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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캐즘에 전기차 스타트업 줄파산 니콜라 시가총액, 한때 포드 앞서기도 부채 100억 달러 육박하며 주식 97% 하락

한때 '제2의 테슬라'로 불리며 기대를 모았던 수소·전기 트럭 제조업체 니콜라(Nikola)가 경영난 끝에 결국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허위 홍보 논란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은 데다 최근 전기차 캐즘으로 인한 재정난이 맞물린 결과다. 경쟁사인 니콜라의 파산으로 현대자동차는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사실상 유일한 수소 트럭 업체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경쟁사의 잇따른 도산과 미 정부의 지원 축소 가능성으로 인해 수소 트럭 시장 위축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니콜라, 허위 홍보 논란으로 시장 신뢰 상실
19일(현지시각) 니콜라는 "델라웨어주 파산법원에 파산법 제11장에 따른 구제 청원서를 제출했다"며 "파산법 제363조에 따라 자산 경매·매각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승인 요청서도 함께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스티브 거스키 최고경영자(CEO)는 "전기차 업계의 다른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운영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시장 불확실성과 거시경제적 리스크에 직면했다"며 "최근 몇 달간 자본을 늘리고 부채를 줄이기 위한 많은 조치를 했지만, 안타깝게도 중대한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2015년 설립된 니콜라는 수소·전기 트럭 기술을 앞세워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2020년 6월 뉴욕증시 상장 직후 주가가 급등했고 당시 주가가 고점을 찍으면서 시가총액이 미국 완성차 제조업체 '빅3'인 포드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미완성 기술을 홍보한 사실이 드러나며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같은 해 9월 미국의 행동주의 펀드 힌덴버그리서치가 니콜라의 홍보 동영상 속 수소 전기 트럭의 주행 장면이 내리막 도로에서 촬영된 것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했고 이로 인해 창업자인 트레버 밀턴은 2023년 사기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니콜라는 경영진을 교체하고 재기를 시도했지만, 경영권을 둘러싼 혼란이 이어졌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서 재정 상황이 빠르게 악화됐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니콜라는 최근 1년간 5억7,000만 달러(약 8,167억원)의 마이너스 잉여현금흐름을 기록하며 현재 부채만 100억 달러(약 14조3,000억원)에 달한다. 한때 93.99달러까지 치솟았던 주가도 파산보호 신청 당일 46센트까지 하락하며 시총 3,290만 달러로 줄어들었다. 이에 19일 나스닥은 니콜라에 대한 상장폐지를 결정하고 오는 26일 월요일 개장과 함께 니콜라의 보통주 거래를 중단하기로 했다.
美 수소 트럭 시장, 이제 막 성장 단계에 진입
전문가들은 니콜라의 파산 원인으로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린 허위 홍보 사건을 지목하면서도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전기차 캐즘(수요 정체)이 결정적인 타격을 줬다고 분석한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는 2023년 전기 픽업트럭 엔듀런스를 생산하는 로즈타운(Lordstown)을 시작으로 2024년 피스커(Fisker)와 프로테라(Porterra)에 이어 올해 1월 카누(Canoo)까지 전기차 업체의 파산이 이어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는 친환경 산업과 함께 수소 트럭 업체의 성장을 예상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는 미국 수소 트럭 시장이 오는 2030년 30억 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수소 트럭 시장이 이제 막 성장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미국 내 물류 대부분이 트럭 운송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업 잠재력이 상당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미국 교통부 산하 교통통계국(Bureau of Transportation Statistics)에 따르면 트럭 운송은 2023년 화물 무게 기준 운송 수단별 점유율 가운데 68.1%를 차지했다.
특히 수소 트럭은 미 물류 업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디젤 엔진 트럭과 달리 친환경 기술을 적용해 성장 잠재력이 큰 것으로 평가받았다. 디젤 트럭은 미국 전체 자동차 수의 2~3%에 불과하지만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25%에 달한다. 전기 트럭과 비교했을 때도 수소 트럭의 충전 속도가 더 빠르고 1회 충전 당 주행거리가 더 길다는 점이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꼽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수소 트럭은 고중량의 배터리가 불필요해 전기 트럭보다 적재량을 늘릴 수 있으며, 충전 속도와 주행거리 등에서 장점을 가졌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성장 전망과 달리 충전소 등 인프라 부족은 수소 트럭의 한계점으로 거론됐다. 실제로 현재 미국 내 수소 충전소는 50개 주 144개소에 불과하며 이 중 12개소는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이에 니콜라는 수소 트럭 사업과의 동반 성장을 위해 2023년 1월 신규 에너지 브랜드 하일라(Hyla)를 론칭했다. 하일라는 니콜라의 수소 트럭 충전 인프라 사업으로 지난해 3월 캘리포니아에 첫 스테이션을 개관했다. 오는 2026년까지 수소 충전소를 60개로 늘리며 자체적으로 수소·전기차 인프라까지 해결하려 했지만, 재정 여건이 악화하며 무리한 전략이었음이 드러났다.

현대차, 美 유일의 수소 트럭 업체로 남을 수도
한편 니콜라 파산으로 글로벌 수소 전기차 시장 1위인 현대자동차는 반사이익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20일 WSJ는 "현대차가 최근 경쟁사들의 연이은 파산으로 미국에서 사실상 유일한 수소 트럭 업체로 남을 공산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미국 수소 트럭 시장에는 니콜라 외에도 일리노이주 볼링브룩에 거점을 둔 수소 트럭 제조기업 하이존(Hyzon)이 있지만, 심각한 재정난을 겪으며 이미 유럽과 호주 시장에서 철수했다. 이달 초 파커 믹스 CEO가 사퇴한 데 이어 대규모 구조 조정을 예고하며 사실상 청산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현대차는 미국 내 수소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현대차는 현대글로비스 아메리카와 협력해 엑시언트 21대를 미국 조지아주에 소재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배치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운행 중인 30대에 이어 추가 투입된 물량으로 배치된 엑시언트 21대는 미국 현지 부품 공급업체와 HMGMA를 오가며 부품 운송을 담당한다. 이와 함께 현대차는 HMGMA에 엑시언트의 수소 충전을 위한 이동식 충전소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 정책이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수소연료전지파트너십(HFCP) 빌 엘릭 사무총장은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한 회사만 사라져도 업계가 얼어붙을 수 있다"며 "시장이 커지려면 정부 보조금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비싼 연료 가격과 충전소 인프라 구축을 지원할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친환경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펼친 조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친환경 에너지 예산의 축소를 예고한 터라 현대차와 같은 수소차 업체는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