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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실체·수익구조 불투명
비슷한 수법 돌려막기에 피해자 속출
법적 싸움에도 손해 배상은 제한적

다단계 금융사기(폰지사기) 의혹에 휩싸였던 가상자산 플랫폼 퀀트바인(QuantVine)이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돌연 종적을 감췄다. 과거 퀀트바인으로 수익을 올렸다는 인증 게시물이나 동영상 또한 대부분 삭제된 것으로 파악됐다. 퀀트바인은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원금과 수익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약속으로 투자자들을 유인했지만, 현재는 출금이 모두 막힌 상태다.
해외 본사·인기 키워드 공통점
13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업비트와 빗썸, 코인원, 코빗 등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이달 4일부터 순차적으로 퀀트바인으로 출금을 할 수 없도록 조치에 나섰다. 해당 사이트에 대한 불법 다단계 우려가 있어 사실관계가 파악되기 전까지 투자 보호 차원에서 선제적인 대응에 나선다는 게 이들 거래소의 일관된 설명이다. 이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퀀트바인은 12일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피해자들은 퀀트바인 운영자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해 법적 대응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퀀트바인이 잠적한 후에도 유사 업체들은 소셜미디어 등에 버젓이 홍보를 전개 중이다. 대부분 업체가 해외에 본사를 두고 인공지능(AI)을 이용한 가상자산 매매로 수익을 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영국판 퀀트바인, AI 양적거래, 암호화폐 채굴, 앱테크 등 간판은 다양하지만, 실체는 모두 폰지사기의 양상을 띤다. A사의 경우 하루 6%의 수익률을 보장한다며 네티즌을 유혹하고 있다. 투자자가 다른 투자자를 유치하면 레벨이 올라가고, 레벨이 올라가면 투자 가능 금액도 높아져 더 많은 수익을 챙기게 되는 구조다. 홍보 게시물에는 투자자를 자처하며 “퀀트바인과는 다른 안전한 투자처” 등 옹호하는 댓글도 여럿 달렸다.
생성형 AI 챗GPT 콘셉트를 차용한 B사도 폰지사기 가능성이 농후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B사에 3만원을 투자해 6개월 만에 300만원을 벌었다” 등 수익 인증 글이 단기간에 다수 게재됐다. 이 외에도 일본에 적을 두고 최근 한국에 진출했다는 C사, 가상자산 채굴을 통해 수익을 배분한다는 D사 등이 모두 폰지사기 의혹을 받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에 없던 새로운 수법까진 아니다”라면서도 “AI가 인기다 보니 AI 키워드를 활용한 사기 업체가 많아진 추세”라고 말했다.

약속한 수익 배분으로 반짝 신뢰도 쌓기
지난해 하반기 본격 이름을 알린 퀀트바인은 하루에 1.8~2.1%의 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간 수익률로 환산하면 13만%를 웃도는 수치다. 다만 투자는 테더(USDT)로만 받았다. USDT는 미국 달러와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으로 1USDT는 1달러와 같은 가치를 지닌다. 투자 한도는 100~300테더USDT로, 최대 투자 가능 금액은 우리 돈 기준 약 43만원이다. 피해자들은 투자 가능 금액이 정해져 있다는 말에 안심하고 투자한 것으로 전해진다. 혹여 사고가 발생해 투자금을 모두 잃어도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렇게 투자금을 끌어모은 퀀트바인은 초기에는 약속한 수익을 배분했고, 수익을 얻은 일부 투자자는 퀀트바인에 믿음을 갖고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수익금으로 재투자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만큼 손해 볼 것이 없다고 본 것이다. 퀀트바인은 여기에 또 다른 투자자를 유치하면 수익률을 높여주는 식으로 투자자 유치에 박차를 가했다. 전형적인 폰지사기 방식이다.
일부 투자자는 퀀드바인이 구글 플레이스토어 등에 정식 등록되지 않은 앱을 사용하는 점, 창업자나 운영진에 대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없는 점 등을 문제 삼았다. 운영 주체와 정확한 수익구조 등 어떤 것도 투명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공시 홈페이지 내 팀 소개에 사용된 이미지들은 무료 사진 공유 플랫폼 프리픽(Freepik)에 올라온 것으로 밝혀지며 의혹에 힘을 보탰다.
퀀트바인은 자동화된 퀀트 트레이딩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주요 전략은 가상자산 거래소 간 시세 차이를 이용한 차익 거래(Arbitrage Trading)로 AI 알고리즘이 시장 데이터를 분석하고, 최적의 매매 타이밍을 찾아 자동으로 거래를 진행한다는 설명이다. 투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인간의 감정’이 배제된 만큼 꾸준한 수익률이 가능하다고도 덧붙였다. 사무실 등 운영진의 실체에 대한 질문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본사가 있어 미국 금융 당국으로부터 영업 허가를 받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확한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파악된 바 없다.
책임 주체 특정해도 손해 배상 힘들어
가상자산을 둘러싼 대규모 피해 사건은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일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지난해 말 파산한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업체 하루인베스트를 꼽을 수 있다. 해당 업체는 2020년 3월부터 2023년 6월까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테더 등 코인을 예치하면 원금을 보장하고 최고 수익을 지급할 것처럼 투자자들을 속여 자금을 끌어모았고, 이후 돌연 출금을 중단한 채 소통을 끊었다.
해당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투자자는 1만6,000여 명에 달하며, 피해 규모는 1조4,000억원대로 집계됐다. 서울회생법원은 지난해 11월 하루인베스트 운영사인 하루매니지먼트리미티드에 파산을 선고했다. 업체는 영국령인 버진아일랜드에 설립된 법인이라는 점을 강조했으나, 재판부는 국내에 사무실을 두고 운영한 점 등을 감안해 국내 법원에 관할권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루인베스트 파산 선고 직전 피해자들은 투자금을 돌려받기 위해 형사 고소와 함께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지만, 법원은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파산 선고로 피해 복구가 가능할 것이란 추측도 나왔으나, 경영진이 보유한 자산이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한 데다 가상자산의 특성상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실질적 배상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