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추격에 LCD 왕좌 내준 K-디스플레이, 철옹성 OLED마저 위태
입력
수정
삼성·LG가 주도한 OLED 시장 중국 디스플레이 맹추격 '비상' 8.6세대 대규모 투자로 시장 선점 속도

정부의 막대한 지원과 넓은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장악한 중국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한국을 추격하고 있다. 한때 글로벌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했던 K-디스플레이는 중국에 LCD 시장을 내주면서 2021년부터 세계 1위에서 내려왔다. 중국의 저가공세에 밀린 삼성디스플레이는 결국 2022년 LCD 사업 철수를 선언하고 OLED 기술 개발에 자원을 집중해 왔지만, 이제는 OLED 시장마저 중국의 위협을 받는 처지가 됐다.
中 BOE·비전옥스·CSOT, 세계 OLED 점유율 38%
9일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 리서치 등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중국 BOE와 비전옥스, CSOT는 출하량 기준 세계 OLED 시장의 38%를 점유했다. 전 분기 대비 약 3%포인트(P)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BOE는 점유율 15%로 세계 2위에 자리했고, 비전옥스는 12%로 3위, CSOT는 9%로 5위에 위치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37%로 1위, LG디스플레이는 9%로 CSOT와 유사한 점유율을 기록했다. 에버디스플레이와 티안마 등 다른 중국 기업들의 점유율을 전부 합칠 경우 중국의 시장 점유율은 5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중국은 강력한 내수 시장과 정부 지원금에 힘입어 빠르게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중국 디스플레이 산업의 공급망이 성숙해지고 원가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중국산 OLED 패널이 세계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최신 디스플레이 생산 능력 보고서를 보면, 중국의 디스플레이 생산 능력은 2023년 전세계의 68%에서 2028년 75%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스마트폰 OLED 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 확대가 두드러진다. 경기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첨단산업의 한·중 경쟁력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중저가 스마트폰, 웨어러블 기기, 자동차에 들어가는 중소형 OLED 시장에 속속 진입해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때 중국 OLED는 출하량 기준으로 한국을 넘어서기도 했다. 2022년만 해도 한국은 75.3% 점유율로 중국(24.4%)을 크게 앞섰지만 불과 2년 만인 2024년 양국의 격차는 8.9%p 차이로 줄어들었다. 화웨이, 샤오미 같은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자국산 중소형 OLED를 우선 채택한 영향이 컸다.
현재는 다시 한국이 1위를 탈환했지만, 중국 OLED의 기세는 여전하다. 작년 상반기 중국 시장 내 중국산 스마트폰 OLED의 비율은 86.1%에 달한다. ‘타도 한국’을 목표로 오랜 기간 막대한 투자를 진행한 결과 중국산 중소형 OLED의 품질도 크게 개선됐다. 부품사 선정에 까다롭기로 소문난 애플도 BOE의 패널을 받아 교체용 디스플레이와 중저가 모델에 점차 적용하고 있다. 차량용 OLED 부문에서도 중국 기업들의 약진이 가파르다. 전체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112% 큰 폭으로 성장했지만, 한국은 중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과 자국산 자동차 소비 추세로 현지 디스플레이 수요를 높인 탓에 전년 대비 5.5%포인트 감소한 76.1% 점유율에 머물렀다.

한국 LCD 무너뜨린 중국, 동일 전략 OLED에도 활용
중국의 공격적인 설비 투자 역시 시장 재편을 가속하는 요인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의하면 중국의 OLED 설비투자 비중은 2027년 83%에 달해 한국(13%)의 6배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요시오 타무라 카운터포인트리서치 부사장은 "중국 기업이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을 플렉서블 OLED 등 첨단 OLED 기술 개발에 사용하고 있다"며 "LTPO(저온다결정산화물) OLED를 사용하는 첨단 RGB OLED에 대한 설비 투자가 탄력받고 있다"고 밝혔다.
LTPO OLED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분야다. 애플이 차세대 플래그십 아이폰 전 모델(일반·에어·프로·프로맥스)에 사용하는 LTPO OLED 패널 모든 물량을 국내 기업으로부터 조달받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패널은 기존 패널보다 소비 전력이 10~15% 낮아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채택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 BOE가 생산한 LTPO OLED는 애플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기술 격차가 좁혀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LTPO OLED에서는 고전하고 있지만 프리미엄 OLED에서 중소형과 대형을 가리지 않고 빠르게 쫓아오고 있다"며 "만약 국내 기업이 기술 우위를 뺏긴다면 한순간에 시장을 내줄 수 있다. 특히 중국은 애국 소비(궈차오)를 기반으로 경험까지 쌓고 있기 때문에 더욱 위협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과거 중국이 10.5세대 LCD 대규모 투자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시장을 장악했던 것처럼, 현재는 8.6세대 OLED 투자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8.6세대 시설 투자도 본격화, 6세대 생산체제 유지 LGD와 대조
실제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지난해부터 8.6세대 IT용 OLED 설비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다. BOE의 경우 8.6세대 IT OLED에 내년까지 80억 달러(약 11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생산능력은 월 3만2,000장 수준으로, 이 중 절반 규모의 양산라인이 지난해 상반기부터 구축되기 시작했다. 나머지 절반에 대한 설비 발주는 올 하반기 혹은 내년 초께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비전옥스도 2027년까지 8.6세대 IT OLED 양산라인에 80억 달러가량을 투입한다. 월 3만2,000장 규모의 총 투자 계획 중 4분의 1인 8,000장 수준의 양산라인 투자가 이르면 연내 집행될 예정이다.
중국 기업들이 8.6세대 설비 투자에 속도를 내는 것은 빠르게 수요가 늘고 있는 태블릿과 노트북, 게이밍용 OLED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8.6세대 OLED는 현재 6세대 OLED와 비교해 약 2.2배 큰 생산 원판이 특징이다. 더 커진 원판에서 더 많은 패널을 생산할 수 있어 생산 효율이 증가하고, OLED의 약점인 제품 가격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어 OLED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불린다.
특히 중국 업체들의 투자 확대 움직임은 재무 악화로 8.6세대 OLED 투자를 유보한 채 기존 6세대 OLED 생산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LG디스플레이와 대조된다. 이에 업계에서는 LG디스플레이가 자칫 차세대 IT OLED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LG디스플레이는 현재 6세대 OLED 전환에서도 경쟁사와 비교해 늦은 진입으로 경쟁에서 밀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BOE가 먼저 양산 체제를 구축하는 만큼 추후 고객사 물량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아직 TV에 탑재되는 대형 OLED 분야에선 LG디스플레이가 사실상 시장을 과점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방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경기연구원은 “BOE와 한국 OLED 기술력 격차가 1년 미만이라는 평가가 제기된다”며 “OLED 기술 격차를 벌리지 못하면 중국에 완전히 넘겨줬던 LCD의 전철을 반복할 수 있다”고 했다. 한 디스플레이 업체 임원도 “중국 기업들이 막대한 정부 지원금을 바탕으로 추격하면 대형 OLED 분야의 우위도 위태로울 수 있다”며 “쿠르노 균형 관점에서 볼 때, 대규모 설비 증설로 인한 생산량 급증은 가격 결정력을 중국으로 이전시키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