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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GWh 규모 배터리 신규 공급 합의 2028년부터 납품, 전기차 30만 대 분량 '포드 합작' 켄터키 1공장 사용 유력
SK온이 일본 완성차 업체 닛산 미국 공장에 2조5,000억원 규모의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합의했다. 전기차 판매 둔화로 적자를 내고 있는 SK온이 오랜만에 수주 잭팟을 터뜨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SK온, 닛산과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 논의
25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SK온은 전날 닛산 미국 자동차 생산 공장에 2028년부터 20GWh 규모의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합의하고 구체적인 계약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20GWh는 전기차 약 30만 대에 탑재되는 규모다. 최근 배터리 셀 가격으로 계산하면 2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SK온과 닛산은 지난해 3월 배터리 공급에 관한 업무협약(MOU)을 맺고 협상 조건을 논의해 왔다. MOU에 앞서 같은 해 2월 닛산 관계자가 SK온 서산공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닛산 관계자들은 SK온이 생산 중인 배터리 공정을 살펴보고 수율을 확인하는 등 현장 전반을 시찰한 뒤 SK온 임원진과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 공급될 전기차용 배터리는 삼원계(NCM) 리튬이온 배터리로, 북미향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해당 배터리가 이용될 전망이다. SK온은 이르면 2026년께 닛산에 전기차용 배터리를 공급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전기차 시장 수요 감소로 인한 속도 조절 여파로 공급 시기도 다소 낮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공급가액 역시 예상보다 낮아질 수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설명했다.
적자·수주 가뭄 속 안정적 공급처 확보
최근 혼다와 합병을 발표한 닛산은 2030년까지 북미 시장에서 60GWh 규모 전기차 배터리를 확보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힌 바 있다. 상대적으로 전기차 시장 진출이 늦은 만큼 공격적으로 북미 시장 공략에 나설 방침이었다.
하지만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에 대규모 기업 합병 이슈까지 겹치며 닛산의 전기차 전략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닛산은 우선 독자적으로 전기차 사업을 전개해 시장 확대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나오는 2030년까지는 따로 전기차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양사가 합병한 이후 현대자동차·기아처럼 동일한 플랫폼으로 전기차를 제조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이렇게 되면 통합 회사의 배터리 공급망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 닛산은 SK온으로부터 공급받고, 혼다는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에 합작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SK온이 닛산과의 계약을 따내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하게 됐다.
SK온, 북미 생산 공장 물색
닛산 배터리를 만드는 생산지는 확정되지 않았으나 현재 가능성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곳은 켄터키 1공장이다. SK온과 포드의 합작으로 세워진 이 곳은 연간 배터리 생산능력이 37기가와트시(GWh)로, 내년 가동이 시작된다. 켄터키 1공장은 총 16개 배터리 생산라인으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 일부를 닛산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구상은 SK온이 켄터키 공장 가동률을 높이는 동시에 신규 투자에 따른 재무 부담을 낮추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SK온은 지난 2021년 10월 출범 후 11분기 연속 적자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배터리 공장을 신설할 필요 없이 비용을 최소화하는 묘책이 될 수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포드가 전기차 수요 둔화로 켄터키 공장을 100% 풀가동하지 않으려는 계획으로 알고 있다”며 “SK온이 켄터키 공장 유휴 라인에서 닛산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다면 가동률을 끌어올리는 효과와 함께 새로운 생산 기지를 지을 필요도 없는 만큼 최적의 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포드와 합작으로 세운 곳이기 때문에 승인이 걸림돌이다. 켄터키 합작사 지분은 SK온과 포드가 절반씩 보유하고 있어 공장 라인 전환을 위해서는 포드 승인이 필수다. SK온은 현재 포드와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협의가 끝나는 대로 닛산 배터리 공급 계약 체결을 공식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포드와의 합작 공장 활용안이 무산될 경우에는 SK온의 미국 단독 공장을 활용하는 방안이 추진될 전망이다. 폭스바겐용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조지아주 1공장 라인을 닛산용으로 전환하는 시나리오다. 양사는 미국에 합작법인(JV) 설립도 논의했지만 SK온과 닛산 모두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