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력시장 천연가스 설비 급증, 글로벌 LNG 패권 가속
입력
수정
재생에너지 지원 축소 정책 가속
전력 수요 늘며 천연가스 수요도↑
러시아 공백 메우며 에너지 패권 강화

미국 전력 개발업체들이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를 줄이고, 천연가스 설비에 집중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전력 수요 증가로 유연하고 안정적인 발전원의 중요성이 높아진 데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대폭 삭감한 정책 기조가 빠르게 시장에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상대적으로 저렴, 안정적 공급원으로 재부상
9일(이하 현지시각) 미국의 에너지 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는 “미국 전력 시장에서 천연가스가 다시 주요 에너지원으로 부상하며 ‘가스 르네상스’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에서 건설 중이거나 사전 건설 단계에 있는 새로운 가스 화력 발전 용량은 114기가와트(GW)에 달한다. 이는 1년 전과 비교해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로, 오일프라이스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가진 ‘간헐적 공급’의 한계를 극복할 유연하고 안정적인 발전원이 절실해진 데 따른 결과”라고 분석했다.
로이터통신 역시 이에 앞선 지난 5일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로이터는 글로벌에너지모니터 집계를 인용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1만6,300메가와트(MW) 규모의 천연가스 설비가 착공됐고, 이 외에도 9만8,000MW 규모의 설비가 건설 준비 단계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정부가 태양광과 풍력 발전소에 제공하는 보조금 및 세제 혜택을 대폭 축소한 여파가 관련 프로젝트 위축을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천연가스 설비 투자가 대폭 확대되며 미국 전력 발전의 중심축 또한 천연가스 중심으로 재편될 공산이 크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로이터는 “현재 건설 또는 사전 착공 단계인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천연가스 설비가 미국 전력 발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4%에 이를 것”이라며 “석탄과 풍력, 태양광이 각각 미국 전체 발전량의 약 15%, 12%, 10%를 차지한 것과 대비되는 흐름”이라고 짚었다.
전력 피크 시 천연가스 의존 심화
이 같은 공급 확대는 폭발적인 수요 증가세에서 비롯됐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최신 단기 에너지 전망에서 올해 천연가스 소비량이 일평균 91억4,000만 입방피트(bcf/d)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난해 90억5,000만 bcf/d보다 증가한 수치다. 특히 올 1월에는 한파와 난방 수요 증가로 소비량이 126억8,000만 bcf/d에 달해 전년 동기 대비 5%가량 늘었다. EIA는 “천연가스가 가격 경쟁력과 공급 유연성을 앞세워 여전히 전력 생산의 핵심 연료로 자리 잡는 모양새”라고 진단했다.
다만 시장 가격은 공급 확대와 높은 재고 부담으로 약세를 보인다. 지난달 25일 기준 헨리 허브 천연가스 가격은 MMBtu(Milion British thermal units, 1MMBtu=293kWh)당 2.677달러로 전 거래일 대비 0.70% 하락했다. 최신 EIA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달 미국 가스 재고는 3,199억 bcf/d로 지난 5년 평균보다 약 6% 높았으며, 주간 평균 건조가스 생산량 역시 107억 4,000만 bcf/d로 전년 대비 증가했다.
이 같은 단기 가격 약세에도 불구하고 EIA는 미국 천연가스 시장이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확대를 본격화하면서 중장기적 성장 기반을 다질 것으로 기대했다. EIA는 “연내 다수의 액화 플랜트가 신규 가동을 시작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미국은 세계 최대 LNG 수출국으로서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전망”이라면서 “아시아와 유럽 수요 역시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서 안정적 공급처 확보를 위해 미국산 LNG로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짚었다.

러시아 제재 틈타 유럽으로 시장 확대
여기에 천연가스 주요 수출국 중 하나인 러시아를 향한 서방의 제재가 강화되면서 미국산 가스에 대한 수요는 더 증가할 전망이다. 지난 5월 유럽연합(EU)은 오는 2027년까지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댄 요르겐센 EU 에너지 집행위원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오늘 우리는 러시아에 매우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다”면서 “이제 우리는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로 사용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일부 국가가 제재의 실효성을 저해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EU는 러시아산 가스 비중을 2022년 45%에서 2024년 18%까지 줄였다고 밝혔지만, 같은 기간 프랑스는 오히려 러시아산 LNG 수입을 81% 늘려 21억 달러(약 3조원) 규모의 외화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헝가리 역시 러시아와의 긴밀한 외교 관계 탓에 추가 제재에 소극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U 전반에선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 러시아 의존도를 완전히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미국산 LNG는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이미 미국은 지난해 EU가 수입하는 LNG의 45.3%를 공급하며 이미 최대 공급국 자리에 올랐으며, EU 역시 미국과의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협상 카드로 LNG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마로스 세프코비치 EU 무역집행위원은 “LNG와 대두 수입을 통해 미-EU 통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언급, 에너지와 통상이 맞물린 전략적 성격을 드러냈다. 이는 미국 입장에서도 자국 에너지 산업 확대와 글로벌 점유율 상승을 동시에 가능케 하는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 Previous [딥테크] 인공지능은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킬 것인가?
- Next [딥테크] 인공지능이 바꾸는 직장의 양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