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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테크] ‘에너지는 친환경, 송전망은 80년대’, 유럽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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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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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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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정전 사고로 친환경 에너지 신뢰도 “흔들”
낡은 송전 시설이 ‘주범’
전력망 안정성 신뢰가 ‘최우선’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지난 4월 이베리아반도에 발생한 짧은 정전이 유럽의 친환경 전환과 기후 정책을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사실만 놓고 보면 해당 사건은 기술적 결함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에 30분도 안 되는 정전이 발생한 게 전부였다. 하지만 유럽인이 느낀 심리적 충격은 이제 친환경 에너지와 전력망에 대한 의심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사진=ChatGPT

유럽 정전 사고,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의심으로

더 구체적으로는 지난 4월 28일 프랑스-스페인 전력 케이블의 계전기(electrical relay) 두 개가 거의 동시에 고장을 일으켰다. 몇 초 안 돼 전력 주파수(power frequency)가 위험 수준 이하로 내려가자 기차가 멈춰서고, 슈퍼마켓 냉장 시설이 가동을 멈췄으며, 병원은 디젤발전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도 안 돼 대부분의 전력이 복구됐지만 대중의 인식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친환경 에너지가 원인이라는 주장이 확산하기 시작했는데, 태양광 및 풍력 발전과는 무관하다는 당국의 해명도 소용이 없었다. 친환경 에너지는 취약하다는 관념이 대중에게 형성됐고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날이 되자 스페인에서는 가정용 디젤발전기가 불티나게 팔리는가 하면 정부의 히트 펌프(heat pump, 전기를 사용하여 열을 전달, 친환경 난방의 대안으로 평가) 도입 정책을 풍자하는 밈(memes)들이 대륙 전체에 돌았다. 전력망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삽시간에 무너졌다.

높은 안정성에도 단 한 번의 사고로 ‘신뢰 붕괴’

하지만 유럽의 전력망은 글로벌 기준으로 봐도 높은 수준의 안정성을 자랑한다. 독일 국민이 1년에 13분의 정전을 경험한다면 미국은 300분을 넘는다. 하지만 대중의 신뢰는 반드시 숫자와 일치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갑작스러운 정전이 수년 간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

각국 연간 정전 시간 비교(2024년, 단위: 분)
주: 독일, 네덜란드, 라트비아, 미국(좌측부터)

실제로 조사 결과 유럽인의 33%만이 유럽연합(EU)의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역량을 신뢰한다고 대답했는데 이는 작년보다 상당히 하락한 결과다. 미래 재난에 대비하는 것처럼 개인용 비상 발전기와 벙커, 가정용 배터리 등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등 정전에 대한 공포는 문화적 현상이 됐다.

에너지는 친환경, 송전망은 ‘80년대’

사실 유럽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 태양광 및 풍력 부문의 성장으로 전력 생산량의 47%가 친환경 에너지원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낡은 송전 인프라가 문제다. 현재 사용되는 전력망이 1980년대 중앙집중식 석탄 및 원자력 발전에 따라 설계돼 현재와 같이 변환 장치(inverter) 의존도가 높은 분산형 시스템에 맞지 않는다. 이번 정전처럼 전력 흐름이 갑자기 바뀌면 낡은 장비가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지 않아도 유럽의 청정에너지와 낡은 송전 시스템 간 부조화는 친환경 전환의 최대 장애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럼에도 탈(脫)탄소화(decarbonization)에 대한 유럽 대중의 지지는 강력하다. 단 전력망 안정성을 전제로 해야 친환경 전환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용인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에 따라 EU는 2030년까지 5,840억 유로(약 906조원)를 투입해 전력망 업그레이드를 완료하겠다는 목표지만 실제 투자는 이미 일정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기반 시설 투자가 지연될수록 대중의 불신이 깊어질 위험도 크다.

친환경 산업 정책에 대한 각국 지지도 현황
주: 친환경 정책으로 인한 불편함 감수 의향(좌측), 인도,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중국, 터키,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콜롬비아, 칠레, 멕시코, 싱가포르, 남아프리카 공화국, 모로코, 대한민국,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일본, 스웨덴, 이탈리아, 브라질, 프랑스, 스페인, 미국, 캐나다, 호주, 벨기에, 폴란드, 노르웨이, 독일, 러시아(위부터) / 친환경 에너지 시설 투자에 대한 지지 의향(우측), 터키, 모로코, 남아프리카 공화국, 나이지리아, 칠레,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멕시코, 영국, 브라질, 인도, 이집트, 폴란드, 호주, 이탈리아, 캐나다, 스페인, 벨기에,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미국, 스웨덴, 독일, 싱가포르, 러시아, 일본, 노르웨이, 프랑스, 대한민국 / 소득 수준 하(적색), 소득 수준 중(녹색), 소득 수준 상(청색)

에너지 안정성에 대한 신뢰가 친환경 전환 ‘필수 요소’

따라서 정책 당국과 공급 업체는 먼저 극단적인 투명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예비 전력량을 포함한 데이터에 대한 실시간 공개와 정전 사태에 대한 자동 보상 시스템 등이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미 덴마크, 스페인 등에서는 전력 주파수 및 배터리 저장 장치 등에 대한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공개되고 있다.

모두 대중을 수동적 소비자에서 적극적 참여자로 변화시키면서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는 조치들이다. 이번 정전 사태로 전력망 안정성에 대한 신뢰 없이는 유럽의 친환경 전환 목표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셈이다.

그러려면 장비와 관리 방식에 대한 구조적 개선이 요구된다. 가장 먼저 전송망 업그레이드를 앞당기고 사업자 간 갈등을 해결할 국가 간 기구가 필요하다. 또한 추가적인 정전 사태를 막기 위해 비상 전력 확보를 위한 소액의 조세 부과까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유럽이 이번 사건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어야 할 교훈은 친환경 전환과 탈탄소화는 에너지와 기반 시설로 충분치 않다는 사실이다. 대중의 믿음이 없으면 길고 어려운 구간을 완주하기 어렵다.

원문의 저자는 크리스티나 페냐스코(Cristina Peñasco) 프랑스 은행(Banque de France) 기후 변화 센터(Centre for Climate Change) 선임 연구원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When the lights go out: Power, trust, and the future of Europe's energy transition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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