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CXMT DDR5, 수율 리스크 발생 누설전류·신호 무결성 결함 삼성·하이닉스 반사 수혜 기대

중국 메모리 기업 CXMT(Changxin Memory Technologies)가 더블데이트레이트(DDR)5 제품에서 불량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물 시장에서 DDR5 가격이 반등세를 타고 있다. 공급 불안에 따른 고객사의 수요 쏠림이 본격화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불량 해소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인 상황이라 당분간 DDR5 강세가 지속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DDR5 가격 불 붙인 CXMT
18일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고성능 PC 등에 들어가는 신형 D램인 DDR5(DDR5 16Gb 2Gx8)의 가격은 4.25달러를 기록, 전월 대비 11.84% 상승했다. 또 DDR5에 붙는 가격 프리미엄도 레거시(구형) D램인 DDR4 대비 38%에서 39%로 커졌다.
이번 가격 상승의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중국 CXMT의 DDR5 제품에서 발생한 품질 이슈다. CXMT는 최근 양산한 1b 나노 DDR5 제품에서 셀 간 누설전류(leakage current)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문제를 발견했다. 일부 제품에서는 고속 동작 환경에서 신호 무결성 저하로 인한 불안정성도 확인됐다. 이로 인해 납품된 제품 일부가 고객사 측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대체 공급처를 찾는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1b 나노 공정은 세대 전환 과정에서 셀 간 간격이 좁아지는 만큼, 미세 공정에서의 전기적 간섭이나 누설전류 제어가 매우 까다롭다"며 "CXMT는 아직 LPDDR4나 DDR4 등에서 검증된 경험은 있지만, DDR5 고속 제품에 대한 대량 양산 경험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CXMT, DDR5 수율 80% 수준
실제 DDR5는 기존 DDR4 대비 데이터 전송 속도가 2배 이상 빨라지며, 고속 신호처리 특성상 미세 공정에서의 안정성이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수년간의 고난도 검증 과정을 통해 확보한 공정 기술을 갖추고 있는 것과 달리, CXMT는 본격적인 DDR5 시장 진입 초기 단계에 있어 일정 수준의 불량률이 불가피한 것으로 분석된다.
CXMT는 그동안 DDR4, LPDDR4, LPDDR4X 시리즈를 19나노(nm) 공정으로 생산해 왔지만, 지난 2023년 11월 모바일용 LPDDR5를 공식 출시한 데 이어 이제 DDR5까지 양산하고 있다. 중국 IT 전문 매체 중관춘짜이셴에 따르면 CXMT의 DDR5 칩 수율은 80%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DR5 칩 수율은 90% 수준으로, CXMT의 수율은 이 같은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중국 현지에서는 EUV(극자외선) 리소그래피 등 첨단 반도체 장비의 구매가 봉쇄된 상황에서 CXMT의 DDR5 양산은 기술적인 혁신이 이뤄진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 발생한 불량 이슈는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CXMT가 채택한 공정 노드는 1B 나노 중에서도 EUV 공정이 아닌 DUV(심자외선) 기반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세부 패턴 정밀도에서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업계는 CXMT가 이번 문제를 해결하려면 최소 수개월의 셀 재설계 및 공정 최적화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일부 고객사는 CXMT로부터의 물량을 보류하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양산 기반을 갖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으로 발주처를 변경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양대 메모리 업체는 이미 고대역폭메모리(HBM), DDR5 등 고성능 메모리 제품에서 수율과 품질 안정성 측면에서 글로벌 고객사들의 신뢰를 확보한 상태다. 특히 서버용 DDR5의 경우 AI 서버 및 고성능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로 프리미엄 제품 중심의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CXMT의 생산 차질은 공급자 우위 시장을 더욱 공고히 만들 수 있는 변수로 작용한다.

올해 생산량 68% 확대, 삼성·SK 바짝 추격
다만 일각에서는 국내 기업의 과점 체제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CXMT가 올해 D램 생산능력을 당초 전망보다 크게 늘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중국 CXMT는 올해 D램 생산량 규모가 273만 장(웨이퍼 기준)으로 지난해(162만 장) 대비 68%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시장에서는 올해 CXMT의 D램 생산능력이 20% 수준에서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을 제기한 바 있으나 이보다 3배 이상 빠른 확대가 예상되는 것이다. 여기엔 DDR4뿐만 아니라 DDR5도 포함된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CXMT의 D램 생산량은 미국 마이크론을 바짝 추격할 것으로 보이며, SK하이닉스의 절반 수준까지 도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2년 내 D램 시장이 3강 구도에서 4강 구도로 재편될 뿐 아니라 공급과잉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분기까지만 해도 CXMT의 월 평균 D램 생산량은 10만 장 수준에 불과했다. 이는 SK하이닉스 대비 4분의 1 규모다. 게다가 대부분의 제품이 DDR4 D램이었다. 하지만 올해 1분기에는 전년 대비 물량이 2배 증가한 월 평균 20만 장을 생산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30만 장 수준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CXMT는 지난해 DDR4 생산량을 대폭 늘려 가격 인하를 추진하면서 D램 시장에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15년 가까이 굳혀온 3강 구도에도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직접 지난해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중국산 D램의 저가 공세가 자사 실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언급했을 정도다.
중국 컨설팅업체 첸잔 자료에 따르면 D램 시장에서 2020년 0%대에 머물렀던 CXMT의 점유율은 지난해 5%까지 늘었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CXMT의 D램 시장 점유율이 올해 말 12%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리서치업체 테크인사이츠의 댄 허치슨 부회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CXMT의 시장 점유율이 여전히 낮은 편이지만 빠른 성장세로 ‘스노볼 효과’를 만들고 있다”며 “이는 메모리 부문에서 한국이 일본을 몰아낸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CXMT의 약진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 정책이 있다. 중국 정부가 중국산 메모리를 쓰는 기업들에 지급하는 막대한 보조금을 바탕으로 회사 규모와 기술력을 키웠다. 레거시 D램을 위주로 생산하는 CXMT의 매출 점유율은 5%지만 실제 영향력은 그 이상으로 분석된다. CXMT의 저가 물량 공세에 기존 업체들이 가격 경쟁으로 대응할 수 없는 만큼 첨단 제품 위주의 포트폴리오 변화도 강제된다.
이는 앞서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국은 2000년대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을 주도하며 막대한 이익을 냈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이 디스플레이를 전략 산업으로 지정한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생산 능력을 확대해 저가 공세를 펼치면서 국내 LCD 사업은 경쟁력을 잃었다. 현재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모두 대형 LCD 사업에서 철수하고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등 첨단 디스플레이 시장에만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