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 ‘가짜뉴스와의 전쟁’ 선언, 징벌적 손배 상한 없는 강공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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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대통령 “가짜뉴스 악용, 배상 책임 강화해야" 허위 조작 보도에 곱절 배상, 상한 규정 없어 더 센 언론중재법 개정안 ‘윤곽’

취임 100일을 맞은 이재명 대통령이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공식화했다.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해 배상액을 곱절 이상 물리되 상한선을 두지 않는 강력한 규제안을 언급하며, 언론사뿐만 아니라 유튜브 같은 온라인 플랫폼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민주당이 추진 중인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힘을 실어준 이번 발언은 표현의 자유와 민주적 견제 장치에 대한 균열을 예고한는 평가다.
이 대통령 “가짜뉴스가 아들 인생 망쳐”
11일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언론은 민주주의 사회의 제4부라고 불린다. 그래서 헌법에서까지 특별하고 엄격하게 보호하고 있다"며 "그런데 표현의 자유와 특별한 보호를 악용해 특권적 지위를 누리려는 아주 극히 소수의 사람과 집단이 있다. 이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에서 대선이 조작됐다는 음모론을 보도한 매체가 6,700만 달러(약 930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배상금을 물게 된 것을 언급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그렇게 헌법적 차원에서 아주 강력하게 보호하는 미국도 명백한 허위 가짜 뉴스에 대해서는 아주 고액의 배상을 한다"며 "특별한 보호를 받는 만큼, 똑같은 양의 책임이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저도 사실 엄청나게 많이 당했다"며 "우리 아들이 멀쩡하게 직장 다니고 있는데, 무슨 화천대유 취직했다고 대서특필하는 바람에 유명해져서 아직까지도 직장을 못 얻고 있다. 나한테 물어봤으면 아니라고 했을 텐데, 물어보지도 않고 멋대로 썼다. 일부러 그런 것"이라며 "나와 대장동 관계에 있는 것처럼 아들이 회사에 취직했다고 이름까지 써서 아주 그냥 인생을 망쳐놨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언론뿐만 아니라,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유튜브도 함께 지적했다. 그는 "일부러 가짜뉴스로 관심 끈 다음 슈퍼챗(유료 후원) 받고, 광고 조회수 올리면서 돈 버는 거 있지 않나. 그걸 가만히 놔둬야 하냐"며 "당에 언론만을 타깃으로 하지 말고, 언론이라고 특정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있다.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되지 않냐"고 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중대한 과실을 징벌적 배상할 일은 아니다. 악의라는 조건을 엄격하게 하되, 배상액은 아주 크게 하자. 고의로 나쁜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그러는 거는 못 하게 하자"며 "형사처벌보다는 돈을 물으라는 얘기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게 제 생각이다. 제가 입법하는 건 아니니까, 의견만 당에 그렇게 주고 있다. 중과실은 대상으로 하지 말고 명백한 사안으로 제한하고, 언론을 타깃으로 하지 말고 일반적(누구나) 배상을 하게 하자는 것인데, 매우 합리적이지 않냐"고 전했다.

가짜뉴스 퍼뜨리면 ‘징벌적 배상’, 유튜브도 예외 아냐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에 힘을 실어주는 성격으로, 여당은 추석 전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징벌적 손해배상이다. 허위조작 보도로 손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액의 배액(倍額·곱절)으로 배상 금액을 결정하는 ‘배액 손해배상’ 제도로, 고의·중과실 여부나 직접·인용 보도 여부 등을 고려해 차등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별도의 상한 규정도 두지 않는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하는 다른 법률의 경우 피해액의 최대 3~5배 수준으로 배상 규모를 정하고 있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최대 수십배에 이르는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쪽으로 개정 가닥을 잡은 것으로 파악됐다.
인용·매개에 대해서도 최소 200만~3,000만원의 배상액이 검토되고 있다. 이에 더해 보도, 인용, 매개의 파급력에 따라 최대 3배(매체력을 별도의 할증 요소로 분리할 경우 최대 4배)까지 추가 할증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도 더해졌다. 이럴 경우 해당 언론사는 기본 손해액의 최대 15~20배에 이르는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할 수 있다.
이런 규제 내용은 유튜브에도 적용된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유튜브를 포함하는 방안과 정보통신망법을 동시에 개정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 유튜브를 통한 뉴스 소비가 늘어난 데 따른 조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23년 발표한 '허위정보 우려 상승 및 유튜브 뉴스 이용 증가'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 53%는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소비한다고 응답했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연구에 참여한 46개국 평균 30%보다 무려 23%포인트(p) 높은 숫자다.
그런데도 유튜브 규제는 유독 낮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 6월까지 유튜브, 디시인사이드, 일간베스트, 워마드, 네이버, 투디갤, 엑스(구 트위터), 에펨코리아, 카카오 등 총 9개 온라인 플랫폼에 게재된 '차별 및 혐오 정보'에 대한 시정요구는 4,137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유튜브 콘텐츠에 대한 시정요구는 단 3건(0.07%) 수준이다. 그나마 모두 2022년에 이뤄졌고 이후로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차별 및 혐오 정보는 성별, 지역, 인종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적 주장을 뜻한다. 단 방심위 자료에는 어떤 내용이 시정요구를 받았는지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마저도 혐오·차별이 아닌 가짜뉴스 규제는 법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유튜브 등의 플랫폼이 활성화되기 전인 2010년, 헌법재판소는 '전기통신기본법 47조 제1항'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 조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허위사실 유포나 가짜뉴스 콘텐츠 자체에 대한 규제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방심위 설명이다.
“피해 구제 vs 표현의 자유 위축” 이견
다만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시민단체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비판 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헌법이 보장한 언론 자유라는 관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는 견해도 나온다. 지금도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는 언론중재위원회나 방심위 제재, 민사상 손해배상 같은 피해 구제 절차가 마련돼 있는데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도입하면 고위 공직자 비판 보도가 위축되고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언론계에서도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 구제책 확대 필요에는 공감하나, 자칫 언론중재법이 언론을 억제하고 위축시킬 수 있다며 법 추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민주당에 전달했다. 특히 일부 고위공직자가 자신을 향한 비판적 보도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경우 언론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고위공직자가 손해배상 소송을 남발할 경우 기자 개인을 비롯해 언론사의 취재·보도행위에 대해 심리적인 제약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피해자들은 단순 정정 보도로는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기 어렵다며 실질적인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민주당 내 언론개혁특별위원장인 최민희 의원도 "2005년 언론중재 및 피해 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정 이래 법안이 여러 차례 개정됐지만 20년이 지나도록 피해자 구제 장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 구제 절차는 늦고, 배상액은 비현실적이며 모든 책임을 국민에 떠넘기는 비정상적 구조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언론의 자유와 피해 구제는 결코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언론개혁특위 부위원장인 김현 의원도 언론중재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와 악의적 왜곡으로 국민이 본 피해는 막대했다"며 "언론중재법 개정의 가장 큰 목적은 피해자 보호"임을 강조했다. 언론인 출신이자 언론개혁특위 간사인 노종면 의원도 "언론중재법 개정은 언론 전체를 적대시해 손보려는 것이 아닌, 잘못된 보도로 피해를 본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한 법안"임을 거듭 강조했다. 복수의 언론학, 법학 교수들은 “플랫폼을 통한 허위 정보 확산 속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며 “악의적인 허위 보도에 한해 엄격한 요건과 기준을 마련해야 표현의 자유와 피해 구제의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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