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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소유 스코플리, 나이언틱 인수 포켓몬 고 이후 차기작 부진에 재정난 신규 프로젝트 중단 등 구조조정 단행

모바일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를 만든 나이언틱랩스(Niantic Labs)의 비디오게임 사업부가 사우디아라비아 소유의 게임 개발사 스코플리(Scopely)에 매각됐다. 게임 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정하고 대형 게임사의 지분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번 인수를 계기로 중국 텐센트 그룹과 같은 '게임 연합체' 실현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됐다.
스코플리, 연간 활성 플레이어 5억 명 확보
12일(현지시각) AFP 통신은 사우디 국부펀드(PIF) 소유의 스코플리가 포켓몬 고를 개발한 나이언틱의 게임 사업부를 35억 달러(약 5조원)에 인수한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게임 개발사인 스코플리는 지난 2023년 4월 PIF 산하의 새비게임즈그룹(Savvy Games Group, SGG)에 인수됐다. 스코플리 측은 "지난 10년 동안 구축한 나이언틱이 이뤄 온 혁신적인 경험과 전 세계 이용자를 사로잡는 능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우리는 이번 협력을 통해 팀의 창의력을 더욱 가속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나이언틱의 게임 사업부 매각 논의는 지난달부터 본격화했다. 당시 미국 블룸버그통신, 일본 오토마톤 등 여러 외신은 업계 관계자들을 인용해 나이언틱이 스코플리에 게임 사업부를 매각하기 위한 비공개 협상을 진행 중이라 전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8월 나이언틱은 스코플리의 모회사인 새비게임즈그룹과 MOU(업무협약)를 체결한 바 있다. 중동·북아프리카 지역(MENA)에 현지화된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한 협업으로 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이집트 3개국에서 나이언틱의 사업 확장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나이언틱의 게임 사업부는 지난해 월평균 이용자 3,000만 명, 연간 활성 플레이어 1억 명을 기록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10억 달러(약 1조4,5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이번 인수로 스코플리의 포트폴리오에는 포켓몬 고를 포함해 '모노폴리 고', '피크민 블룸', '몬스터 헌터 나우', '마블 스트라이크 포스', '스텀플 가이즈' 등 나이언틱의 다양한 비디오 게임이 추가됐다. 이를 통해 스코플리는 연간 활성 플레이어 5억 명 이상을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글로벌 플레이어 커뮤니티 중 하나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나이언틱, AI 지오스페이셜 컴퓨팅에 집중
지난 10년간 나이언틱의 성장을 견인한 것은 대표작 포켓몬 고다. 이 게임은 AR 기술을 사용해 플레이어가 실외에서 휴대폰 화면에 나타나는 포켓몬을 잡고 키우는 큰 인기를 끌었다. 출시 첫해에만 5억 명 이상의 플레이어를 확보했지만,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실외 활동이 제한되면서 게임의 인기가 사그라들었다. 이후 선보인 '해리포터: 마법사연합' 등 차기작도 게임 유저들의 외면을 받았다. 재정이 악화한 나이언틱은 신규 프로젝트 중단하고 2022년부터 2년간 최소 310명의 직원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지난해에는 2021년 출시된 '피크민 블룸'이 MZ세대들 사이에서 힐링 게임으로 주목받으며 인기를 끌었지만, 반짝 흥행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피크민 블룸은 플레이어가 실제로 이동하면서 게임 내에서 식물 모종을 모으고, 걸음 수를 채워 캐릭터를 키우는 콘텐츠로 지난해 10월 QR코드를 활용한 친구 초대 기능, 여러 플레이어와 함께 참여하는 미션 등이 추가되며 인기 상승에 기여했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월간활성사용자수(MAU) 144만 명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으나 이후 하락세를 보이며 올해 2월 73만2,556명까지 급감했다.
향후 나이언틱은 '나이언틱 스페이셜(Niantic Spatial)'을 별도 법인으로 분사해 지오스페이셜(Geospatial) 컴퓨팅 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지오스페이셜은 위치와 공간 데이터를 수집·분석·저장·관리·시각화하는 기술로, 나이언틱은 게임 이용자의 데이터에 인공지능(AI)을 결합해 3D 확장현실(XR) 지도를 구축하는 대규모 지오스페이셜 모델(LGM)을 개발할 방침이다. 이 프로젝트는 나이언틱의 창업자이자 나이언틱 스페이셜의 CEO인 존 행키가 총괄하며 스코플리의 투자금 5,000만 달러를 포함해 총 2억5,000만 달러(약 3,600억원)가 투입될 예정이다.

사우디, 2030 게임산업·e스포츠 허브 목표
나이언틱을 품은 사우디는 이번 인수를 계기로 거대한 '게임 연합체' 실현을 위한 시발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2020년 사우디는 '탈석유·사업 다각화'를 골자로 한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게임과 e스포츠 산업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낙점했다. 이러한 정부의 전략 계획에 따라 PIF는 세계 각국 주요 게임사에 거금을 투자하며 게임업계의 큰손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PIF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에는 엔씨소프트, 넥슨, 닌텐도, 액티비전블리자드, 일렉트로닉 아츠(EA), 캡콤 등 다수의 대형 게임사가 포함돼 있다.
사우디는 게임 사업 투자를 기반으로 게임 등 콘텐츠 사업을 오프라인 관광 사업과 결합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현재 수도 리야드에 5억 달러(약 7,270억원)를 투입해 'e스포츠 지구'를 건설하고 총 7만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e스포츠 경기장 4곳을 세울 예정이다. 또한 리야드에서 서남쪽으로 45km 떨어진 사막지대 키디야에는 지식재산권(IP) 기반 테마파크 등 엔터테인먼트 전 분야를 아우르는 복합 문화 공간을 건설할 계획이다. 사업 규모는 약 700억 달러(약 93조원)로, 지난해 3월에는 세계 최초로 '드래곤볼 테마파크' 설립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유명 게임 전시회에 잇따라 모습을 비추며 영향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8월 새비게임즈그룹은 세계 최대 게임쇼 '게임스컴'에 참가해 자사가 보유한 게임과 e스포츠 기업을 홍보했는데, 당시 부스 규모가 글로벌 대형 게임사인 중국 텐센트에도 밀리지 않아 화제를 모았다. 이와 함께 네옴시티 프로젝트도 따로 부스를 내고 다양한 자국의 인디 게임을 소개했다.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부산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 '지스타 2024'에 참가해 키디야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몰입형 게임, 1인칭 슈팅 게임 등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