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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재무장관 등에 서한 “이재명 정부 지지 법안, 미국 기업 규제” 한미 무역협상에서 핵심 쟁점 될 듯

그동안 미국이 한국의 대표적 비(非)관세 장벽으로 지목했던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문제를 두고 미국 연방 하원 의원들도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하원 의장들이 해당 법안 추진을 콕 집어 “도를 넘는(excessive) 규제”라고 해결을 촉구하면서 현재 진행 중인 무역 협상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도 넘는 규제" 트럼프 협상팀에 서한 발송
지난 1일(현지시간) 하원 세입위원회의 에이드리언 스미스 무역소위원회 위원장(공화·네브래스카)과 캐럴 밀러 의원(공화·웨스트버지니아)은 서한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에 한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미국 디지털 기업을 불공정하게 겨냥하는 무역 장벽을 다루라고 요구했다. 스미스 의원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서한을 보면 의원들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전임 윤석열 정부에서도 추진했던 온라인 플랫폼 기업 규제에 문제를 제기했다. 온플법은 점유율과 이용자 수가 일정 기준을 넘은 플랫폼 기업이 자사 우대, 끼워팔기 등 불법 행위를 할 경우 관련 매출의 최대 8%(현행 6%)까지 과징금을 부과하고 임시중지명령 제도를 도입하는 게 골자다.
의원들은 "우리가 해결하라고 촉구하는 장벽 중 하나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안하고 이재명 정부가 받아들인 법안으로, 이 법안은 강화된 규제 요건으로 미국 디지털 기업들을 과도하게 겨냥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안은 유럽연합(EU)의 노골적으로 차별적인 디지털시장법(DMA)과 유사하며 혁신적인 사업모델을 약화하고 성공적인 미국 기업들을 불리하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이질적인 법적 기준과 집행 기준을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원들은 또 "법안은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테무와 같은 중국의 주요 디지털 대기업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미국 기업들을 과도하게 겨냥해 중국공산당의 이익을 진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보호주의 목적을 달성하고 차별적인 정책 결과를 촉진하기 위해 오랫동안 경쟁법을 이용해 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공정위가 미국 기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새벽 압수수색 등 매우 공격적인 집행 조치를 동원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범죄로 간주하지 않을 일반적인 산업 관행도 형사 고발하겠다고 위협해 한국 시장에서 미국 기업의 사업을 매우 제약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의원들은 "우리는 트럼프 행정부가 진행 중인 협상에서 미국 노동자와 기업들을 겨냥한 외국의 차별적인 조치를 제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데 고무됐다"면서 "우리는 한국의 표적 온플법과 한국 공정위의 도를 넘는 규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부와 협력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美 디지털 기업에 불이익 설계
의원들이 서한에서 주장한 내용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동안 미국에서는 온플법을 한국과의 무역 협상을 통해 해소해야 할 문제점으로 꼽아왔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때도 미국상공회의소를 비롯한 미국 재계는 의원들이 서한에서 주장한 이유를 들어 온플법에 공개적으로 반대해 왔다.
미국무역대표(USTR)도 지난 3월 말 발간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TE)’에서 한국의 온플법을 대표적인 무역장벽으로 지적했다. USTR은 이 법안으로 다수의 미국 대기업과 2개의 한국 기업이 규제를 받지만 다른 주요 한국 기업과 다른 국가의 기업은 제외된다며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무역 협상을 이끄는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지난해 미국 매체 배런스 기고문에서 공정위의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 논의에 대해 “미국 기업을 차별하는 규제를 도입하려는 한국의 노력이 한미 무역 관계의 안정에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해당 법안은 한국의 대기업은 그대로 둔 채 미국 기업의 운영과 전략 개발을 엄격하게 규제한다”며 “미국 기업이 재벌과 경쟁한다는 이유만으로 표적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집권여당에서 무려 43명이나 되는 의원이 행정부에 이 사안 해결을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며 미국 정치권이 자국 디지털 기업에 영향을 미칠 규제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캐나다가 미국 기업에 디지털 서비스세를 부과한다는 이유로 무역 협상 중단을 일방적으로 선포한 사례를 봐도 트럼프 행정부가 디지털 규제를 무역 장벽으로 인식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트럼프 사정권에 든 온플법 '진퇴양난'
한국 정부도 미국이 디지털 규제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게다가 온플법이 자칫 한·미 통상 리스크로 떠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큰 상황이다. 지난 2월 16일 산업부는 “플랫폼법 입법 시 국회의 신중한 검토를 부탁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보고서를 국회 정무위원장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했다.
산업부 측은 보고서에서 “미국 민·관·의회 모두 (온플법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고, 문제 제기가 지속될 전망”이라며 “한·미 간 잠재적 통상 마찰 사안이 무역 보복 등으로 연결되지 않게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온플법 시행이 자칫 상호관세 또는 미국 무역법 301조(외국이 불공정 무역을 할 경우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법률 조항) 적용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온플법 추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시장 영향력이 큰 플랫폼을 사전에 지정한 뒤 법 위반 시 빠르게 제재하는 내용의 ‘사전지정제’를 법안에서 제외한 만큼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또 플랫폼법이 미국 기업을 겨냥한 차별적 규제가 아니라 국내 빅테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설명한다. 올해 업무계획에도 플랫폼 반경쟁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 추진 계획을 밝혔다.
다만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플랫폼법 입법 과정에서 통상환경 변화가 종합적으로 고려될 수 있도록 국회와 협의하고 미국 측과 지속적으로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재검토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어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공정위 차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고, 국가 전체 경제와 관련된 이슈인 만큼 범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봐야 할 사안"이라며 한 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