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ARM, 자체 설계 역량·수익성 제고에 힘 실어 반도체 설계 기업 암페어컴퓨팅 인수도 논의 중 반도체 육성에 힘 쏟는 日, ARM 지원 나설까
영국의 팹리스(생산라인이 없는 반도체 기업) 기업 ARM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판도를 뒤흔드는 '게임 체인저'로 급부상하고 있다. 반도체 설계 IP(지식재산)를 제공하는 수동적 역할에서 벗어나 직접 칩을 설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면서다. 시장에서는 향후 ARM이 전략적인 인수합병(M&A)과 일본 정부의 지원사격 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ARM에 불어든 '변화의 바람'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은 ARM이 반도체 설계 로열티를 인상하는 장기 전략을 추진했으며, 자체 반도체를 설계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내용은 ARM이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 퀄컴을 상대로 제기한 IP 침해 소송 과정에서 나온 증언과 문서 등을 통해 확인됐다.
ARM은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을 90% 가까이 점유하고 있는 관련 분야의 '절대 강자'다. 퀄컴뿐 아니라 애플, 삼성전자 등 대부분 기업이 ARM의 기본 설계도를 사용해 모바일 AP를 생산할 정도다. 다만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매출액은 쟁쟁한 고객사들에 비교해 적다. ARM의 2024 회계연도 매출은 32억3,000만 달러(약 4조7,200억원) 수준이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르네 하스 ARM 최고경영자(CEO)는 로열티 인상 및 자체 반도체 설계를 통해 실적 부진 문제를 타파하겠다는 방침이다. 해당 프로젝트는 2019년부터 ‘피카소’라는 이름으로 진행돼 왔으며, 향후 10년에 걸쳐 연간 스마트폰 관련 매출을 10억 달러가량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목표 실현을 위해 ARM은 향후 최신 컴퓨팅 아키텍처인 ‘Armv9’을 사용하는 반도체 설계에 대한 로열티를 최대 300%까지 인상할 예정이다.
이에 더해 ARM은 인공지능(AI) 칩 개발을 통해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구상도 밝힌 상태다. 이는 손 회장의 '10조 엔(88조원) 투자 계획'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손 회장은 지난해 ARM을 중심으로 10조 엔을 투자해 AI 관련 사업 영역을 확대, 소프트뱅크를 AI 중심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을 드러낸 바 있다. 이에 따라 ARM은 2025년 봄 AI 칩 프로토타입 개발을 완료하고, 같은 해 가을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M&A 통한 역량 강화도 검토
ARM은 인수합병(M&A)을 통한 설계 역량 강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월 블룸버그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ARM이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과 함께 반도체 설계 기업 암페어컴퓨팅(Ampere Computing LLC, 이하 암페어)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소식통은 암페어가 기업공개(IPO) 실패 후 전략적 선택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ARM으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았다고 전했다.
암페어는 인텔 임원 출신인 르네 제임스가 2017년 설립한 서버 및 데이터센터용 중앙처리장치(CPU) 설계 전문 기업으로,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이 지분 29%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소식통은 현재 논의는 초기 단계로 무산될 가능성이 있고, 암페어 인수에 관심이 있는 다른 매수자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인수액 규모도 알려지지 않았다.
현지 언론들은 ARM이 암페어를 인수할 경우 ARM의 시장 경쟁력이 눈에 띄게 향상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미국의 투자 전문 매체 벤징가는 "Arm의 경우 암페어를 인수하면 (반도체 설계) 기술 라이선스 제공 업체에서 반도체 제조 업체로 진화하는 데 속도를 낼 수 있다"며 "또 서버 시장에서 암페어의 엔지니어링 전문성 활용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룸버그도 "인수가 성사되면 Arm에는 과거 업계를 선도하던 인텔의 서버 칩 사업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암페어 엔지니어가 대거 합류해 관련 시장 진출 시 전문성과 추진력을 더할 수 있게 된다"고 평가했다.
日 '지원사격' 가능성
한편 시장에서는 적극적으로 반도체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일본 정부가 이 같은 ARM의 사업 확장 행보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ARM의 지분 90%를 보유 중인 만큼, 향후 일본 정부가 ARM을 대상으로 '지원사격'에 나설 수 있다는 시각이다. 시장 관계자는 "ARM은 현재도 반도체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라며 "일본 정부가 반도체 경쟁력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만큼, 소프트뱅크 산하 기업인 ARM이 혜택을 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짚었다.
실제 최근 일본 정부는 자국 반도체 시장 육성을 위해 공격적인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에 대한 투자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12월 일본 경제산업성은 올해 자국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에 1,000억 엔(약 9,500억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2025 회계연도(내년 4월~2026년 3월) 예산안에서 반도체 분야에 배정된 3,300억 엔(약 3조1,500억원)의 자금 중 3분의 1가량을 한 기업에 몰아주기로 한 것이다. 라피더스는 도요타·소니 등 일본 기업 8곳이 2022년 합작 설립한 회사로, 일본 반도체 산업 부활 프로젝트의 '상징'으로 꼽힌다.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라피더스에 지급하기로 약속한 지원금은 1조200억 엔(약 9조5,000억원)에 이른다.
일본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현지 투자도 적극적으로 유도 중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개소한 TSMC의 구마모토 공장에 4억760억 엔(약 4조2,000억원)의 보조금을 제공했다. 이는 전체 투자 금액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아울러 일본은 TSMC가 2027년 가동을 목표로 지난해 착공한 구마모토 2공장 건설에도 7,300억 엔(약 6조5,000억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투입할 방침이다. 일본 정부가 두 공장에 지원한 보조금 규모는 총 10조7,000억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