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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등 해외에서 투자 유치”
데이터센터 구축·AGI 개발 가속
韓 반도체 기업 프로젝트 합류 기대
![](/sites/default/files/styles/large/public/image/2025/02/France_AI_TE_20250211.jpg.webp?itok=E99WkU5P)
프랑스가 미국과 중국 주도로 전개되던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에 가세했다. 우리 돈 160조원 상당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히면서다. 중국발 ‘딥시크 쇼크’가 전 세계를 강타한 가운데, AI 인프라 구축과 이를 위한 자금 유치 경쟁 또한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업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이 미국 주도 대규모 프로젝트에 핵심 파트너로 참여할 가능성을 점치는 분위기다.
위기의식에 비례해 커지는 투자 규모
10일(이하 현지시각)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국 파리에서 개최되는 ‘AI 정상회의’ 개막을 앞두고 진행된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AI 분야에 총 1,090억 유로(약 163조 원)를 투자할 계획”이라며 “캐나다 투자사 브룩필드에서 200억 유로,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최대 500억 유로의 자금을 조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금의 상당 부분은 데이터센터 구축 등에 사용된다는 설명이다.
이날 마크롱 대통령은 대규모 AI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미국에 대한 견제의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이번 계획은 미국이 스타게이트를 발표한 것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라면서 “유럽과 프랑스는 첨단 플랫폼 개발과 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미국은 오픈AI와 소프트뱅크, 오라클 등 주요 빅테크들의 주도로 향후 4년간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AI 인프라에 5,000억 달러(약 725조 원)를 투자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발표한 바 있다.
업계는 프랑스의 갑작스러운 대규모 AI 투자 계획에 중국발 딥시크 쇼크로 인한 위기의식 또한 한몫한 것으로 풀이했다. 딥시크가 범용인공지능(AGI) 개발에 필요한 ‘추론 기능’까지 높은 수준으로 구현해 내는 등 미국은 물론 중국까지 AGI 개발에 성큼 다가섰다는 판단에서다. AGI는 인간의 사고와 가장 유사한 AI로, 지금까지의 산업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꿀 ‘게임체인저’로 불린다. 전문가들은 “적시에 투자하지 않으면, AGI 개발에서 완전히 뒤처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각국의 대규모 자본 투입으로 드러나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유럽연합(EU)도 디지털 주권 강화를 목표로 오픈소스 언어 모델을 개발하는 ‘오픈유로LLM’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체코 찰스대학교의 전산 언어학자 얀 하이치와 사일로 AI(Silo AI)의 공동 창립자인 피터 살린이 주도하는 해당 프로젝트에는 20곳이 넘는 EU 내 주요 연구 기관과 기업이 참여한다. EU의 지원과 민간 투자 등 투입되는 예산은 총 5,200만 유로(약 778억원) 수준이다.
![](/sites/default/files/styles/large/public/image/2025/02/promote_AI_TE_20250211.jpg.webp?itok=dQd7YjXz)
“실탄이 곧 힘” 자금 조달 경쟁
미국과 중국의 주도로 전개되던 AI 패권 경쟁에 프랑스까지 가세하면서 글로벌 ‘쩐의 전쟁’ 또한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대규모 인프라 구축과 고급 인력 확보 및 유지에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한 만큼 든든한 현금 보유 여부가 경쟁의 향방을 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픈AI는 최대 400억 달러(약 58조원)의 자금 조달에 나서면서 쩐의 전쟁 서막을 알렸다. 이번 자금 조달은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대 규모다.
오픈AI, 오라클과 함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오픈AI에 최대 250억 달러를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자금 조달이 성공적으로 완료될 경우, 오픈AI의 기업가치는 3,000억 달러(약 437조원) 수준으로 불어나 스페이스X에 이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비상장 기업이 된다. 오픈AI는 불과 넉 달 전인 지난해 10월 66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1,570억 달러(약 228조원)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은 바 있다.
오픈AI는 이번에 조달하는 투자금의 일부를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투입하고, 나머지 금액은 적자를 거듭 중인 AI 모델 운영 및 개발에 투입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오픈AI는 비상장기업인 탓에 실적을 공개하지 않지만, 업계는 오픈AI가 지난해 약 50억 달러(약 7조3,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한 중동의 국부펀드들도 AI 투자에 열을 올리면서 글로벌 빅테크들의 자금 조달 경쟁을 부추기는 모습이다. UAE 국부펀드인 무바달라는 오픈AI의 경쟁사인 앤스로픽을 비롯해 지난 4년간 8건의 AI 투자를 단행했으며, 사우디공공투자펀드(PIF)는 미국 벤처캐피털업체 안드레센 호로위츠와 400억 달러 규모의 파트너십 계약을 추진 중이다. 보유 자산이 925억 달러에 달하는 PIF는 사우디인공지능회사(SCAI)라는 AI 전용 펀드를 출범하기도 했다.
한미일 AI 동맹 가시화
한편, AI 경쟁 가속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 반도체 기업들에도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대부분 국가의 AI 인프라 확충 계획에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건설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의 고성능 컴퓨팅 환경 구축을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 처리와 저장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AI 서버의 연산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메모리와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고 안정적으로 저장 및 관리할 수 있는 스토리지 공급 업체들은 프로젝트의 핵심 파트너로 주목받고 있다.
업계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 △그래픽D램(GDDR) △고용량서버메모리모듈(RDIMM)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등의 핵심 공급처로 합류할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들 메모리와 스토리지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업”이라고 짚으며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우리 기업들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또한 이달 초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회동하며 ‘한미일 AI 동맹’에 한 발짝 다가섰다. 이날 회동에는 르네 하스 Arm CEO와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도 함께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2시간가량의 미팅 직후 손 회장은 삼성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참여와 관련해 “유의미한 논의가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논의할 예정”이라면서 “모바일, AI 전략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여러 방면의 협력 가능성을 열어 둔 상태다. 현재 오픈AI는 소프트뱅크 산하 Arm의 반도체 설계를 기반으로 AI 반도체를 개발 중이지만, 자체 생산 시설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이번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된다면 오픈AI가 개발을 주도하고, Arm이 설계,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삼각 협력 구도가 형성된다.
시장 점유율 확대가 시급한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에 적자 개선의 실마리가 주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수인 메모리와 파운드리 제조 설비를 확보한 동시에 턴키(일괄생산) 공급이 가능하다는 강점이 있다”면서 “대규모 AI 반도체 생산 능력을 보유한 만큼 스타게이트 전략 파트너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