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유럽 시장서 맥 못 추는 테슬라 "오너 리스크에 발목 잡히고, BYD에 치이고" EU, 보조금 앞세워 中 전기차 견제 나선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유럽 내 판매량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오너 리스크, 중국 비야디(BYD)의 약진 등 악재가 누적되며 테슬라의 현지 시장 내 입지가 쪼그라든 것이다. 반면 테슬라의 핵심 경쟁사로 부상한 BYD는 가격 경쟁력을 무기 삼아 유럽 시장에서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EU 전기차 시장, 테슬라 외면
27일(현지시간) IT 매체 테크크런치는 테슬라의 유럽 판매량이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에 따르면 테슬라는 지난 4월 유럽연합(EU),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영국에서 차량 7,261대를 판매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9% 급감한 수준으로, 지난 3월 인기 차종인 모델Y의 신형 모델이 출시됐음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이 위축된 것이다. 올 1월부터 4월까지 테슬라가 유럽에서 판매한 전기차는 총 6만1,320대로 전년 동기 대비 39% 줄었다.
테슬라가 유럽 시장에서 부진을 겪는 원인으로는 머스크 CEO의 정치적 행보가 꼽힌다. 머스크 CEO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기점으로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 연방 정부 지출 삭감을 주도하며 논란의 중심에 선 정부효율부(DOGE) 책임자로 임명됐다. 아울러 독일 의회 선거를 앞두고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ür Deutschland)'의 집회에 동영상으로 출연하고, 온라인상에서 키어 스타머 총리를 비롯한 영국 정치인들을 공격하는 등 해외 정치에 개입하기도 했다.
이에 곳곳에서는 머스크 CEO의 행보가 과도하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포르투갈 등에 있는 수십 곳의 테슬라 대리점에서 시위가 벌어질 정도였다. 시위 도중 전시장과 충전소 등이 파손된 사례도 있었고, 프랑스와 독일에서 벌어진 시위에서는 차량 여러 대가 불에 탔다. 미국에서는 테슬라의 사이버트럭이 반(反)머스크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사이버트럭을 쓰레기로 뒤덮거나, 스케이트보드 경사로로 활용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소셜미디어(SNS)에서 회자되는 식이다.
소비자들은 정치적 갈등에 휘말린 테슬라 차량의 구매를 꺼리고 있다. 지난달 야후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에 의뢰해 미국 성인 1,67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67%가 향후 테슬라 차량을 소유하거나 리스할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테슬라 구매를 고려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는 응답자의 37%가 ‘일론 머스크가 전부 또는 일부 원인’이라고 답했다.

中 BYD의 급성장
BYD 등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급성장 역시 테슬라에는 악재로 작용했다. 시장조사기관 제이토 다이내믹스(Jato Dynamics)에 의하면, 지난달 유럽에서는 총 7,231대의 BYD 순수 전기차(BEV)가 등록됐다. 이는 같은 기간 테슬라의 판매량을 소폭 밑도는 수준이다. 전기차 시장 후발 주자였던 BYD가 어느새 테슬라와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이 가능한 수준까지 치고 올라온 것이다.
BYD가 유럽 시장에서 급성장한 것은 강력한 가격 경쟁력 덕분이다. BYD는 유럽 시장에 돌핀 서프, 아토 3, 씰 U, 한, 시걸 등 성능 대비 가격이 저렴한 모델을 다수 출시하며 현지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BYD의 대표 모델인 돌핀 서프는 유럽 기준 2만2,990유로(약 3,570만원)에 출시됐다. 이는 르노 조에(3만3,000유로), 폭스바겐 ID.3(3만9,000유로) 등 경쟁 모델 대비 월등히 저렴한 수준이다.
BYD의 중형 SUV 아토 3의 유럽 현지 판매가는 3만7,990유로(약 5,900만원)로, 동급 모델인 테슬라 모델 Y(4만4,890유로)보다 약 1,000유로(약 155만원) 이상 싸다. BYD 프리미엄 세단 ‘한’ 역시 유사 고객층을 노리고 출시된 테슬라 모델 S(9만4,990유로) 대비 대폭 저렴한 7만800유로(약 1억99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BYD 초소형 전기차 시걸은 유럽에서 약 9,540유로(약 1,500만원)에 출시됐다. 이는 기존 유럽에서 가장 저렴한 전기차로 알려져 있던 다치아 스프링(2만800유로)보다 50% 이상 낮은 가격이다.
"中 저가 공세 막아라" EU의 자구책
중국 전기차 브랜드가 유럽 전기차 시장을 호령하는 가운데, EU는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통해 이들 기업을 견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테레사 리베라 EU 청정·공정·경쟁 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범유럽 보조금을 통해 어려움을 겪는 유럽 자동차 산업을 지원할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구체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일부 개별국이 자체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전기차 구매 인센티브 정책을 통합하고, 이를 범유럽 차원에서 적용하겠다는 구상이다.
EU가 이 같은 계획을 수립한 것은 EU 역내 국가들이 중국의 저가 전기차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권 주요국들은 전기차 관련 지원을 확대해 중국을 견제하기는커녕, 하나둘 보조금 지급 규모를 줄여가는 추세다. 영국은 2023년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했고, 프랑스는 올해부터 보조금을 7,000유로(약 1,100만원)에서 4,000유로(약 650만원)로 축소한다. 네덜란드는 올해부터 보유세 감면 혜택을, 덴마크는 내년부터 등록세 감면 혜택을 점진적으로 줄이기로 했다.
향후 관건은 EU가 범유럽 인센티브 프로그램 설계 과정에서 '적정선'을 지킬 수 있을지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전문가는 "무조건 유럽산 자동차에만 혜택을 주면 미국, 중국 등이 반발할 위험이 크고,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며 "국제 사회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도 보조금이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들로 유입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영리한' 지원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