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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생태계 위기 직면 신규 투자 34% 감소,초기 스타트업 직격탄 벤처 투자 시장 한파에 성장 판 흔들

벤처 투자 혹한기 속 스타트업 성장 전략이 바뀌고 있다. 몇 년 전 벤처 투자 호황기 때만 해도 투자 유치 후 이익과는 별개로 매출 등 외형을 키우며 미래 성장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투자 유치가 어려워 당장 이익을 내는 ‘성과 기반의 성장’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미래 성장보다 눈앞 이익 우선시
26일 벤처업계에 따르면 2022년 창업 후 엔젤 투자를 받은 한 국내 여행 스타트업은 최근 경영 전략을 수정했다. 그동안 서비스를 확장하며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이제는 수익 구조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두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돈줄이 마른 현 벤처 투자 시장에서 회사 성장을 위한 투자 유치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회사 대표 A씨는 “미래 성장보다는 우선 시장에서 살아남는 게 먼저”라며 “이익을 내야 투자 유치가 가능하고 회사가 지속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에 있어 투자 유치는 회사 기술과 서비스를 실현하고 확장해 나갈 성장의 핵심 열쇠다. 그러나 엔젤, 시드 투자를 받은 이후 단계인 10억원 내외의 시리즈 A 투자 유치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2025년 1분기 시드 및 시리즈 A 단계의 초기 투자 건수는 181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 감소해, 창업 초기 기업의 자금 조달 환경이 더욱 열악해졌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스타트업 대표는 “매출 성장은 물론 이제 이익을 내는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투자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스타트업·벤처 투자 현황을 보면, 보다 안전한 후기 스타트업에 돈이 몰리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창업 3년 이하 스타트업에 투자된 벤처 자금은 2조2,243억원으로 전년보다 17% 감소했다. 반면 창업 7년이 넘은 후기 스타트업 투자는 전년 대비 23.3% 증가한 6조3,663억원을 기록했다.
거품 꺼진 K-유니콘
이에 국내 유니콘 기업 배출도 지지부진하다. 국내 신규 유니콘 기업 수는 2020년 3개에서 2021년 8개, 2022년 9개로 정점을 찍은 뒤 2023년 4개로 감소했다. 지난해엔 전년의 절반 수준으로 더 줄었다. 이는 코로나 직전인 2018~2019년(매년 3개)보다도 적은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년 유니콘 통계를 발표하던 중기부도 2023년부터는 관련 집계를 내놓지 않고 있다.
신규 유니콘 감소세는 전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이 특히 부진하다. 지난해 미국에선 50여 개, 중국에선 10여 개 신규 유니콘이 나왔다. 인도에서도 유니콘 5개가 배출됐다. 최근 5년 누적 기준으로도 한국 유니콘 증가세는 글로벌 평균에 훨씬 못 미친다. 2020년 13개였던 국내 유니콘 수는 2024년 25개로 1.9배 증가한 데 비해 같은 기간 전 세계 유니콘 수는 369개에서 1,257개로 3.4배 늘었다.
국내에서 유니콘으로 성장한 스타트업 가운데서는 기업가치가 계속 낮아지거나 3년 연속 영업손실을 내는 만년 적자기업이 늘고 있다. 내수 중심의 플랫폼 업체들이 많다 보니 경기가 좋을 때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유니콘으로 분류됐지만 사업 확장 등 수익모델을 찾지 못한 탓이다.
유니콘으로 성장한 뒤 기업가치가 추락한 대표 사례는 컬리다. 한때 4조원으로 평가받던 컬리의 기업가치는 코로나 팬데믹 특수가 꺼지면서 2025년 3월 기준 5,400억원으로 급속도로 낮아졌다. 실적 악화에 허덕이는 곳도 많다. 국내 25개 유니콘 가운데 17곳이 2023년 기준 적자 기업이다. 비바리퍼블리카(토스)·컬리·직방·당근마켓 등 12곳은 3년 연속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크림은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버티거나 매각하거나, 스타트업 생존 딜레마
투자 혹한기 속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스타트업의 선택지는 크게 2가지로 요약된다. '런웨이(법인통장 잔고가 0원이 될 때까지 생존할 수 있는 기간)'를 확보하며 버티거나 다른 기업에 매각(M&A)하거나다.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이나 기업 가치를 입증한 성장기 스타트업에 자금이 몰리면서 창업 초기 기업의 ‘데스밸리’ 구간이 더욱 깊어지고 있어서다. 생태계의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당초 희망했던 기업가치는 아니지만 이를 감수하며 투자를 유치하고 철저한 자금 관리와 인력 감축 등으로 런웨이를 늘리는 스타트업이 있는가 하면 투자유치에 실패해 매각을 검토하는 곳들도 많다. 일부 스타트업은 생존을 위해 비용 절감, 비핵심 사업 축소, 인력 감축 등의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단기적으로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핵심 인재의 이탈, 기술 경쟁력 약화, 조직문화 훼손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는 이 같은 위기 국면 속에서 스타트업 간 M&A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금 흐름이 양호한 선두 스타트업이 경쟁 열위에 있는 동종업계 스타트업을 인수할 최상의 타이밍이라는 설명이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업종 1~2위 스타트업들이 동종 업계 스타트업을 흡수하며 시장 우위를 가져가고 있다. M&A를 통해 실력 있는 개발자 등 인재를 영입하고 신사업 기회도 창출하려는 전략"이라며 "위기를 겪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M&A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