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실패 드러난 K-배터리 ‘가격·기술·타이밍’ 모두 中에 밀렸다
입력
수정
공장 가동률·투자 규모 극명한 차이
기술 전략 부재와 LFP 대응 실패
시장 불황 넘어 산업 붕괴 가능성도

한국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의 고급화 전략이 사실상 실패하면서 시장 내 생존 가능성마저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외신의 평가가 나왔다. 실제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는 중국 기업들이 가격과 기술, 공급망에서 우위를 확보하며 주도권을 넓혀가는 가운데, 한국은 전략 전환 지연과 고비용 구조 탓에 경쟁력을 빠르게 잃어가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더 이상 ‘배터리 강국’의 위상을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을 꼬집으며 지금과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대규모 체질 개선과 차세대 기술 투자가 시급하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韓 배터리 3사 공장 가동률 50% 수준
1일(현지시간) 글로벌 IT 전문 매체 레스트오브월드는 “한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의 공장 가동률은 50% 수준인 반면, 중국 기업들은 90%에 달한다”며 “이러한 흐름 속에서 중국산 배터리는 한국의 기술력마저 추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한국 배터리 3사가 시장의 수요를 무시한 채 고가의 삼원계(NCM) 배터리에 ‘올인’한 전략이 결국 중국과의 대결에서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중국 기업들은 리튬인산철(LFP)배터리에서 시작해 2021년 이후 NCM 배터리 생산을 본격적으로 확대했는데, 이 같은 흐름이 리튬·니켈·코발트 등 원재료 가격을 끌어올려 오히려 LFP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실제 시장의 주도권도 중국 쪽으로 기우는 양상이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데이터 파워트레인은 “NCM 배터리 수요는 대중차 시장에서 점차 사라지고 틈새형으로 전락했다”며 “이에 집중한 한국 기업들의 기반 자체가 축소됐다”고 분석했다. 대부분 자동차 제조사가 가격 경쟁력이 높은 LFP 배터리를 대중형 모델에 대거 적용하고, NCM 고성능 혹은 고가 차종에만 한정하는 흐름을 강화했다는 설명이다. 파워트레인은 “한국 기업들이 LFP를 한 단계 아래의 기술로 취급하며 대응을 늦춘 사이 닝더스다이(CATL)와 BYD 등 중국 기업들은 원재료 수급망과 공급망 수직계열화를 무기로 압도적인 규모의 경제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 기술적 격차도 점점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올해 초 CATL은 배터리 셀을 1초 만에, 배터리팩을 약 2분 30초 만에 생산할 수 있는 속도를 확보했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단기간 내 따라잡기 어려운 영역으로, CATL은 이러한 경쟁력을 발판 삼아 독일·헝가리·스페인 등 유럽 현지에 대규모 설비 투자를 단행하는 등 한국 기업들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시장까지 침투하고 나섰다. CATL 측은 레스트오브월드 인터뷰에서 “(기술 진보는) 끊임없는 혁신의 결과”라고 강조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유럽 시장마저 중국에 잠식되는 양상은 한국 기업들에게 이중 압박으로 작용한다.
정책 환경 역시 역풍 요인이다. 미국의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OBBBA)’ 시행으로 전기차 구매세액공제(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가 당장 이달부터 폐지되면서다. 산업연구원은 이로 인해 미국 내 배터리 판매량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근거로는 유럽의 사례를 들었다. 미국보다 앞서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하거나 축소한 독일·프랑스·스웨덴의 지난해 전기차 판매량은 2023년 대비 각각 27.4%, 2.6%, 15.9% 줄었다. 산업연구원은 “보조금 제도 변화는 전기차 시장 수요에 직격탄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하며 “한국 배터리 3사 역시 유사한 충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국내 배터리 3사의 실적 악화도 이 같은 비관적 전망을 뒷받침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73.4% 급감했고, 4분기에는 6,028억원의 실질 손실을 냈다. 삼성SDI 역시 7년 만에 분기 적자를 기록했고, SK온은 경영 효율화를 앞세워 구조조정과 희망퇴직에 돌입했다. 이처럼 업계 전반이 ‘비상경영’을 선언한 상황에서, 투자 축소와 인력 감축만으로는 글로벌 수요 위축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분석 또한 설득력을 얻는다. 전기차 대중화 국면에서 중국 기업들이 가격·공급망·기술의 3박자를 모두 확보한 반면, 한국은 정책 리스크와 전략 실패가 겹치며 경쟁력을 빠르게 상실했다는 진단이다.

기존 전략 착시로 대응 속도 더뎌
더 큰 문제는 한국 기업들이 기술적으로도 도전과 전환의 타이밍을 놓쳤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 국내 배터리업계는 고성능·고부가가치 NCM 배터리에 집중하며 화재 등 리스크는 전고체 배터리로 극복하겠다는 청사진을 세웠다. 그러나 전고체 상용화가 지연되는 사이 중국은 LFP성능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그 결과 LFP는 전기차 보급형 시장은 물론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까지 장악하며 사실상 ‘시장 표준’이 됐다. 나아가 리튬·흑연·망간·니켈 등 핵심 광물 채굴·정련까지 장악하면서 원가 경쟁력까지 확보했다.
이러한 기술·공급망 격차는 고스란히 시장 점유율 변화로 이어졌다. 한국 배터리 3사의 이차전지 시장 점유율은 올해 상반기 16.4%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4%p 하락했지만, CATL은 같은 시기 순이익 5조8,662억원을 기록하며 급성장했다. 유럽에서도 양상은 동일하다. 2021년 한국 3사의 점유율은 70%에 달했으나, 2024년 45.1%로 떨어졌고, 중국 기업들은 49.7%까지 치솟으며 사상 처음으로 역전했다. 폭스바겐 ID.4, 스텔란티스 피아트 500e, 르노 메간E 등 주요 엔트리급 모델에 CATL이 제조한 LFP가 연이어 채택되면서 유럽 완성차업계의 중국 의존도 또한 걷잡을 수 없이 높아졌다.
전략 실패는 곧 실적 지표 악화를 의미한다. 삼성SDI 헝가리 법인은 올해 1분기 매출 1조1,602억원과 순손실 248억원을 기록했는데, 전년 동기 2조523억원에서 매출은 43% 줄고 229억원 순이익에서 적자로 돌아섰다. LG에너지솔루션 유럽 매출 역시 2023년 약 12조원에서 지난해 7조원으로 불과 1년 사이 5조원이 증발했다. SK온도 헝가리 제3공장을 가동했지만, 실제 가동률은 60%를 밑도는 실정이다. 삼성SDI가 1조6,000억원 규모 유상증자 가운데 약 40%를 헝가리 LFP 라인에 투입하며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지만, 본격 양산은 2027년 이후로 예정돼 있어 이미 타이밍에서 늦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더 이상 배터리 강국 아냐” 비관적 전망 확대
시장에서도 한국이 더는 배터리 산업에서 과거와 같은 선도 국가의 위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단순히 일시적인 경기 침체를 넘어 여러 구조적 요인이 겹치며 배터리 강국으로서의 지위가 중국으로 넘어갔다는 평가다. 전기차 대중화 국면에서 소비자들의 구매 기준이 가격과 안전성 등으로 재정렬되는 사이 한국은 고사양 중심 포지셔닝을 고수했고, 그 결과 시장의 볼륨이 형성되는 구간에서는 선택지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됐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장은 한국 배터리 3사가 가격 협상에서도 주도권을 잃는 사례가 늘었다고 봤다. 완성차업계가 가격과 납기 신뢰도를 중시하며 공급선을 다변화하는 사이, 중국 업체는 규모의 경제와 수직계열화 덕분에 동일 사양 대비 낮은 견적을 제시할 여력이 컸다. 반면 한국은 고비용 구조를 단기간에 바꾸기 어려워 엔트리급과 상용 플랫폼의 대량 발주에서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잦아졌다. 이는 곧 점유율 방어를 위한 가격 인하가 수익성을 잠식하는 악순환을 낳았고, 정성적 평가와 정량 지표가 동시에 추락하는 구도로 귀결됐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작금의 상황은 한국 배터리 산업의 위상이 재정의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은 더 이상 이 분야에서 절대적 우위를 주장하기 어려운 위치로 이동했으며, 선도 국가의 지위는 상당 부분 중국에 이전됐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수요 재편에 발맞춰 포트폴리오 재설계와 가격·규모 경쟁력 회복, 현지화 전략 등을 동시에 추진하지 않는다면 추격자 지위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역방향을 가리키는 한국과 중국의 시장 지표는 이 같은 변화를 보여주는 경고음이며, 이를 반전시키지 못하면 한국 배터리 산업의 존재감은 점차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