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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공격적인 M&A 전략, 외형 성장 이끌어 2019년 美 진출 위해 1,450억원에 에이본 인수 '방문 판매' 한계 직면, 실적 부진으로 적자 누적

LG생활건강이 미국 손자회사 에이본(The Avon Company)의 매각을 검토 중이다. 과거 차석용 대표이사 부회장 재임 시절, LG생활건강은 적극적인 인수·합병(M&A) 전략을 전개했고 중국 시장 중심의 사업 구조를 다각화하기 위해 미국 진출의 교두보로 에이본을 인수했다. 당시 차 부회장은 28건의 M&A를 성사시키며 회사의 외형 성장을 이끌었지만, 잦은 M&A로 인한 후유증 또한 적지 않았다. 이에 LG생활건강은 지난 2023년부터 부실 계열사를 매각하며 내실화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에이본, 130년 역사의 美 방문 판매 기업
2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최근 LG생활건강은 에이본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매각 규모는 1,50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당초 LG생활건강은 북미 인프라 확보를 위해 에이본을 사들였으나 실적이 악화되면서 매각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4월 LG생활건강은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서버러스(Cerberus)로부터 에이본(옛 뉴에이본) 지분 100%를 1억2,500만 달러(약 1,450억원)에 인수했다. 이듬해 자회사인 LG H&H USA에 에이본 주식을 100% 현물 출자해 에이본은 LG생활건강의 자회사에서 손자회사가 됐다.
1886년 미국 뉴욕에서 설립된 에이본은 100년 넘게 '에이본 레이디'라 불리는 판매원들이 가정 방문을 통해 미용 제품을 판매해 왔다. LG생활건강이 인수한 후에도 방문판매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했다. 하지만 북미 시장 공략을 위한 전초 기지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에이본은 방문 판매 방식이 트렌드와 맞지 않아 실적에 큰 보탬이 되지 못했다. 인수 다음 해인 2020년에는 2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했지만, 이후 실적이 악화돼 △2021년 -55억원 △2022년 -470원 △2023년-404억원 △2024년 -280억원으로 적자를 이어갔다.

공격적 M&A로 외형 성장, 부작용도 속출
에이본 인수 당시 LG생활건강을 이끌던 차석용 전 부회장은 2005년 취임해 18년간 회사를 이끈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로 'M&A의 귀재'로 불렸다. 특히 그는 중국에서의 성공 신화를 이어가겠다는 구상하에 2010년대 후반부터 미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 마련을 위해 대규모 M&A를 진행했다. 2019년 에이본 인수에 이어 2021년에는 염모제 생산업체 보인카를 1,164억원에 인수했고 2022년에는 1,500억원을 들여 색조화장품 제조·유통사 더크렘샵의 지분 65%를 사들였다. 더크렘샵의 경우 5년 후 잔여 지분 35% 매수 옵션이 포함됐다. 이 밖에도 차 부회장은 2022년 실적 악화로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코카콜라음료, 더페이스샵, 해태음료, 에버라이프 등을 28건의 M&A를 성사시키며 LG생활건강의 사세를 키웠다.
하지만 이 시기 M&A에 대해서는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우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에서의 부진을 북미 시장에서 일부 상쇄하고 외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는 일견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실제 LG생활건강의 지난해 북미 지역 매출은 전년 대비 10.9% 늘어난 6,007억원을 기록한 데 반해 중국향 매출은 6.9% 감소한 2조323억원으로 집계됐다. 더크렘샵의 인수도 성공적이라는 평이다. 더크렘샵은 현지 MZ세대를 공략하며 2022년과 2023년 당기순이익이 2년 연속 세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문제는 야심 차게 인수한 자회사들의 손상차손으로 전사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손상차손은 기업이 보유한 자산가치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될 때 장부가를 조정하는 작업을 말한다. 인수 이후 실적 부진을 이어온 에이본을 비롯해 보인카는 2022년과 2023년, 2년 연속으로 손상차손을 반영했다. 이 두 회사가 반영한 손상차손 총액은 2022년 2,438억원, 2023년 1,330억원에 이른다.
'저속노화' 트렌드 속에 코카콜라도 부진
부진을 겪는 자회사는 비단 에이본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탄산음료 시장이 위축되면서 코카콜라음료의 실적도 악화됐다. 저속노화 열풍으로 당 섭취를 줄이려고 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수요가 위축된 탓이다. 코카콜라음료 매출 가운데 비중이 높은 제품은 코카콜라, 몬스터에너지, 파워에이드 순이며, 전체 매출에서 탄산음료가 72%, 비탄산 음료가 28%의 비중을 차지한다.
코카콜라음료는 2023년 9년 만에 처음으로 영업이익이 감소한 데 이어 지난해도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실제로 음료 부문 영업이익이 1,681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21.9% 감소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영업·물류직 고연령 직원들을 대상으로 첫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코카콜라음료의 인력 구조조정은 지난 2007년 회사가 LG생활건강에 인수된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수익성 개선을 위해 가격 인상도 단행했다. 지난해 9월 코카콜라음료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음료 가격을 평균 5% 인상했다. 코카콜라의 제품 가격 인상은 약 1년 8개월 만이다. 대표적으로 코카콜라 캔 가격은 기존 2,000원에서 2,100원으로 올랐다. 당시 회사 측은 수입 원·부자재 및 인건비, 제조 비용 상승 등 지속적인 원가 상승 압박으로 부득이하게 가격을 인상했다고 설명했지만, 결국 지난해 영업이익은 마이너스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