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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착공 후 거듭 가동 연기
美 공장도 발주 미루며 착공 시점 조율
D램 수요 저조에 보수적인 접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의 네 번째 생산 라인인 P4의 가동이 재차 연기됐다.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외관 공사를 마무리하고 최선단 낸드 및 D램을 양산할 예정이었지만, 메모리 반도체 업황 악화로 계획 초기 예상했던 시점보다 1년 이상 늦춰지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 P5 라인, 미국 텍사스 공장 등의 건설도 멈춰 있어 삼성전자 생산능력 확대 청사진에 적신호가 켜진 모습이다.
설계 변경 후에도 팹 구성 방안 고심
7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평택캠퍼스 P4 라인의 가동 시기를 올해 연말로 늦추기로 했다. 지난해 5월 가동이 목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1년 반 이상 미뤄진 셈이다. P4 라인 바로 옆에 건설 중인 P5 라인 역시 지난해 건설을 중단했으며, 일부 공사 업체는 계약을 해지 후 현장에서 철수한 상태다.
평택캠퍼스는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칩 설계부터 생산, 후공정까지 모두 아우르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전초기지다. 현재 P1∼P3공장이 완공돼 최첨단 D램, 낸드플래시, 파운드리(수탁생산) 라인이 가동 중이다. P4와 P5는 각각 2021년과 2023년 첫 삽을 떴지만, 이번 P4 가동 지연으로 P5의 완공 시점 또한 기약할 수 없는 실정이다.
당초 삼성전자는 지난해 페이즈1(PH1)을 P4의 낸드플래시 메인 팹으로 설계할 예정이었으나, 낸드 업황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더디자 반은 낸드, 나머지 반은 10나노급 4세대(1a) D램을 생산하는 하이브리드 형태로 설계를 변경했다. 그러나 이 같은 생산라인 구성 방안을 두고 회사의 고민이 깊어지면서 P4의 전반적인 가동 시점또한 예상보다 늦춰지는 모양새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메모리 업황 또한 가동 지연 이유로 꼽힌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의하면 지난달 글로벌 반도체 시장 내 DDR4 8Gb 고정거래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25% 하락했다. 반도체 생산 시설의 특성상 한 번 가동을 시작하면, 중단이 쉽지 않은 만큼 애당초 가동 시기를 늦춰 수급을 조절하는 게 유리하다는 게 업계의 주된 해석이다.
나아가 전체 매출 가운데 90%가량이 해외 시장에서 나올 만큼 수출 의존도가 높은 삼성전자로선 세계 반도체 시장의 부진이 더 뼈아프다는 평가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집계한 수출입 동향에서 지난 2월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96억 달러(약 13조8,500억원)로, 전년 동월(99억 달러) 대비 3% 감소했다. 이는 16개월 만의 마이너스 전환이다.

생산능력 확대 전략 수정 불가피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에도 평택캠퍼스 P4 라인과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 2공장의 착공 및 발주를 전면 연기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이전까지 두 공장의 구체적인 착공 시기와 관련해 말을 아껴 왔지만, 지난해 하반기 착공 및 가동을 전제로 투자 등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발주 연기는 가동 시점 연기로 해석해야 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은 440억 달러(약 60조원)가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삼성전자는 이 일대에 반도체 공장 2곳을 포함한 첨단 패키징 연구개발(R&D) 센터를 구축할 계획이었다. 미국의 반도체지원법(CHIPS Act)에 따라 현지 정부로부터 64억 달러(8조8,000억원) 보조금을 약속받기도 했다. 하지만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되던 건설 계획은 지난해 하반기 2공장 착공이 전면 재검토에 들어가면서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업계는 이러한 행보를 두고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서 보수적인 접근을 선택한 것이란 시각이 주를 이룬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수익성 악화, 파운드리 시장의 치열한 경쟁 등으로 대대적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해석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공장 착공과 관련된 주요 발주를 모두 연기한 것은 향후 투자 일정이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진단하며 “이는 국내외 반도체 산업 전체에 걸친 공급망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차세대 라인업 구축 전략도 수정 전망
평택캠퍼스 P4 라인 가동 및 P5 라인 건설 재개 여부를 두고는 다양한 전망이 나온다. 익명의 내부 소식통에 의하면 삼성전자는 지난달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리고 P5 투자 시점과 방안에 대한 전략 수립에 돌입했다. 연내 투자 심의 회의를 개최하고 투자 재개 가능성을 검토한다는 구상이다. 투자 심의 회의의 구체적 일시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2분기 말 또는 3분기 전후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이 같은 소식은 삼성전자가 작년 1a D램과 HBM 등의 재설계를 추진해 온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업황에 맞춘 생산능력 확대로 시장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의중이 반영됐다는 해석이다. 또 삼성전자가 1b, 1c 등 신규 D램 공정 진입과 HBM4 및 베이스 다이 등 차세대 라인업 구축을 위한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이를 뒷받침할 생산능력을 시의적절하게 확보하겠다는 의지 또한 강하다는 전언이다.
다만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부문이 적자의 늪에 빠져 있다는 점은 선결 과제로 거론된다. D램에 대한 수요나 저조한 파운드리의 가동률이 언제쯤 확보될지 알 수 없는 만큼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계속되는 실적 악화 등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삼성전자로서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