔비디아 경영진을 소환해 H20 칩의 보안 문제를 지적하며, 백도어의 위험성에 대한 설명과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지난달에는 국영 및 민간 기업들에 H20 칩 사용 자제를 촉구하는 통지문을 발송했다. 특히 정부 또는 국가 안보 관련한 업무에서는 H20 사용을 강력히 금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H20 금지령이 과거 중국 당국이 보안을 이유로 정부 기관에 애플 아이폰과 테슬라 자제령을 내렸던 방식과 유사하다고 짚었다.
화웨이 어센드, 1년 주기로 제품 출시 계획
이처럼 중국 정부가 잇달아 엔비디아 칩 구매 제한에 나선 것은 그만큼 중국 반도체가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화웨이 등 중국 반도체 회사가 생산하는 AI 칩은 엔비디아 중국에서 유통됐던 저사양 칩과 거의 동등한 수준에 도달했다. 일례로 화웨이는 지난 18일 화웨이는 상하이에서 열린 커넥트 행사에서 올해 1분기 선보인 자체 개발 AI 칩 어센드(Ascend)의 후속 모델 출시 계획을 공개했다.
이날 쉬즈쥔 화웨이 부회장 겸 순번회장은 연설에서 "어센드 칩 신제품을 1년에 한번 주기로 출시하고 매번 새로 출시할 때마다 컴퓨팅 능력을 2배로 늘릴 것"이라며 "내년 1분기에 출시될 어센드 950PR은 화웨이에서 자체 개발한 HBM을 사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AFP와 로이터통신 등은 수년간 SK하이닉스·삼성전자·마이크론 등이 주도해 온 HBM 기술을 화웨이도 보유함으로써 그동안의 병목현상을 극복했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해당 제품에는 엔비디아와의 경쟁을 위해 개발된 슈퍼팟(SuperPod) 기술이 적용된다. 칩을 초고속으로 연결하는 기술인 슈퍼팟은 컴퓨팅·네트워크·소프트웨어·스토리지·관리 기능을 통합·설계하고, 최대 1만5,488개 이상의 어센드 칩을 하나의 대형 클러스터로 엮어 초고속 병렬 연산을 구현한다. 이는 AI 모델 학습과 추론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엔비디아의 고성능 H100·NVL144·콜로서스 시스템에 필적하는 대규모 AI 연산 성능을 지향한다.

中 HBM 자립 위해 YMTC와 CXMT 연합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화웨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알리바바·바이두 등이 자체 설계한 반도체로 AI 모델 훈련에 나섰다. 알리바바는 올해 초부터 자체 설계 반도체인 젠우(Zhenwu) 칩을 소규모 AI 모델 훈련에 활용하고 있다. 중국 최대 검색엔진을 운영하는 바이두도 자체 개발한 쿤룬 P800 칩을 어니(Ernie) AI의 새 버전 훈련·학습에 실험적으로 투입했다. AI 반도체 팹리스 캠브리콘 역시 자체 개발한 AI 칩 시위안 590으로 급부상했으며, 상하이 기반 스타트업 메타X도 H20을 대체하는 칩을 양산하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이러한 성과를 두고 관련 업계에서는 중국이 엔비디아 의존에서 벗어나 'AI 칩 기술 독립'을 현실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5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H20 칩에 대한 미국의 중국 수출 통제 전략은 잘못"이라며 "오히려 중국의 AI 칩 굴기를 부추길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실제로 중국의 기술 자립 움직임은 미국의 수출 제재와 함께 강화됐다. 바이두는 지난 4월 P800 칩 3만 개를 활용한 대규모 훈련 클러스터를 공개했고, 알리바바도 향후 3년간 AI·클라우드 인프라 전반에 최소 3,800억 위안(약 74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AI 반도체 생태계의 핵심 요소로 꼽히는 HBM 자립에도 도전하고 있다. 중국 낸드 최대 업체인 YMTC와 D램 최대 업체 CXMT는 파트너십을 체결해 HBM 생산 역량 확보에 나섰다. CXMT가 D램을 제공하고, YMTC가 D램을 돌기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AI 칩을 대규모로 양산할 파운드리 업체들도 생산량 확대에 나섰다. FT는 화웨이의 AI 프로세서 생산 전용 공장 한 곳이 이르면 올해 말부터 생산을 시작하고, 내년에 두 곳이 추가로 문을 열 것이라고 전했다. 해당 신규 공장은 중국 내 파운드리 업체 소유로 추정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완전한 탈엔비디아'는 시기상조로 보고 있다. 중국 자체 칩들은 과열·장애 발생 등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딥시크가 차세대 AI 모델인 R2 훈련에 화웨이의 어센드 칩을 사용하려 했지만 △과열·안정성 저하 △칩 간 연결 속도 지연으로 인한 데이터 전송 병목 현상 △소프트웨어 성능과 최적화 문제 등 기술적 결함으로 인해 실패하면서 결국 출시가 연기됐다. 이 때문에 알리바바, 바이두 등도 AI 모델 고도화를 위해 훈련에는 엔비디아 칩을, 추론에는 화웨이 칩을 사용하는 절충 방식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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