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가성비로 韓시장 장악한 중국산 재활용 페트, ‘친환경’ 포장 두르고 소비자 기만
Picture

Member for

6 months
Real name
김민정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수정

재활용 체계 왜곡, ‘그린워싱’ 현실화
꾸준한 보도에도 규제·검수·인증 전무
손 놓은 정부에 소비자 이중 사기당해

플라스틱 재활용 용기 생산 재료인 페트(PET) 시장에 중국산 제품이 판을 치면서 우리 기업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다수의 중국 기업이 우리 업체들로선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의 단가로 시장에 물량을 풀면서 국내 재활용 업계의 수익 구조 또한 붕괴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일부 중국 업체는 친환경 제품인 것처럼 가짜 재생 원료를 포장해 한국에 납품하면서 소비자들을 우롱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저가 공략으로 시장 침투, 산업 생태계 왜곡 시작

22일 재활용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유입된 가짜 페트 재활용 원료는 약 1만2,000톤(t)으로 추산됐다. 원산지는 대부분 중국으로, 중국 본토에서 바로 들어온 물량 외에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제삼국을 우회한 물량 또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대로라면 국내 재활용 페트 시장이 잠식될 것이 자명하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중국 업체들은 우리 환경부의 플라스틱 재활용 비율 제고 정책의 허점을 이용해 저가로 물량을 밀어낸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재활용 원료 생산업체 A사가 최근 중국산 페트를 분석한 결과, 재활용 원료에서 발견되는 이물질 등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재활용 원료가 새 페트병보다 비싼 점을 노린 것으로, 중국산 재활용 페트 원료 수입가는 ㎏당 약 1,450원으로 일반 페트 수입가인 ㎏당 1,300원보다 높다.

반면 원료 가격이 ㎏당 2,000원에 달하는 국산 재활용 페트는 설 자리를 잃었다. 새 페트병을 재활용 원료로 둔갑시키는 중국산과 달리 수거와 분류, 세척 등에 상당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통상 플라스틱 재생 원료를 생산하기 위해선 t당 수거·선별 비용이 20만원, 세척 비용이 30만원가량 든다. ‘싸게 팔고, 규모로 밀어붙이는’ 중국 특유의 방식이 유효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 같은 중국산 가짜 재활용 원료는 유럽에서도 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유럽은 새 페트병이 재활용 원료로 둔갑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인증 및 검사를 강화하고 있다. 업계에선 국내에서도 정부가 재활용 원료 검증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고, 강력한 제재 조치를 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한 재활용업체 대표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과거 국내 생산기업이 없어 위기를 키웠던 ‘요소수 대란’과 비슷한 사태가 벌어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꼬집었다.

출처=산업통상자원부

‘가치 소비’ 추구하는 소비자는 두 번 속았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20년부터 플라스틱 재생 원료에 대한 내수 시장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전개 중이다. 대표적으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2020년 1월부터 추진 중인 ‘리사이클 섬유·패션 소재 제조 활성화 지원사업’을 꼽을 수 있다. 전 세계적 트렌드인 리사이클 소재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시장의 기반을 다진다는 게 산업부의 구상이었다.

문제는 중국산 가짜 재생 원료가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자원순환을 촉진하겠다는 정책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섬유에 사용되는 재생 원료는 소비자로부터 수거된 PCR(Post-Consumer Recycled)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버진칩’이라는 형태로 새 페트를 재활용으로 둔갑시켜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이 가짜 원료를 사용한 제품들은 ‘리사이클링’ 이름 아래 친환경 마케팅을 펼친다. ‘가치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로선, 가짜 제품에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비단 원료 수입 업체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국내 유통업체와 완제품 제조사들도 검증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원료 단가만 보고 조달처를 선택하다 보니, 정작 공급 과정의 투명성이나 원산지 확인은 미흡한 경우가 다반사다. 중국 업체들이 저가 공세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직결되는 핵심가치) 이미지까지 얹어 한국 시장을 이중으로 지배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못 막은 정부? 안 막은 정부!

이러한 문제는 최근에야 불거진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다. 이미 2022년부터 중국산 가짜 재생원료 유입에 대한 의혹과 경고가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업계 내부에서는 중국산 재활용 원료가 “수상할 정도로 깨끗하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언론들도 이를 앞다퉈 보도했다. 재생 페트 시장에 대한 검증 부실을 지적하며 중국산 원료 사용 증가와 ESG 흐름을 악용한 사례들을 소개하는 식이다.

당시 한 인터넷 매체는 “패션업계가 기후 위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소비자를 위해 ‘착한 패션’을 앞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한국 시장을 노리는 중국 플라스틱 제조 업체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한국의 경우, 라벨지 부착에 사용되는 접착제 등으로 재활용이 많다”고 지적하며 “애초에 재활용이 용이한 것만 생산하게 해야 국내 재활용 산업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여러 언론 및 기관의 분석과 조언에도 정부는 “확인 중”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했고, “업계 자율로 개선을 유도하겠다”는 무책임으로 일관했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사태는 충분히 예측 가능했고, 충분히 막을 수도 있었다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지적이다. 한 재활용 업체 대표는 “힘들게 쌓아 올린 친환경 이미지가 중국산 가짜 원료에 휘청거릴 만큼 취약한 구조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진단하며 “이는 결국 단순히 시장의 문제가 아닌, 한국 친환경 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를 흔드는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Picture

Member for

6 months
Real name
김민정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