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AI 번역 보편화, 단순 일자리 줄고 전문 영역 수요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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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번역 확산으로 단순 번역 일자리 줄고, 전체 고용 구조 재편 자동화 확산으로 범용 시장 가격 하락으로 소득 격차 심화 언어 교육, 기술과의 결합으로 전문성 강화 필요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Research Memo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AI) 번역은 노동시장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단순 번역 업무의 수요는 줄고 있지만, 전문 지식을 요구하는 고부가가치 영역은 여전히 유지된다. 신경망 기계번역(Neural Machine Translation, NMT)이 2010년대 이후 빠르게 보급되면서 번역가 고용 양상도 달라졌다. 연구에 따르면 기계번역 사용률이 1% 증가할 때마다 번역가 고용 증가율은 0.7% 낮아졌다. 이에 따라 2010~2023년 사이 2만 8,000개의 신규 일자리가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영어-스페인어 같은 널리 쓰이는 언어 조합에서도 외국어 능력을 요구하는 구인 공고는 많이 감소했다.
이는 단순한 일자리 소멸이 아니라 직업 구조가 점차 재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교육은 이제 번역을 데이터, 법률, 보건 등 다른 분야와 결합해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정책 역시 학생들이 기계와 경쟁하기보다 기계와 협력해 결과를 관리할 수 있도록 설계될 필요가 있다.

기술 확산과 새로운 수요
기술은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억양과 음성을 살려 실시간으로 통역하는 시스템이 등장했고,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국제 번역 평가에서 기존 기계번역을 능가하는 성과를 보였다. 다만 현장 적용 속도는 제각각이다. 자동화가 먼저 자리 잡은 분야에서는 번역가의 소득이 이미 줄었고, 인간 번역을 완전히 대체하기 전부터 시장에서 가격 압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번역 일자리 감소가 곧 직업 가치의 하락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기계가 기본적인 번역을 저비용으로 제공하더라도, 오류가 치명적인 영역에서는 인간 번역가의 수요가 여전히 크다. 법률 문서, 의료 기록, 대규모 데이터 검증이 대표적 사례다.
산업 재편과 노동시장 통계
상업 번역 산업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기계번역 후편집(Machine Translation Post-Editing, MTPE)은 다수 업체에서 기본 생산 방식으로 정착했고, 국제 번역 평가대회(Workshop on Machine Translation, WMT)에서는 대규모 언어모델이 기존 시스템과 경쟁하고 있다. 메타의 심리스(Seamless) 프로젝트는 지연 없는 음성 번역을 대중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현재 번역 과정은 기계가 초안을 작성하고, 인간이 이를 검증해 법률·재정·의료 등 오류가 치명적인 영역에서 정확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노동시장 통계는 산업의 변화를 동시에 보여준다. 출판업계 조사와 노조 설문에서는 번역가의 3분의 1 이상이 생성형 AI 확산으로 일감이나 수입을 줄였다고 답했다. 반면 미국 노동통계국은 2024년 통역·번역가의 연간 중위 임금을 약 5만9천 달러(약 8,100만 원)로 집계했고, 2034년까지 고용이 2%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성장률은 낮지만 산업이 붕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원, 병원, 정부 등 전문·공공 부문의 수요가 고용을 떠받치고 있는 반면, 범용 번역 서비스 시장에서는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 연도(X축), Translator 검색 지수(좌측 Y축, 파란색 선), Google Translate 검색 지수(우측 Y축, 빨간색 선)/전통적 번역사에 대한 검색 수요는 감소했지만, 구글 번역과 같은 자동 번역 도구는 대중적 사용 기반을 확고히 구축한 것으로 나타난다.
가격 구조 변화
자동화가 번역 단가에 미치는 영향은 뚜렷하다. 프리랜서 번역가는 시간당 약 20달러(약 2만7천 원), 단어당 0.10~0.12달러(약 135~160원)를 받지만, 일부 플랫폼에서는 단가가 단어당 0.06달러(약 80원)까지 떨어졌다. 기계번역 후편집은 일반 번역의 절반 수준에서 가격이 책정된다.
인간 번역가는 시간당 400~600단어를 처리하고, 후편집은 800~1,000단어까지 가능하다. 이 경우 범용 시장에서는 시간당 수입이 생활임금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법률·의료·기술 분야처럼 오류의 대가가 큰 영역은 여전히 높은 단가가 유지된다. 즉, 고객 유형과 분야별 위험 부담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고, 자동화는 품질 허용 범위가 넓은 영역일수록 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언어 학습의 변화
언어 학습 수요는 지역별로 다른 흐름을 보인다. 미국에서는 2016~2021년 고등교육 단계 외국어 수강 인원이 16% 넘게 줄었고, 2009년과 비교하면 30% 가까이 감소했다. 이에 비해 유럽에서는 2023년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의 60%가 두 개 이상의 외국어를 배우고 있다. 유럽은 다국적 협력과 인적 이동이 활발한 환경이라는 인식 속에서 언어 교육의 필요성이 유지되고 있으나, 미국은 기계번역 확산으로 언어 학습 필요성이 약화됐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교육의 대응 과제
기계번역이 일상화된 환경에서 교육은 핵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번역 품질을 평가하고 오류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후편집은 단순 보조가 아니라 전문 기술로 자리매김해야 하며, 체계적 훈련을 통해 품질 편차를 줄이고 판단력을 높여야 한다. 교육과정 초반부터 법률·생명과학 등과 결합한 전문화를 도입하고, 용어 관리와 규제 이해, 실제 산업 연계 프로젝트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초중등 교육에서는 기계번역을 학습 도구로 활용해 학생들이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통해 정보 검증과 미디어 리터러시를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은 언제 전문 번역이 필요한지, 언제 기계번역이나 후편집만으로 충분한지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이는 언어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고, 교육 현장이 산업 수요와 맞물려 작동하도록 돕는다.
인간이 맡는 영역
AI 번역이 언어 직무를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는 과장돼 있다. 기술 성능은 빠르게 향상되고 있지만 현장 도입 속도에는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번역 시스템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판단과 오류 감지 능력은 여전히 필요하다. 결국 기계가 넘지 못하는 영역은 남아 있으며, 법률·의료·데이터 관리처럼 정확성과 책임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인간 번역가의 역할은 지속될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Learning in the Age of Good-Enough Translation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