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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포항 중기사업부 매각 협상 막바지 대규모 투자 대비 자회사 매각·구조조정 추진 美 제철소 투자 관련 포스코와 협력 등 모색

현대제철이 무한궤도를 생산해 온 포항 1공장 중기사업부를 매각한다. 중기사업부는 지난 39년간 국내 유일의 대형 무한궤도 생산기지의 위상을 지켜왔으나, 최근 중국산 저가 공세와 건설경기 침체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며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다. 현대제철은 핵심 사업 역량 강화와 고용 안정을 위해 사업부 매각과 전환 배치를 병행할 방침이다.
건설경기 침체에 무한궤도 수요 급락
3일 현대제철은 포항 중기사업부를 대주KC그룹에 매각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이라고 밝혔다. 해당 사업부는 굴착기 부품인 무한궤도를 주로 생산하는 곳이다. 국내에서 무한궤도를 생산하는 곳은 중소 업체를 제외하면 사실상 현대제철이 유일한 상황이다. 현대제철은 “경쟁력 확보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쟁업체 및 중국 저가 제품의 대량 유입으로 무한궤도 사업이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다”며 “철강 부문의 핵심 사업 역량 강화와 고용안정을 위해 중기사업 부문의 매각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굴착기는 물론 불도저, 트랙로더 등 중장비에는 대부분 무한궤도 시스템이 채택된다. 현대제철은 일본 건설장비 조제사인 코마츠와의 기술제휴로 사업을 시작해 1986년부터 국내외 주요 건설장비 제조사에 무한궤도를 공급해 왔다. 연간 30만 톤(t)의 생산능력과 자체 설계 및 시험능력을 보유해 고객사의 니즈에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건설경기 침체가 거듭되면서 무한궤도 시스템의 수요 역시 급락했다. 지난해 중기 판매량은 2021년과 비교해 약 65% 감소했다.

올해 비상경영 선언하며 구조조정 돌입
현대제철은 중기사업부 매각과 함께 중국산 저가 철강재의 공세로 지속되는 수익성 악화에 따라 공장 축소 운영 등 생산감축도 단행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포항2공장 폐쇄를 결정했다가 노동조합의 반발로 축소 운영으로 방침을 바꿔 생산량 조절에 돌입했다. 올해 1월에는 인천 2철근공장 가동을 한때 멈췄고, 포항 철근공장 가동도 열흘 넘게 중단한 바 있다. 3월에는 전사적으로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해 임원 급여를 20% 삭감했고, 직원을 대상으로는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등 인력 감축도 진행 중이다.
자회사 현대IFC의 매각도 검토 중이다. 현대IFC는 지난 2020년 현대제철 단조 사업 부문을 물적 분할해 출범한 곳으로 현대제철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조선용 단조제품과 단강을 주력으로 생산하며 자동차, 에너지, 항공, 방산 등 프리미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유력한 인수자로는 동국제강이 거론되고 있다. 최근 동국제강은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 보강근(GFRP) 브랜드 ‘디케이(DK) 그린바’를 출시하는 등 철강 사업 경쟁력 강화 및 신사업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대스틸파이프의 매각도 함께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스틸파이프는 2023년 말, 현대제철 강관 사업부를 분할해 설립한 자회사다. 독립 첫해인 2024년 실적은 매출 9,635억원, 영업손실 313억원, 당기순손실 211억원으로 적자를 냈다. 다만 미국 내 강관 가격 상승과 지난해 4분기 수익성 개선 등에 힘입어 올해는 흑자 전환이 기대된다. 현대스틸파이프의 매각이 성사될 경우, 수천억원대 자금 확보가 가능한 만큼 현대제철의 재무구조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美 제철소 건설에 조 단위 자금 조달 필요
철강업계에서는 현대제철이 이처럼 공격적으로 자회사 매각에 나선 배경으로 미국 진출을 지목한다. 지난 3월 현대제철은 2029년 생산을 목표로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제철소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총투자 금액은 58억 달러(약 8조5,080억원)로 현대제철은 투자금 중 절반을 현대차그룹과 공동으로 자기 자본으로 조달하고 나머지 50%를 외부에서 차입할 계획이다. 하지만 여전히 조 단위 자금은 부담스러운 투자비다. 최근 건설 경기 침체와 중국의 저가 공세로 실적 부진 빠져 내부 현금 흐림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철강업계 1위이자 경쟁사인 포스코가 현대제철의 미국 루이지애나주 전기로 제철소 프로젝트에 지분 투자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 4월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은 '철강 및 이차전지 분야의 상호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포스코의 미국 제철소 투자 참여 가능성을 공식화했다. 만약 투자가 성사될 경우 국내 철강업계 1위(포스코)와 2위(현대제철)가 미국의 25% 고율 철강 관세 장벽을 공동으로 돌파하기 위해 현지 생산기지를 함께 구축하는 첫 사례가 된다.
포스코가 미국 시장을 전략적 핵심 시장으로 보고 현지 생산 기반 확보를 추진 중인 만큼 이번 협력은 단순한 재무적 투자 차원을 넘어 통상 리스크 대응과 글로벌 공급망 확장이라는 전략적 의미도 크다. 다만 포스코 측은 "미국 투자와 관련해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현시점에서 확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현대제철 측도 "자회사 매각은 미국 제철소 건설을 위한 자금 조달 목적이 아니다"라며 "전반적인 사업 구조 강화 및 경영 효율화를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