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빠졌나" 내리막길 걷는 피그마 주가, IPO 준비하던 기술주들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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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직후 '반짝' 뛰었던 피그마 주가, 줄곧 하향곡선 "대기업 경쟁사에 비해 프리미엄 엄청나" 월가의 지적 '제2의 피그마' 노리던 스타트업들, 상장 행보 멈춰설까

미국 디자인 소프트웨어 기업 피그마의 주가가 급락했다.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과도한 기대를 품었던 투자자들이 줄줄이 이탈, 시장에 물량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월가에서도 피그마의 주가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피그마, 2분기 실적 발표 후 급락
3일(이하 현지시간) 피그마는 장 마감 후 지난 2분기에 2억4,960만 달러(약 3,48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1% 증가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주당순이익(EPS)도 -4.39달러(약 6,100원)에서 0.04달러(약 55원)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전반적으로 기대치에 부합하거나 살짝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둔 것이다. 글로벌 증권가의 2분기 컨센서스(추정치 평균)는 매출 2억5,000만달러(약 3,477억2,500만원), 주당 순이익 0.09달러(약 125원)였다. 회사가 실적과 함께 공개한 3분기 매출 전망치(2억6,300~2억6,500만달러)도 월가 예상(2억6,200만달러)와 유사했다.
시장은 기대치를 뛰어넘지 못한 실적에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이날 애프터마켓에서 피그마 주가는 14.22% 급락했다. 실적에 대한 실망에 더해 4일부터 일부 임직원들이 보유한 주식 중 25%의 보호예수가 풀린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투자자가 대거 이탈한 것이다. 이에 따라 피그마의 주가 반등 가능성은 한층 희미해졌다. 상장 첫날(7월 31일) 개장가에서 250% 급등한 피그마 주가는 지난달 1일 고점(122달러)에서 약 한 달 만에 41% 하락한 상태다. 3일 애프터마켓 가격을 고려하면 하락 폭은 52.10%까지 확대된다.

월가서도 부정적 전망 속출
시장의 전망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브레드 실즈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애널리스트는 "피그마는 대기업 경쟁사에 비해 엄청난 프리미엄에 거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때 피그마 인수를 추진했던 경쟁사 어도비는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배율(PER)이 17배에 불과한 반면, 피그마의 PER은 200배에 육박한다.
아울러 실즈 애널리스트는 향후 경쟁 심화로 인해 피그마의 시장 점유율이 잠식되거나 사업이 교란될 수 있으며, 인공지능(AI)의 발전이 피그마 매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그마는 디자이너들이 웹에서 협업해 UI/UX를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클라우드 기반 디자인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실시간 공동 작업 기능 덕분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원격 근무 환경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해 왔다. 하지만 AI 기술 발전 이후 디자이너들의 피그마 이용 수요가 줄어 핵심 경쟁력을 잃을 위기에 빠진 상태다.
결국 피그마가 AI를 자사의 제품에 어떻게 활용할지가 관건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웰스파고의 마이클 터린 애널리스트는 "피그마가 AI 도입 흐름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가 회사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며 "아이디어 구상과 디자인, 코드 작성까지 한 번에 이어지는 올인원 플랫폼이 될 수도 있지만, AI 자동화로 디자이너 수요 자체가 줄어들어 피그마의 인원수 기준 구독 모델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실속 없는 기술주는 살아남지 못한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피그마 외에도 최근 상장한 기술 기업들의 주가가 줄줄이 미끄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인프라 기업 코어위브의 경우 상장 초기였던 올해 6월 시장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후 주가가 하락하면서 고점 대비 수익률이 축소된 상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의 주가도 마찬가지 흐름을 보였다. 서클은 6월 뉴욕증시 상장 후 첫 거래일에 168% 급등했고, 시가총액도 600억 달러(약 86조4,000억원)를 돌파했다. 그러나 현재 주가는 최고점 대비 절반 가까이 하락한 상태다.
기술주들이 나란히 증시에서 힘을 잃은 가운데, 후속 상장을 노리고 있던 스타트업들은 일제히 '비상'이 걸렸다. 피그마 상장 직후 다수의 스타트업은 '제2의 피그마'를 꿈꾸며 상장 시점 조율에 박차를 가해 왔다. 지난 8월 초 의료 기술 스타트업 하트플로우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S-1 문서를 제출하며 상장 준비를 공식화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호주 그래픽 툴 플랫폼 캔바 역시 같은 달 일부 투자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중장기적 상장 계획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스트라이프, 미드저니, 앤듀릴, 레볼루트, 모티브 등이 후속 IPO 가능성이 높은 기업으로 꼽혔다.
하지만 피그마를 비롯해 최근 상장한 기업들의 주가가 단기간 내 급락하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들 기업의 사례가 실적 기반이 약한 기술 스타트업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 탓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탄탄한 실적을 갖추지 못한 기업이 무작정 상장을 감행하면 주가는 큰 폭으로 조정될 수밖에 없다"며 "피그마의 사례는 뚜렷한 수익 모델이나 안정적인 실적을 확보하지 못해 고평가 논란에 시달리는 상당수 기술 스타트업에 있어 유의미한 '경고'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