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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써니 이어 머티리얼즈도 이전 검토 한때 ‘제2의 본사’, 새로운 업무 방식 모델 높은 임대료에 고정비용 부담 가중

SK그룹 계열사들이 수년 간 입주해 있던 서울 종로구의 고급 오피스 빌딩인 그랑서울에서 속속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 그룹 차원에서 진행 중인 비용 절감 방침에 따라 비싼 임대료를 지급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SK 계열사, 그랑서울에서 수송스퀘어로 이전
20일 SK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그룹 내 교육을 총괄하는 조직인 마이써니(mySUNI) 소속 직원들은 올 상반기 중 그랑서울을 떠나 SK플랜트 본사가 위치한 종로구의 수송스퀘어 빌딩으로 옮길 채비를 하고 있다. 마이써니는 SK그룹의 여러 계열사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모인 조직으로 총 150여 명이 근무 중이다. 산하에 SK경영경제연구소와 교육·연수 프로그램을 만드는 SK아카데미, SK칼리지 등을 두고 있다. SK㈜ 머티리얼즈도 올해 안에 그랑서울에서 옮기기로 하고 새로운 본사 후보지를 물색 중이다. 지난해 말 매각 결정이 내려진 자회사 SK스페셜티의 서울 사무소도 곧 그랑서울을 떠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랑서울은 지난 2018년 SK그룹이 본사인 종로구 서린동 사옥을 리모델링하면서 여러 계열사가 입주했던 곳이다. 서린사옥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 가깝고, 2014년 준공된 최신식 건물이라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당시 SK E&S와 SK종합화학(현 SK지오센트릭), SK루브리컨츠(현 SK엔무브), SK머티리얼즈, SK스페셜티 등이 그랑서울로 옮겨 그랑서울은 한 때 ‘제2의 SK 본사’로 불리기도 했다.
그랑서울 내 SK 사무 공간은 미국 공유 사무실 위워크를 떠올리게 한다. SK그룹은 서린 사옥 전면 리모델링 전에 그랑서울 사무 공간을 먼저 공유 사무실로 개조했다. 본사 리모델링에 앞서 직원들이 새로운 공간 개념에 적응하도록 하고, 리모델링 기간에 개선점도 찾기 위해서였다. 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주창하는 ‘일하는 방식의 혁신’에 따른 것이었다. 2018년 입주 당시 최 회장은 “근무시간의 80% 이상을 칸막이에서 혼자 일하고 만나는 사람도 20명이 안 될 것인데 이렇게 일하면 새로운 시도, 비즈니스 모델 변화는 가능할 수 없다”며 변화를 주문했다.

'구조조정' SK, 운영 효율화 속도
SK 계열사와 조직들이 그랑서울을 떠나기로 한 것은 그룹 전체가 진행 중인 운영 개선(OI·Operation Improvement)과 비용 절감 기조 영향이다. SK그룹은 SK하이닉스 등 일부 계열사를 제외하고 전체적인 실적이 악화되면서 현재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그랑서울은 서울 시내에서 임대료가 높은 ‘프라임 오피스’ 중 하나다. 부동산 관리업체인 리맥스와이드파트너스에 따르면 2016년 그랑서울의 3.3제곱미터(㎡)당 임대료는 14만2,100원으로 국내 1위를 기록했다. 현재도 도심업무지구와 여의도업무지구, 강남업무지구를 통틀어 임대료가 가장 비싼 건물 중 하나로 꼽힌다.
SK그룹 관계자는 “서린 본사 외에도 서울 종로타워와 경기 판교의 SK디스커버리 사옥, 송도 SK바이오사이언스 사옥 등 여러 입주 후보지가 있다”며 “임대료 절감으로 상당한 운영 개선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싼 임대료에 밀려 짐싸는 기업들
경영 효율화를 위해 군살 줄이기에 나선 기업은 SK 만이 아니다. 최근 갈수록 치솟는 오피스 임대료에 본사를 이전하는 기업이 잇따르고 있다. 중구 청계천로 시그니처 빌딩에 있던 세븐일레븐 운영사 코리아세븐은 미니스톱 인수 이후 본사를 서울 강동구 이스트센트럴타워로 이전했다. CBD(도심업무지구) 보다 임대료가 저렴하고 롯데그룹 본사가 위치한 송파구와 가깝다는 점에서 코리아세븐의 새 둥지로 낙점됐다. 스타벅스코리아를 운영하는 SCK컴퍼니는 CBD를 벗어나 센터필드로 본사를 옮길 계획이다. SCK컴퍼니는 지난 2020년 5월부터 명동역 인근 스테이트타워남산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5년 만에 다른 곳으로 본사를 이전하게 됐다.
신세계그룹의 유통 계열사들도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SSG닷컴은 서울 강남 센터필드 입주 2년만에 본사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이전 후보지로는 서울 영등포 등이 거론된다. 종로 센트로폴리스에 있던 SSG닷컴은 2022년 7월 센터필드로 본사를 옮겼다. SSG닷컴의 자회사인 온라인 패션 플랫폼 W컨셉과 G마켓 등 신세계의 온라인 플랫폼 3사가 시너지를 내기 위한 의도였다. 그러나 영업 손실이 누적되면서 비용 절감을 위해 다시 본사 이전을 고려하게 됐다. 롯데그룹 유통 계열사인 롯데하이마트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본사에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후보지로 서울 서남부권 일대가 고려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서는 하나금융그룹이 대표적이다. 을지로입구역 인근에 위치한 하나금융그룹 본사는 금융사가 모여 있는 을지로 일대를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였다. 내년이 되면 하나금융그룹은 인천 청라국제도시로 본사 사옥을 옮긴다. ‘청라 헤드쿼터’라고 불리는 하나금융 청라 본사는 지하 7층, 지상 15층, 연면적 12만8,474.80㎡(약 3만9,000평) 규모로 2020년 2월부터 공사가 진행 중이다. 완공 후에는 하나금융지주와 함께 하나은행, 하나카드, 하나증권, 하나생명 등 6개 계열사가 한곳에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