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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임직원에 ‘혁신·도전 부재’ 지적한 삼성전자, ‘90년대의 영광’ 되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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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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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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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eonjung.ahn@gia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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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직원 대상 교육에서 ‘삼성다움’ 강조
“차원이 다른 절박함” 내부 전언도
인력난 해소, 보고 체계 개선은 과제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내부적으로 강도 높은 질책성 메시지를 전달했다. 최근 주력 사업인 반도체 분야에서 부진을 거듭하는 데다 스마트폰과 TV 생산에서도 중국 업체들의 추격이 거세지자, 고강도 쇄신을 주문하는 양상이다. 재계에서는 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 회장이 1993년 발표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버금가는 비상 선언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이재용 “기술 혁신, 생존의 문제”

18일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모든 계열사의 부사장 이하 임원 2,000명을 대상으로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인류의 미래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 혁신이 지속되고 있고, 국가총력전의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라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삼성전자는 과연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과감한 혁신이나 새로운 도전은 찾아볼 수 없고, 판을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사즉생(死卽生, 죽기로 마음먹으면 산다는 의미)의 각오로 과감하게 행동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이 전체 임원을 대상으로 이 같은 메시지를 전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인 만큼 위기의식이 짙어진 데 따른 움직임이라는 게 삼성전자 안팎의 평가다. 세미나에 참석한 한 임원은 “이 회장이 ‘독한 삼성인’이 될 것을 주문했다”며 “이전 교육들과는 차원이 다른 절박함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 역시 “과거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던 선대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때만큼 엄중한 분위기였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삼성전자는 핵심 주력인 반도체 부문에서 기술 한계에 부딪힌 데 이어 최근 TV, 가전, 스마트폰 등 완제품 부문에서도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 2022년 53%에 달했던 삼성전자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33%까지 축소됐으며,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점유율도 같은 기간 15.8%에서 8.1%로 절반 가까운 수준까지 쪼그라들었다. 이번 영상에서 이 회장이 반도체를 가리켜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열풍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등 주요 사업부를 직접 언급하며 질책한 배경이다.

‘꿈의 직장’에서 ‘마지막 선택지’로

전문가들은 전례 없는 삼성의 위기를 두고 그 원인을 고질적 인력난에서 찾았다. 국내 대기업 중 유일하게 공채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신입 직원들의 실력이나 회사에 대한 충성심 등 전반적 수준이 아쉽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이공계 기피 현상도 인력난을 부추기는 요소로 꼽힌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의대 선호 현상이 심한 탓에 요즘 성적 우수자들은 정국 의대를 한 바퀴 돈 다음에야 공대를 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나마 공대를 졸업한 경우에도 유학이나 글로벌 기업이 우선순위고, 삼성 같은 국내 제조업은 마지막 선택지”라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이 같은 인력난은 비단 신입 직원 채용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삼성전자가 미래 신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애써 영입한 핵심 연구 인력들도 줄줄이 회사를 떠난 것이다. 일례로 삼성의 선행 연구조직인 삼성리서치가 2019년 야심 차게 펠로우(Fellow)로 영입한 위구연 하버드대 석좌교수를 꼽을 수 있다. 펠로우는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전문가에게 부여하는 연구 분야 최고직이다. 위 교수는 삼성리서치에서 5년 가까운 연구 활동을 펼쳤고, 지난해 하반기 회사를 떠났다.

위 교수 외에도 아마존 출신 장우승 빅데이터센터장(부사장),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출신 강성철 제조로봇팀장(부사장) 등이 비슷한 시기 저마다의 이유로 자리를 정리했다. 삼성전자가 공시한 2024년 사업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한 해 퇴임한 임원은 총 31명이다. 이 중 DS부문 임원은 12명으로, 실적 악화를 겪고 있는 시스템LSI사업부와 파운드리 사업부의 임원 사임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삼성전자를 거친 재계 인사들은 ‘중간 관리자를 믿고 기다려주지 않는 문화’와 ‘개별 사업부를 넘어선 전사적 의사결정의 부재’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외부 영입 인사에 대한 사내 견제는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권한 등이 부여되지 않아 버틸 방도가 없다는 전언이다. 한 전직 임원은 “삼성은 기술을 굉장히 강조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기술 말고도 신경 써야 하는 게 너무 많은 곳”이라고 평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전자 연구개발(R&D) 캠퍼스/사진=삼성전자 뉴스룸

장점 뚜렷하고 저력 충분하단 평가

많은 우수 인재가 회사에 남을 이유를 찾지 못해 떠나가는 동안 삼성전자의 내부적 문제들도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표적으로는 ‘도전 정신의 실종’을 꼽을 수 있다. 특정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과거엔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역량을 집중했던 것과 달리 요즘은 누구의 잘못인지를 색출해 책임을 무는 데만 급급하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일관된 견해다. 내부 관계자는 “프로젝트가 실패할 경우 책임자가 옷을 벗는 사례가 왕왕 있어 내부에서는 ‘절대 실패하지 않을’ 사업만 추진하려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비효율적 보고 체계 또한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시간 낭비는 물론, 전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보고 왜곡 등으로 연구개발(R&D), 공정, 생산 등 모든 작업의 효율성이 전반적으로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특정 부서에서 R&D를 제안하면, 해당 내용은 여러 부서를 거쳐 승인·검토 과정을 거치는 식이다. 실무진의 제안 사항이 각 사 최종 결정권자에게 전달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한 달 이상이다. 만약 프로젝트가 반려될 경우, 해당 내용이 실무자에게 다시 전달되기 위해서는 모든 과정을 역순으로 거쳐야 한다.

삼성전자는 ‘초등학생도 알아볼 수 있는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비효율을 개선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장의 평가는 달랐다. 반도체 공정과 같은 고도의 기술과학 분야를 쉽게 쓰는 데 방점을 둬서는 안 된다는 게 그 이유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내부에는 서초사옥에 근무하는 임원들을 초등학생(초딩)에 빗댄 ‘서초딩’이라는 표현까지 있을 정도다. 보고 체계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쉽게 쉽게’에만 치중하느라 여러 번의 수정이 불가피하고, 종국에는 내용이 왜곡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게 현장 근무자들의 주된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비판의 목소리에도 삼성전자가 가진 저력이 충분한 만큼 노력 여하에 따라 분위기 반전은 어렵지 않다는 데 전망이 일치했다.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는 “삼성전자는 종합 전자·반도체 회사로서 설계와 제조를 모두 경험했다는 장점을 가진 데다, 이러한 장점을 살릴 역량도 갖춘 회사”라고 정의했다. 인력난 해소 등 선행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견급 인재 또는 40대 이상 고경력 인재들의 재취업 등 전문가 활용 방안을 병행하면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권 교수는 앞으로의 반도체 시장은 AI 반도체가 주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저전력으로 오류 없이 빠르고 안정적인 작동이 가능한 AI 전용 하이브리드 반도체를 선보이는 기업이 시장을 압도할 것이란 관측이다. 그는 “삼성전자는 다양한 용도에 맞는 경량화된 AI 전용 칩을 개발 중”이라면서 “가격 경쟁력과 쉬운 접근성, 표준화된 개발 패키지 등을 제시하면, 대만의 TSMC에 빼앗긴 점유율을 되찾아오는 덴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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