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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컨설팅 특화 인물 잇단 영입
3천억원대 프리미엄, 손해 보는 딜도 감내
“잠재 위험보단 성장 가능성에 투자”

한화그룹이 항공우주와 방위산업을 양대 신성장동력으로 점찍고 외연 확장을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그 첫 단계는 전략실 재구성과 인재 영입이다. 특히 최근 외부에서 영입 중인 인물들은 신사업 투자와 전략 컨설팅 등에 특화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수합병(M&A)의 포석을 깔고 있다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전략실 자리 채우는 기업 거래 특화 인물들
20일 방위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실은 최근 김선 우주팀장과 송창빈 방산팀 담당임원을 채용했다. 두 사람의 직책은 각각 팀장과 담당임원이지만, 부사장급 인사라는 게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한화에어로 측은 “외부 인재 영입 중인 것은 맞다”며 “전문 인력 보강 차원에서 추진 중인 사안”이라고 밝혔다.
손재일 대표가 이끄는 한화에어로는 산하에 지상방산(LS) 사업부, 우주사업부, 정밀타격(PGM) 사업부 등 여러 우주·방산 관련 조직을 두고 있다. 이번에 영입된 김 팀장과 송 담당이 배치된 전략실은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전략 부문 대표를 겸하고 있으며, 그 아래로는 안병철 전략 총괄이 있다.
기술개발과 영업을 담당하는 사업부가 하드웨어라면, 전략 부문은 소프트웨어에 가깝다. 한화에어로는 김 부회장이 전략 부문 대표로 등기된 2021년을 기점으로 사업 재편에 속도를 냈다. 대표적 M&A로는 K9 자주포 개발업체인 자회사 한화디펜스 합병을 꼽을 수 있다. 별도의 자회사를 두는 것보다 모회사가 직접 사업을 이끌어 효율화를 앞당긴다는 취지로 2022년 한화디펜스를 합병했고, 이를 통해 방산 사업을 내재화했다.
업계에서는 우주·방산 전문기업으로서 한화에어로의 정체성이 어느 정도 확립된 만큼 전략실의 움직임도 바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에 영입된 김 팀장과 송 담당 또한 해당 분야에 특화된 인물이라는 평가다. 김 팀장은 카이스트에서 항공우주 및 우주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와튼스쿨에서 MBA 과정을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을 비롯한 다수의 컨설팅 회사를 거쳤다. 또 서울대를 졸업한 송 담당은 JP모건에서 투자금융본부장을 역임하며 다수의 M&A를 수행한 바 있다.
성장 위해선 위험도 감수
한화에어로는 지난해 한화오션과 싱가포르 부유식 해양설비 전문업체 다이나맥홀딩스를 인수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한화시스템과 호주 조선·방위 산업체 오스탈에 전략적 투자했다. 적극적인 M&A를 통해 군함 건조 역량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시장이 꾸준히 성장 중인 우주 발사체, 해양 디지털 솔루션 등 신사업 관련 투자 또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외연 확장을 위한 한화의 움직임은 잠재적인 부채의 위험까지 떠안을 만큼 적극적이다. 지난해 한화가 1억 달러(약 1,469억원)에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Philly Shipyard)가 대표적 사례다. 작년 말 기준 필리조선소의 부채는 4,982억원으로 자산(2,968억원)보다 많다. 자본이 마이너스(-) 2,014억원에 달하는 ‘완전자본잠식’ 상태란 얘기다.
통상 M&A 시장에서는 순자산보다 비싸게 쳐준 프리미엄을 영업권으로 나타낸다. 이를 토대로 필리조선소의 영업권은 3,484억원에 달했다. 해당 사업체가 미래에 수익을 내면 문제가 없지만, 실적 악화의 경우에는 막대한 손실로 남게 된다. 지난해 필리조선소의 매출은 4,967억원, 영업손실은 1,647억원으로 집계됐다. 당기순손실은 1,923억원에 달했다. 작년 말 M&A가 마무리되면서 한화에 필리조선소 실적은 반영되지 않았지만, 재무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그 부담은 당장 올해부터 한화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한화는 성장 가능성에 중점을 둔 거래였던 만큼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빠른 정상화를 위해서 그룹 내 ‘전략·재무통’으로 불리는 데이비드 김 대표를 수장으로 선임했다. 나아가 필리조선소를 함정 건조와 유지보수(MRO) 사업의 거점으로 활용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한화오션은 선박 건조를, 한화시스템은 자율운항 기술 개발을 맡는 구조다. 한화 관계자는 “현재 (필리조선소) 부채를 털기 위한 작업이 한창인 만큼 빠른 정상화가 기대되는 상황”이라며 “생산 자동화 등 설비 투자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략적 M&A 앞서간 두산
회사 내부에 M&A 전담 조직을 구성해 중장기 전략에 맞게 사업 구조를 재편하는 시도는 두산그룹에서 그 시초를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이전까지 OB맥주를 중심으로 소비재 사업을 영위한 두산은 이후 중공업 분야로 전환을 선언하며 전략기획본부 산하에 M&A 전담 조직 CFP(Corporate Financing Project)팀을 출범했다.
계열사 및 외부에서 영입한 인사 10여 명으로 구성된 CFP팀은 그룹의 핵심 M&A를 담당했으며, 팀원들은 인수 대상 리스트를 엄선하고 분석하는 임무를 맡았다. 2001년 한국중공업을 사들이며 M&A 물꼬를 텄고, 이후 고려산업개발, 미쓰이밥콕, 두산밥캣 등을 연이어 인수했다. 이들 기업은 저마다 두산중공업, 두산건설 등으로 이름을 바꿔 지금까지 그룹의 핵심 사업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CFP팀을 운영하면서 두산은 최고재무책임자(CFO)들에게 의사결정과 경영계획, 기획 등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일반적인 기업의 의사결정이 최고경영자(CEO)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CFO는 이를 보좌하는 구조인 것과 대비된다. 재무적인 지식과 전략가의 지식을 겸비한 인재가 필요에 따라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것이 M&A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게 당시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이와 관련해 두산그룹 제9대 회장을 역임한 박용만 벨스트리트 파트너스 대표업무집행자는 시 CFP팀을 가리켜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이자, 가장 아끼는 조직”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두산의 기조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왔다. 두산 주요 계열사의 CFO 대부분은 현재 사내이사이자 대표이사로 회사의 경영 전반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