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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사는 미확정, ‘AMD용’ 추정
공급망+기술력 동시 확보 전략 가동
SK하이닉스 독주 체재 재편 가능성

삼성전자가 올 하반기 HBM4 양산에 돌입하며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내 본격적인 반격에 나선다. 공급처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AMD가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반면 경쟁사 SK하이닉스는 이미 세계 최초로 HBM4 12단 제품의 공급 계약을 마친 상태며, 후발 주자인 마이크론까지 가세하면서 시장 경쟁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선두인 SK하이닉스가 TSMC 의존 구조와 원가 부담이라는 이중 과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자체 공정 강화와 고객사 다변화로 맞대응을 예고했다.
기술 개발 속도 빠르지만 공급처 확보 미지수
23일(현지시각) IT 전문매체 샘모바일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부터 6세대 HBM4 생산에 나선다. 해당 모델은 데이터 전송 통로가 HBM3E보다 두 배 많은 2,048개로 설계돼 초당 최대 2테라바이트(TB)의 대역폭을 지원하며, 기존보다 한 세대 앞선 1c D램이 적용되는 게 특징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글로벌 전략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HBM4 생산 계획과 반도체 시장 점유율 회복 방안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양산 제품의 최종 고객사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AMD와의 협업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분위기다. AMD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 외 대형 그래픽처리장치(GPU) 설계 역량을 가진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로, 최신 AI 가속기 MI350X·MI355X에 삼성전자 HBM3E 12단 제품을 탑재한다고 밝힌 바 있다. AMD가 MI400·MI500 등 차세대 모델 출시를 서두르는 만큼 삼성전자와의 협업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HBM4 12단 샘플을 제공하는 등 다수의 고객사와 접촉 중이다. 그중 올 하반기 신형 GPU를 출시 예정인 엔비디아와는 정식 공급 계약을 맺고 수율 안정성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따라 HBM 시장 내 SK하이닉스의 존재감도 당분간 크게 유지될 전망이다. 지난해 기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HBM 시장에서 52.5%의 점유율을 차지했으며, 엔비디아 전체 공급량 중 약 80%를 소화했다.
결국 양사의 HBM4 전략은 기술 개발 속도와 공급처 확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삼성전자는 1c 공정 적용과 테일러 공장 투자 등을 통해 기술적 역량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지만, 주요 고객사 확보에서는 아직 뒤처져 있는 상황이다. 반면 SK하이닉스는 기술 완성도와 시장 선점을 모두 앞서가며 안정적인 판매 기반을 다지고 있다. 아울러 TSMC와의 협업을 통한 패키징 경쟁력까지 고려하면, 현시점에선 SK하이닉스가 한발 앞서 있다는 게 업계 전반의 평가다.

SK하이닉스 독주 속 삼성·마이크론 추격전 본격화
SK하이닉스의 독주 체제 속 후발 주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지는 양상이다. 마이크론은 이달 초 HBM4 샘플 공급에 돌입하면서 본격적인 추격전에 뛰어들었다. 이는 SK하이닉스보다 약 3개월 늦은 시점이다. 샘플 제품은 12단 적층 구조에 1TB/s급 대역폭을 구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주요 고객사인 구글, AWS 등과의 테스트를 통해 초기 피드백을 확보한 상태다. 마이크론은 자사 HBM 제품을 통해 AI·클라우드 연산 수요 대응력을 강화하고, 시장 내 존재감을 높이겠단 구상이다.
상대적으로 뒤늦게 경쟁에 합류한 삼성전자도 생산 기반과 기술 고도화를 앞세워 추격의 속도를 높이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에 약 23조원을 투입해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며, 해당 시설을 HBM을 비롯한 AI 특화 반도체 중심의 생산 기지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 앞선 3세대 HBM에서 1c 공정을 시도했던바, 이번 HBM4에서 본격 1c 기반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이를 통해 발열과 전력 효율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고객사들도 기존 SK하이닉스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TSMC와의 긴밀한 협업 구조에 기반한 SK하이닉스의 공급망이 장점인 동시에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고객사들은 삼성·마이크론이 제시하는 TSMC 비의존 패키징 구조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양사 모두 고성능 AI GPU 업체들과의 기술 검증을 진행 중이며, 향후 공급처 확대 여부가 시장 내 판도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SK하이닉스 TSMC 의존·원가 부담 이중고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 1위 자리가 위태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익성과 구조적 안정성 측면에서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고성능 패키징 공정에서 TSMC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SK하이닉스는 TSMC와의 고대역폭 메모리 패키징 분야 협업으로 제품 완성도는 끌어 올렸지만, 로직다이 생산과 집적 공정 전반을 위탁하면서 가격 협상력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TSMC가 로직다이 가격을 인상하면,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HBM 제품은 일반 D램에 비해 원가가 높고 수율 안정성 확보가 어려운 탓에 대형 고객사 납품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품질 확보가 필수로 여겨진다. 그러나 패키징 핵심 부품을 외주에 의존하는 구조는 제조단가 상승뿐 아니라 기술 유출 리스크까지 동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HBM 패키징 공정 내재화를 목표로 자체 라인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SK하이닉스로선 경쟁사의 이러한 전략을 중장기적 위협으로 받아들일 공산이 크다.
여기에 최근에는 시장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가격 경쟁 또한 피할 수 없게 됐다. 마이크론은 불과 3개월 차이로 SK하이닉스를 바짝 추격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공정 효율화를 승부수로 띄우고 양산 시점을 조율 중이다. 이처럼 공급 주체가 다변화되는 시장 환경에서는 기술력만으로는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결국 가격과 수익성, 공급 안정성이라는 복합적 요소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구조적 리스크에 대한 대응 전략까지 마련해야 한다.
이에 SK하이닉스도 추가적인 HBM 투자 확대를 검토하고 나섰다. 업계는 SK하이닉스가 향후 예정된 HBM4E 및 HBM5 개발 로드맵에 따라 TSMC와의 협업 구조를 재조정하거나, 자체 패키징 기술 개발을 병행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다만 패키징 내재화에 필요한 공정 인프라와 인력 확보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닌 만큼, SK하이닉스로선 수익성 방어와 기술 주도권 유지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